〔第一章〕 八卦成列,象在其中矣;因而重之,爻在其中矣;剛柔相推,變在其中矣;繫辭焉而命之,動在其中矣。吉凶悔吝者,生乎動者也。剛柔者,立本者也;變通者,趣時者也;吉凶者,貞勝者也。天地之道,貞觀者也;日月之道,貞明者也;天下之動,貞夫一者也。夫乾,確然示人易矣;夫坤,隤然示人簡矣。爻也者,效此者也;象也者,像此者也。爻象動乎內,吉凶見乎外,功業見乎變,聖人之情見乎辭。天地之大德曰生,聖人之大寶曰位,何以守位曰仁,何以聚人曰財,理財正辭,禁民為非曰義。
[제1장] 팔괘가 벌여 이루어지니 상(象)이 그 가운데 있다. 그로 인하여 거듭하니 효(爻)가 그 가운데 있다. 강과 유가 서로 미니 변(變)이 그 가운데 있다. 말을 달아 명(命)하니 동(動)이 그 가운데 있다. 길흉회린(吉凶悔吝)은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이다. 강유는 근본을 세우는 것이고, 변통(變通)은 때를 좇는 것이며, 길흉은 바름[貞]으로 이기는 것이다. 천지의 도는 바름으로 보여 주는 것이고, 해와 달의 도는 바름으로 밝히는 것이며, 천하의 움직임은 하나에 바르게 되는 것이다. 무릇 건은 확연히 사람에게 쉬움을 보이고, 무릇 곤은 퇴연(隤然)히 사람에게 간략함을 보인다. 효란 이것을 본받은 것이고, 상이란 이것을 형상한 것이다. 효와 상이 안에서 움직이면 길흉이 밖에 드러나고, 공업(功業)은 변화에서 드러나며, 성인의 뜻은 말에서 드러난다.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위(位)라 한다. 무엇으로 자리를 지키는가, 인(仁)이라 한다. 무엇으로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라 한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 하며 백성이 그릇된 짓을 하지 못하게 금하는 것을 의(義)라 한다.
〔第二章〕 古者包犧氏之王天下也,仰則觀象於天,俯則觀法於地,觀鳥獸之文,與地之宜,近取諸身,遠取諸物;於是始作八卦,以通神明之德,以類萬物之情。作結繩而為罔罟,以佃以漁,蓋取諸離。 包犧氏沒,神農氏作,斲木為耜,揉木為耒,耒耨之利,以教天下,蓋取諸益。日中為市,致天下之民,聚天下之貨,交易而退,各得其所,蓋取諸噬嗑。
[제2장]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우러러서는 하늘에서 상을 보고 굽어서는 땅에서 법을 보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보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였다. 이에 비로소 팔괘를 지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였다. 노끈을 맺어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고기 잡게 하였으니, 대개 이괘(離卦)에서 취하였다. 포희씨가 죽고 신농씨(神農氏)가 일어나,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 자루를 만들어 쟁기와 김매기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가르쳤으니, 대개 익괘(益卦)에서 취하였다. 한낮에 시장을 열어 천하의 백성을 이르게 하고 천하의 재화를 모아 교역하고 물러나 각기 그 바라는 바를 얻게 하였으니, 대개 서합괘(噬嗑卦)에서 취하였다.
