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元亨。利貞。 初九:潛龍勿用。 九二:見龍在田,利見大人。 九三: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九四:或躍在淵,无咎。 九五:飛龍在天,利見大人。 上九:亢龍,有悔。 用九:見羣龍无首,吉。 彖曰: 大哉乾元,萬物資始,乃統天。雲行雨施,品物流形,大明終始,六位時成。
건괘(乾卦)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다. 초구(初九):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구이(九二):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구삼(九三):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며 저녁까지 두려워하듯 하니,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으니, 무구하다. 구오(九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상구(上九):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니, 회(悔)가 있다. 용구(用九): 여러 용이 나타나되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이에 힘입어 비롯되니, 곧 하늘을 거느린다. 구름이 가고 비가 베풀어져 온갖 사물이 형체를 이룬다. 처음과 끝을 크게 밝히니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時乘六龍以御天,乾道變化,各正性命,保合大和(一作太和),乃利貞。 首出庶物,萬國咸寧。 象曰: 天行健,君子以自強不息。 潛龍勿用,陽在下也。 見龍在田,德施普也。 終日乾乾,反復道也。 或躍在淵,進无咎也。 飛龍在天,大人造也。 亢龍有悔,盈不可久也。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건도(乾道)가 변화하여 각기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고, 대화(大和)(한편 태화(太和)로 되어 있다)를 보전하고 합하니, 이에 이(利)하고 정(貞)하다. 뭇 사물 위로 머리를 내미니 온 나라가 다 편안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쉬지 않는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陽)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의 베풂이 두루 미친다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도를 되풀이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어나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悔)가 있다는 것은 가득 찬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用九,天德不可為首也。 文言曰: 元者,善之長也。亨者,嘉之會也。利者,義之和也。貞者,事之幹也。君子體仁足以長人,嘉會足以合禮,利物足以和義,貞固足以幹事。君子行此四德者,故曰:「乾,元、亨、利、貞。」 初九曰:「潛龍,勿用。」何謂也?子曰:「龍德而隱者也。不易乎世,不成乎名,遯世无悶,不見是而无悶,樂則行之,憂則違之,確乎其不可拔,潛龍也。」
용구(用九)는 하늘의 덕은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 형(亨)은 아름다움의 모임이다. 이(利)는 의(義)의 조화이다. 정(貞)은 일의 줄기이다. 군자는 인(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기를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禮)에 합할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에 조화될 수 있고, 곧고 굳건하여 일을 주관할 수 있다. 군자는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는 자이므로 "건(乾)은 원(元)·형(亨)·이(利)·정(貞)이다"라고 한다. 초구(初九)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숨어 있는 자이다. 세상에 따라 바뀌지 않고, 이름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살아도 번민이 없고, 옳다고 인정받지 못해도 번민이 없다.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떠나니, 확고하여 뽑을 수 없는 것이 잠긴 용이다."
九二曰:「見龍在田,利見大人。」何謂也?子曰:「龍德而正中者也。庸言之信,庸行之謹;閑邪存其誠,善世而不伐,德博而化。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九三曰:「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何謂也?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知至至之,可與言幾也。知終終之,可與存義也。是故居上位而不驕,在下位而不憂,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르게 중(中)에 있는 자이다. 평소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을 삼가며, 사악함을 막아 그 정성을 보존하고, 세상을 선하게 하되 자랑하지 않으며, 덕이 넓어 [사람들을] 교화한다. 『역(易)』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임금의 덕이다."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며 저녁까지 두려워하듯 하니,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증진하고 업을 닦는다. 충(忠)과 신(信)은 덕을 증진하는 방법이고, 말을 닦아 그 정성을 세우는 것은 업에 머무는 방법이다. 이를 곳을 알아 이르니 더불어 기미(幾微)를 말할 수 있고, 마칠 곳을 알아 마치니 더불어 의(義)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어 그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九四曰:「或躍在淵,无咎。」何謂也?子曰:「上下无常,非為邪也。進退无恒,非離羣也。君子進德脩業,欲及時也。故无咎。」 九五曰:「飛龍在天,利見大人。」何謂也?子曰:「同聲相應,同氣相求;水流濕,火就燥,雲從龍,風從虎;聖人作而萬物覩;本乎天者親上,本乎地者親下,則各從其類也。」
구사(九四)에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으니 무구(无咎)하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으나 사악함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항상됨이 없으나 무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덕을 증진하고 업을 닦는 것은 때에 미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구오(九五)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매 만물이 우러러본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와 친하니, 각기 그 부류를 따르는 것이다."
