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人稟命有二品,一曰所當觸值之命,二曰強弱壽夭之命。所當觸值,謂兵燒壓溺也。強壽弱夭,謂稟氣渥薄也。兵燒壓溺遭以所稟為命,未必有審期也。若夫強弱夭壽以百為數,不至百者,氣自不足也。夫稟氣渥則其體強,體強則其命長;氣薄則其體弱,體弱則命短。命短則多病,壽短。始生而死,未產而傷,稟之薄弱也。渥強之人,不卒其壽,若夫無所遭遇,虛居困劣,短氣而死,此稟之薄,用之竭也。此與始生而死,未產而傷,一命也。皆由稟氣不足,不自致於百也。
무릇 사람이 받은 명에는 두 품(品)이 있으니, 첫째는 마땅히 부딪쳐 만나는 명이고, 둘째는 강약·수요(壽夭)의 명이다. 마땅히 부딪쳐 만난다는 것은 병화(兵火)·화재·압사·익사를 이른다. 강하여 오래 살고 약하여 일찍 죽는다는 것은 받은 기(氣)의 두텁고 얇음을 이른다. 병화·화재·압사·익사를 만나는 것은 받은 바로 명을 삼으나 반드시 확실한 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강약·요수로 말하면 백(百)을 수로 삼으니, 백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기가 스스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받은 기가 두터우면 그 몸이 강하고, 몸이 강하면 그 명이 길며, 기가 얇으면 그 몸이 약하고, 몸이 약하면 명이 짧다. 명이 짧으면 병이 많고 수명이 짧다. 처음 태어나서 죽고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상하는 것은 받은 것이 얇고 약하기 때문이다. 두텁고 강한 사람이 그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 만약 만난 [재난이] 없는데도 헛되이 머물며 곤궁하고 쇠약하여 기가 짧아져 죽는다면, 이는 받은 것이 얇고 쓰는 것이 다한 것이다. 이는 처음 태어나서 죽고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상하는 것과 같은 명이다. 모두 받은 기가 부족함에 말미암아 스스로 백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人之稟氣,或充實而堅強,或虛劣而軟弱。充實堅強,其年壽;虛劣軟弱,失棄其身。天地生物,物有不遂。父母生子,子有不就。物有為實,枯死而墮。人有為兒,夭命而傷。使實不枯,亦至滿歲。使兒不傷,亦至百年。然為實兒而死枯者,稟氣薄,則雖形體完,其虛劣氣少,不能充也。兒生,號啼之聲鴻朗高暢者壽,嘶喝濕下者夭。何則?稟壽夭之命,以氣多少為主性也。婦人疏字者子活,數乳者子死。何則?疏而氣渥,子堅強;數而氣薄,子軟弱也。懷子而前已產子死,則謂所懷不活。名之曰懷,其意以為已產之子死,故感傷之子失其性矣。所產子死、所懷子凶者,字乳亟數,氣薄不能成也。雖成人形體,則易感傷,獨先疾病,病獨不治。
사람이 받은 기는 혹은 충실하여 굳세고 강하며, 혹은 허약하고 열등하여 무르고 약하다. 충실하고 굳세면 오래 살고, 허약하고 무르면 그 몸을 잃는다. 천지가 사물을 낳으나 사물에는 [끝까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낳으나 자식에는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사물 가운데 열매가 되었다가 말라 죽어 떨어지는 것이 있다. 사람 가운데 아이가 되었다가 명이 짧아 상하는 이가 있다. 만약 열매가 마르지 않는다면 또한 만 한 해에 이르고, 만약 아이가 상하지 않는다면 또한 백 년에 이른다. 그러나 열매와 아이가 되어 말라 죽는 것은 받은 기가 얇기 때문이니, 비록 형체가 온전하여도 허약하고 기가 적어 채울 수 없다. 아이가 태어날 때 울음소리가 크고 밝으며 높고 시원하면 오래 살고, 쉬고 탁하며 낮으면 일찍 죽는다. 어째서인가? 수요의 명을 받음은 기의 많고 적음을 주된 성(性)으로 삼기 때문이다. 부인이 드물게 낳으면 자식이 살고, 자주 낳으면 자식이 죽는다. 어째서인가? 드물면 기가 두터워 자식이 굳세고 강하며, 자주 하면 기가 얇아 자식이 무르고 약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가졌는데 앞서 이미 낳은 자식이 죽었으면, 품은 아이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이름하여 ‘회(懷)’라 하니, 그 뜻은 이미 낳은 자식이 죽었으므로 감응하여 상한 자식이 그 본성을 잃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낳은 자식이 죽고 품은 자식이 흉한 것은 낳고 젖먹이기가 잦아 기가 얇아서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의 형체를 이루었어도 쉽게 감응하여 상하고, 홀로 먼저 병들며 병이 홀로 낫지 않는다.