神農氏沒,黃帝、堯、舜氏作,通其變,使民不倦;神而化之,使民宜之;易窮則變,變則通,通則久;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黃帝、堯、舜垂衣裳而天下治,蓋取諸乾坤。 刳木為舟,剡木為楫,舟楫之利以濟不通,致遠以利天下,蓋取諸渙。 服牛乘馬,引重致遠以利天下,蓋取諸隨。重門擊柝以待暴客,蓋取諸豫。
신농씨가 죽고 황제(黃帝)·요(堯)·순(舜)씨가 일어나, 그 변화에 통하여 백성이 게을러지지 않게 하고, 신묘하게 교화하여 백성이 마땅히 여기게 하였다.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황제·요·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매 천하가 다스려졌으니, 대개 건괘와 곤괘에서 취하였다.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들어, 배와 노의 이로움으로 통하지 못하는 곳을 건너고 먼 곳에 이르러 천하를 이롭게 하였으니, 대개 환괘(渙卦)에서 취하였다.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것을 끌고 먼 곳에 이르러 천하를 이롭게 하였으니, 대개 수괘(隨卦)에서 취하였다. 문을 겹으로 하고 딱따기를 쳐서 난폭한 손님에 대비하였으니, 대개 예괘(豫卦)에서 취하였다.
斷木為杵,掘地為臼,臼杵之利,萬民以濟,蓋取諸小過。 弦木為弧,剡木為矢,弧矢之利,以威天下,蓋取諸睽。 上古穴居而野處,後世聖人易之以宮室,上棟下宇,以待風雨,蓋取諸大壯。 古之葬者,厚衣之以薪,葬之中野,不封不樹,喪期无數,後世聖人易之以棺槨,蓋取諸大過。
나무를 잘라 절굿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절구를 만들어, 절구와 절굿공이의 이로움으로 만민이 구제되었으니, 대개 소과괘(小過卦)에서 취하였다. 나무에 시위를 매어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활과 화살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위압하였으니, 대개 규괘(睽卦)에서 취하였다. 상고에는 굴에서 살고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궁실로 바꾸어 위에는 마룻대를 두고 아래에는 처마를 두어 바람과 비에 대비하였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다. 옛날의 장례는 섶으로 두텁게 입혀 들 가운데 장사 지내고, 봉분을 쌓지 않고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상기(喪期)에 정한 수가 없었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관곽(棺槨)으로 바꾸었으니, 대개 대과괘(大過卦)에서 취하였다.
上古結繩而治,後世聖人易之以書契,百官以治,萬民以察,蓋取諸周易/夬。 〔第三章〕 是故易者,象也。象也者,像也。彖者,材也。爻也者,效天下之動者也。是故吉凶生而悔吝著也。 陽卦多陰,陰卦多陽,其故何也?陽卦奇,陰卦偶。其德行何也?陽一君而二民,君子之道也;陰二君而一民,小人之道也。
상고에는 노끈을 맺어 다스렸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서계(書契)로 바꾸어 백관이 이로써 다스리고 만민이 이로써 살폈으니, 대개 쾌괘(夬卦)에서 취하였다. [제3장] 이 때문에 『역』이란 상(象)이다. 상이란 형상함[像]이다. 단(彖)이란 재료[材]이다. 효란 천하의 움직임을 본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길흉이 생기고 회린이 드러난다. 양괘(陽卦)에는 음이 많고 음괘(陰卦)에는 양이 많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양괘는 홀수이고 음괘는 짝수이기 때문이다. 그 덕행은 어떠한가? 양은 임금이 하나이고 백성이 둘이니 군자의 도이다. 음은 임금이 둘이고 백성이 하나이니 소인의 도이다.
〔第四章〕 易曰:「憧憧往來,朋從爾思。」子曰:「天下何思何慮!天下同歸而殊途,一致而百慮,天下何思何慮!日往則月來,月往則日來,日月相推而明生焉。寒往則暑來,暑往則寒來,寒暑相推而歲成焉。往者,屈也;來者,信也。屈信相感而利生焉。尺蠖之屈,以求信也。龍蛇之蟄,以存身也。精義入神,以致用也。利用安身,以崇德也。過此以往,未之或知也。窮神知化,德之盛也。」
[제4장] 『역』에 이르기를 "자주자주 오가니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천하는 돌아가는 곳은 같으나 길이 다르고, 이르는 곳은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오니, 해와 달이 서로 밀어 밝음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니,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 해[歲]가 이루어진다.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폄[信]이다. 굽힘과 폄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펴기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용과 뱀이 칩거하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의리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쓰임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쓰임을 이롭게 하고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은 덕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를 넘어서 나아가는 것은 혹 알 수 없다. 신묘함을 다하고 변화를 아는 것은 덕의 성대함이다."