上九曰:「亢龍,有悔。」何謂也?子曰:「貴而无位,高而无民,賢人在下位而无輔,是以動而有悔也。」 「潛龍勿用」,下也。 「見龍在田」,時舍也。 「終日乾乾」,行事也。 「或躍在淵」,自試也。 「飛龍在天」,上治也。 「亢龍有悔」,窮之災也。
상구(上九)에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니 회(悔)가 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으나 백성이 없으며, 현인이 아랫자리에 있으나 돕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에 맞추어 머무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가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乾元用九」,天下治也。 「潛龍勿用」,陽氣潛藏。 「見龍在田」,天下文明。 「終日乾乾」,與時偕行。 「或躍在淵」,乾道乃革。 「飛龍在天」,乃位乎天德。 「亢龍有悔」,與時偕極。 「乾元用九」,乃見天則。 乾元者,始而亨者也。利貞者,性情也。乾始能以美利利天下,不言所利,大矣哉!大哉乾元,剛健中正,純粹精也。六爻發揮,旁通情也。時乘六龍,以御天也。雲行雨施,天下平也。
"건원(乾元)이 구(九)를 쓴다"는 것은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陽氣)가 잠겨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文明)해지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때와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건도(乾道)가 이에 바뀌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이에 하늘의 덕에 자리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가 있다"는 것은 때와 더불어 함께 극에 이르는 것이다. "건원이 구를 쓴다"는 것은 이에 하늘의 법칙을 보이는 것이다. 건원(乾元)은 비롯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이정(利貞)은 성정(性情)이다. 건(乾)의 비롯함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으나 이롭게 하는 바를 말하지 않으니, 위대하도다!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강건하고 중정(中正)하며 순수하고 정밀하다. 여섯 효(爻)가 발휘되어 두루 실정에 통한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구름이 가고 비가 베풀어지니 천하가 평안하다.
君子以成德為行,日可見之行也。潛之為言也,隱而未見,行而未成,是以君子弗用也。 君子學以聚之,問以辯之,寬以居之,仁以行之,易曰:「見龍在田,利見大人。」君德也。 九三,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故乾乾因其時而惕,雖危,无咎矣。 九四,重剛而不中,上不在天,下不在田,中不在人,故或之。或之者,疑之也,故无咎。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與日月合其明,與四時合其序,與鬼神合其吉凶;先天而天弗違,後天而奉天時,天且弗違,而況於人乎?況於鬼神乎? 亢之為言也,知進而不知退,知存而不知亡,知得而不知喪;其唯聖人乎?知進退存亡而不失其正者,其唯聖人乎!
군자는 덕을 이루는 것을 행실로 삼으니, 날마다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행실이다. 잠(潛)이라는 말은 숨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고, 행하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가 쓰지 않는다. 군자는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 처하고, 인(仁)으로 행한다. 『역(易)』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임금의 덕이다. 구삼(九三)은 강(剛)이 거듭되었으나 중(中)이 아니어서,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어 그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는 강이 거듭되었으나 중이 아니어서,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사람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或)'이라 하였다. '혹'이라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무구하다. 무릇 대인(大人)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吉凶)을 합한다. 하늘보다 앞서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항(亢)이라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보존할 줄만 알고 망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모르는 것이다. 오직 성인뿐이로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보존하고 망함을 알아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는 오직 성인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