易曰:「困于石,據于蒺蔾,入于其宮,不見其妻,凶。」子曰:「非所困而困焉,名必辱;非所據而據焉,身必危;既辱且危,死期將至,妻其可得見耶!」 易曰:「公用射隼于高墉之上,獲之,无不利。」子曰:「隼者,禽也;弓矢者,器也。射之者,人也。君子藏器於身,待時而動,何不利之有。動而不括,是以出而有獲,語成器而動者也。」
『역』에 이르기를 "돌에 곤궁하고 가시덤불에 의지하며,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곤궁할 바가 아닌데 곤궁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되고, 의지할 바가 아닌데 의지하니 몸이 반드시 위태롭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우니 죽을 때가 장차 이를 것인데,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역』에 이르기를 "공(公)이 높은 담 위에서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새매는 날짐승이고 활과 화살은 기물이다. 그것을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가 기물을 몸에 간직하였다가 때를 기다려 움직이니 무슨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움직임에 막힘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다. 기물을 갖추고서 움직이는 자를 말한 것이다."
子曰:「小人不恥不仁,不畏不義,不見利不勸,不威不懲,小懲而大誡,此小人之福也。易曰:『履校滅趾,无咎。』此之謂也。善不積不足以成名,惡不積不足以滅身,小人以小善為无益而弗為也,以小惡為无傷而弗去也;故惡積而不可揜,罪大而不可解。易曰:『何校滅耳,凶。』」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은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로움을 보지 않으면 힘쓰지 않고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는다. 작게 징계하여 크게 경계하게 하니, 이것이 소인의 복이다. 『역』에 이르기를 '차꼬를 신겨 발꿈치를 없애니 무구하다.'라고 한 것은 이를 이른 것이다. 선은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기에 부족하고, 악은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하기에 부족하다. 소인은 작은 선을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 하지 않고, 작은 악을 해로움이 없다고 여겨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릴 수 없고 죄가 커져 풀 수 없다. 『역』에 이르기를 '칼[枷]을 메어 귀를 없애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子曰:「危者,安其位者也。亡者,保其存者也。亂者,有其治者也。是故君子安而不忘危,存而不忘亡,治而不忘亂,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易曰:『其亡其亡,繫于苞桑。』」 子曰:「德薄而位尊,知小而謀大,力小而任重,鮮不及矣。易曰:『鼎折足,覆公餗,其形渥,凶。』言不勝其任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워지는 자는 그 자리를 편안히 여기는 자이다. 망하는 자는 그 존속함을 보전하려는[만 여기는] 자이다. 어지러워지는 자는 그 다스려짐을 [당연히] 가졌다고 여기는 자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속해도 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으니,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다. 『역』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하여 무성한 뽕나무에 매어 둔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얇은데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은데 꾀하는 것이 크며, 힘이 작은데 짐이 무거우면 [화에] 미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역』에 이르기를 '솥이 다리가 부러져 공(公)의 음식을 엎으니 그 모양이 젖어 흉하다.'라고 하였으니, 그 소임을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子曰:「知幾其神乎!君子上交不諂,下交不瀆,其知幾乎!幾者,動之微,吉之先見者也。君子見幾而作,不俟終日。易曰:『介于石,不終日,貞吉。』介如石焉,寧用終日,斷可識矣。君子知微知彰,知柔知剛,萬夫之望。」 子曰:「顏氏之子,其殆庶幾乎!有不善,未嘗不知;知之,未嘗復行也。易曰:『不遠復,无祇悔,元吉。』天地絪縕,萬物化醇;男女構精,萬物化生。易曰:『三人行,則損一人;一人行,則得其友。』言致一也。」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미를 아는 것은 신묘할 것이다! 군자는 위와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와 사귀되 함부로 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일 것이다! 기미란 움직임의 은미한 것이요 길함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역』에 이르기를 '돌처럼 굳으니 하루를 마치지 않아도 정(貞)하여 길하다.'라고 하였다. 돌처럼 굳으니 어찌 하루를 다하겠는가, 판단하여 알 수 있다. 군자는 은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부드러움을 알고 굳셈을 아니, 만 사람이 우러러보는 바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씨(顏氏)의 아들[안회(顏回)]은 거의 [도에] 가까울 것이다! 선하지 않음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다. 『역』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니 후회에 이르지 않아 원길(元吉)하다.'라고 하였다. 천지의 기운이 서로 얽혀 만물이 화하여 순후해지고, 남녀가 정기를 합하여 만물이 화하여 생겨난다. 『역』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잃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라고 하였으니, 하나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子曰:「君子安其身而後動,易其心而後語,定其交而後求。君子脩此三者,故全也。危以動,則民不與也。懼以語,則民不應也。无交而求,則民不與也。莫之與,則傷之者至矣。易曰:『莫益之,或擊之。立心勿恒,凶。』」 〔第五章〕 子曰:「乾坤,其易之門邪!乾,陽物也;坤,陰物也。陰陽合德,而剛柔有體,以體天地之撰,以通神明之德。」其稱名也,雜而不越,於稽其類,其衰世之意邪!夫易,彰往而察來,而微顯闡幽,開而當名辨物,正言斷辭,則備矣。其稱名也小,其取類也大,其旨遠,其辭文,其言曲而中,其事肆而隱,因貳以濟民行,以明失得之報。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 몸을 편안히 한 뒤에 움직이고, 그 마음을 평이하게 한 뒤에 말하며, 그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한다.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하다. 위태롭게 움직이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며 말하면 백성이 응하지 않는다. 사귐이 없이 구하면 백성이 주지 않는다. 함께하는 자가 없으면 해치는 자가 이른다. 『역』에 이르기를 '보태 주는 이가 없고 혹 치는 이가 있으니, 마음을 세움에 항상됨이 없으면 흉하다.'라고 하였다." [제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건곤은 『역』의 문일 것이다! 건은 양(陽)의 물건이고 곤은 음(陰)의 물건이다. 음양이 덕을 합하여 강유에 체(體)가 있으니, 이로써 천지의 일을 체현하고 신명의 덕에 통한다." 그 이름을 일컬음이 잡다하나 넘어서지 않으니, 그 종류를 상고해 보면 쇠퇴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 무릇 『역』은 지나간 것을 밝히고 올 것을 살피며, 은미한 것을 드러내고 그윽한 것을 밝히며, 열어서 이름에 맞게 하고 사물을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辭]을 판단하니 갖추어졌다. 그 이름을 일컬음은 작으나 그 종류를 취함은 크며, 그 뜻은 멀고 그 말은 문채가 있으며, 그 말은 굽으나 맞고 그 일은 펼쳐져 있으나 숨어 있으니, 의심[貳]으로 인하여 백성의 행함을 구제하고 잃음과 얻음의 보응을 밝힌다.
〔第六章〕 易之興也,其於中古乎!作易者,其有憂患乎!是故: 履,德之基也。謙,德之柄也。復,德之本也。恒,德之固也。損,德之脩也。益,德之裕也。困,德之辨也。井,德之地也。巽,德之制也。 履,和而至。謙,尊而光。復,小而辨於物。恒,雜而不厭。損,先難而後易。益,長裕而不没。困,窮而通。井,居其所而遷。巽,稱而隱。
[제6장] 『역』이 일어난 것은 중고(中古) 시대일 것이다! 『역』을 지은 자는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괘(履卦)는 덕의 기초이다. 겸괘(謙卦)는 덕의 자루이다. 복괘(復卦)는 덕의 근본이다. 항괘(恒卦)는 덕의 견고함이다. 손괘(損卦)는 덕의 닦음이다. 익괘(益卦)는 덕의 넉넉함이다. 곤괘(困卦)는 덕의 분별이다. 정괘(井卦)는 덕의 터전이다. 손괘(巽卦)는 덕의 제어이다. 이(履)는 화합하면서 지극하다. 겸(謙)은 높으면서 빛난다. 복(復)은 작으면서 사물을 분별한다. 항(恒)은 섞여 있으면서 싫어하지 않는다. 손(損)은 먼저는 어렵고 뒤에는 쉽다. 익(益)은 넉넉함을 기르되 꾸미지 않는다. 곤(困)은 궁하면서 통한다. 정(井)은 제자리에 있으면서 옮겨 준다. 손(巽)은 [사리에] 맞게 저울질하면서 드러내지 않는다.
履,以和行。謙,以制禮。復,以自知。恒,以一德。損,以遠害。益,以興利。困,以寡怨。井,以辯義。巽,以行權。 〔第七章〕 易之為書也不可遠,為道也屢遷;變動不居,周流六虛,上下无常,剛柔相易,不可為典要,唯變所適。其出入以度,外內使知懼。又明於憂患與故,无有師保,如臨父母。初率其辭而揆其方,既有典常,苟非其人,道不虛行。
이(履)로써 화합하여 행한다. 겸(謙)으로써 예를 절제한다. 복(復)으로써 스스로를 안다. 항(恒)으로써 덕을 한결같이 한다. 손(損)으로써 해로움을 멀리한다. 익(益)으로써 이로움을 일으킨다. 곤(困)으로써 원망을 적게 한다. 정(井)으로써 의(義)를 분별한다. 손(巽)으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제7장] 『역』이라는 책은 멀리할 수 없고, 그 도는 자주 옮긴다. 변동하여 머물지 않고 육허(六虛)를 두루 흘러,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니, 고정된 법칙으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가 나아가는 대로 따른다. 그 나가고 들어옴이 법도로써 하여 밖과 안에서 두려움을 알게 한다. 또 우환과 그 연고를 밝혀, 스승과 보호자가 없어도 부모를 대하는 듯하게 한다.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방향을 헤아리면 이미 일정한 법도가 있으나,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易之為書也,原始要終以為質也。六爻相雜,唯其時物也。其初難知,其上易知,本末也。初辭擬之,卒成之終。若夫雜物撰德,辨是與非,則非其中爻不備。噫,亦要存亡吉凶,則居可知矣。知者觀其彖辭,則思過半矣。 〔第八章〕 二與四同功而異位,其善不同:二多譽,四多懼,近也。柔之為道,不利近者,其要無咎,其用柔中也。三與五同功而異位,其遇不同:三多凶,五多功,貴賤之等也。其柔危,其剛勝邪?
『역』이라는 책은 시작을 근원하고 끝을 요약하여 바탕으로 삼는다. 육효가 서로 섞이는 것은 오직 그 때와 사물이다. 그 초효(初爻)는 알기 어렵고 그 상효(上爻)는 알기 쉬우니, 뿌리와 끝이기 때문이다. 초효의 말로 견주고 끝에서 이를 완성한다. 사물을 섞고 덕을 가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으로 말하면, 그 중효(中爻)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아, 또한 존망과 길흉을 요약하면 가만히 앉아서도 알 수 있다. 지혜로운 자가 그 단사(彖辭)를 보면 생각이 반을 넘을 것이다. [제8장]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공(功)은 같으나 자리가 다르니 그 선함이 같지 않다. 이효는 명예가 많고 사효는 두려움이 많으니, [오효(五爻)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柔)의 도는 [존위에] 가까운 것이 이롭지 않으나, 그 요체가 허물이 없는 것은 그 유로써 중(中)에 있기 때문이다. 삼효(三爻)와 오효는 공은 같으나 자리가 다르니 그 만나는 바가 같지 않다. 삼효는 흉함이 많고 오효는 공이 많으니, 귀천의 등급 때문이다. 그 유는 위태롭고 그 강은 이겨 내는 것인가?
《易》之為書也,廣大悉備:有天道焉,有人道焉,有地道焉,兼三材而兩之,故六。六者,非它也,三材之道也。道有變動,故曰爻;爻有等,故曰物;物相雜,故曰文;文不當,故吉凶生焉。 《易》之興也,其當殷之末世,周之盛德邪!當文王與紂之事邪!是故其辭危,危者使平,易者使傾,其道甚大,百物不廢,懼以終始,其要无咎;此之謂易之道也。
『역』이라는 책은 넓고 커서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늘의 도가 있고, 사람의 도가 있으며, 땅의 도가 있으니, 삼재(三才)를 겸하여 둘씩 하였으므로 여섯이다. 여섯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 도에 변동이 있으므로 효(爻)라 하고, 효에 등급이 있으므로 물(物)이라 하며, 물이 서로 섞이므로 문(文)이라 하고, 문이 마땅하지 않으므로 길흉이 생긴다. 『역』이 일어난 것은 은(殷)나라의 말세, 주(周)나라의 덕이 성할 때에 해당할 것이다!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에 해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말이 위태로우니, 위태롭게 여기는 자는 평안하게 하고 쉽게 여기는 자는 기울게 한다. 그 도가 매우 커서 온갖 사물을 폐하지 않으니, 두려워하여 처음과 끝을 삼가면 그 요체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를 일러 『역』의 도라 한다.
〔第九章〕 夫乾,天下之至健也;德行恒易以知險。夫坤,天下之至順也;德行恒簡以知阻。能說諸心,能研諸侯之慮,定天下之吉凶,成天下之亹亹者。是故變化云為,吉事有祥,象事知器,占事知來。 天地設位,聖人成能;人謀鬼謀,百姓與能。八卦以象告,爻彖以情言,剛柔雜居,而吉凶可見矣。變動以利言,吉凶以情遷。是故愛惡相攻而吉凶生,遠近相取而悔吝生,情偽相感而利害生。凡易之情,近而不相得,則凶或害之,悔且吝。 將叛者其辭慚,中心疑者其辭枝;吉人之辭寡,躁人之辭多;誣善之人其辭游,失其守者其辭屈。
[제9장] 무릇 건은 천하의 지극히 굳센 것이니, 덕행이 항상 쉬워서 험함을 안다. 무릇 곤은 천하의 지극히 순한 것이니, 덕행이 항상 간략하여 막힘을 안다. 마음에 기뻐할 수 있고 생각을 연마할 수 있어,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의 부지런히 힘쓸 일을 이룬다. 이 때문에 변화하고 말하고 행함에, 길한 일에는 상서가 있고, 일을 형상하여 기물을 알며, 일을 점쳐 미래를 안다. 천지가 자리를 베풀고 성인이 능함을 이루니, 사람이 꾀하고 귀신이 꾀하여 백성도 그 능함에 참여한다. 팔괘는 상(象)으로 알리고 효사와 단사는 실정으로 말하니, 강유가 섞여 있어 길흉을 볼 수 있다. 변동은 이로움으로 말하고 길흉은 실정에 따라 옮겨 간다. 이 때문에 사랑과 미움이 서로 공격하여 길흉이 생기고, 멀고 가까움이 서로 취하여 회린이 생기며, 참과 거짓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과 해로움이 생긴다. 무릇 『역』의 실정은 가까우면서 서로 얻지 못하면 흉하거나 혹 해치며, 뉘우치고 또 부끄럽게 된다. 장차 배반하려는 자는 그 말이 부끄러워하고, 마음속에 의심하는 자는 그 말이 갈라지며,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으며, 선을 모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떠돌고, 그 지킬 바를 잃은 자는 그 말이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