百歲之命,是其正也。不能滿百者,雖非正,猶為命也。譬猶人形一丈,正形也。名男子為丈夫,尊公嫗為丈人。不滿丈者,失其正也。雖失其正,猶乃為形也。夫形不可以不滿丈之故謂之非形,猶命不可以不滿百之故謂之非命也。非天有長短之命,而人各有稟受也。由此言之,人受氣命於天,卒與不卒,同也。語曰:「圖王不成,其弊可以霸。」霸者,王之弊也。霸本當至於王,猶壽當至於百也。不能成王,退而為霸。不能至百,消而為夭。王霸同一業,優劣異名。壽夭或一氣,長短殊數。何以知不滿百為夭者?百歲之命也,以其形體小大長短同一等也。百歲之身,五十之體,無以異也。身體不異,血氣不殊。鳥獸與人異形,故其年壽與人殊數。
백 세의 명이 그 바른 것이다. 백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비록 바르지는 않으나 오히려 명이다. 비유하면 사람의 형체가 한 장(丈)인 것이 바른 형체인 것과 같다. 남자를 이름하여 장부(丈夫)라 하고, 공(公)과 할미를 높여 장인(丈人)이라 한다.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는 것은 그 바름을 잃은 것이다. 비록 그 바름을 잃었으나 오히려 형체이다. 형체를 한 장을 채우지 못한다는 까닭으로 형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듯이, 명도 백을 채우지 못한다는 까닭으로 명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하늘에 길고 짧은 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각기 받은 바가 있는 것이다. 이로써 말하면 사람은 하늘에서 기와 명을 받으니, [수명을] 마치든 마치지 못하든 같은 것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왕업을 도모하다 이루지 못하면 그 폐단으로 패자가 될 수 있다.” 하였다. 패자는 왕자의 폐단이다. 패자는 본래 마땅히 왕자에 이르러야 하니, 수명이 마땅히 백에 이르러야 하는 것과 같다. 왕업을 이루지 못하면 물러나 패자가 된다. 백에 이르지 못하면 줄어들어 요절이 된다. 왕과 패는 같은 한 가지 업이나 우열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수와 요는 혹 한 가지 기이나 길고 짧음에 따라 수가 다르다. 어떻게 백을 채우지 못함이 요절임을 아는가? 백 세의 명이니, 그 형체의 크고 작음과 길고 짧음이 같은 등급이기 때문이다. 백 세의 몸과 오십 세의 몸은 다를 바가 없다. 신체가 다르지 않으니 혈기도 다르지 않다. 새와 짐승은 사람과 형체가 다르므로 그 수명도 사람과 수가 다르다.
何以明人年以百為壽也?世間有矣。儒者說曰:太平之時,人民侗長百歲左右,氣和之所生也。《堯典》曰:「朕在位七十載,求禪得舜。」舜征三十歲在位。堯退而老,八歲而終,至殂落九十八歲。未在位之時,必已成人,今計數百有餘矣。又曰:「舜生三十,征用三十,在位五十載,陟方乃死。」適百歲矣。
무엇으로 사람의 나이가 백을 수로 삼음을 밝히는가? 세상에 [그런 예가] 있다. 유자가 말하기를 “태평한 때에는 백성이 크고 장대하여 백 세 안팎을 사니, 기가 조화로운 데서 생긴 것이다.” 하였다. 「요전(堯典)」에 이르기를 “짐이 재위한 지 칠십 년에 선양할 이를 구하여 순을 얻었다.” 하였다. 순은 부름을 받아 삼십 년을 재위하였다. 요는 물러나 늙어 팔 년 만에 죽었으니, 붕어함에 이르러 구십팔 세였다. 아직 재위하기 전에 반드시 이미 성인이었을 것이니, 지금 계산하면 백여 세이다. 또 이르기를 “순은 나서 삼십 년, 부름을 받아 쓰인 지 삼십 년, 재위 오십 년에 남방을 순수하다가 이내 죽었다.” 하였다. 꼭 백 세이다.
文王謂武王曰:「我百,爾九十。吾與爾三焉。」文王九十七而薨,武王九十三而崩。周公,武王之弟也,兄弟相差不過十年。武王崩,周公居攝七年,復政退老,出入百歲矣。邵公,周公之兄也,至康王之時,尚為太保,出入百有余歲矣。聖人稟和氣,故年命得正數。氣和為治平,故太平之世多長壽人。百歲之壽,蓋人年之正數也,猶物至秋而死,物命之正期也。物先秋後秋,則亦如人死或增百歲或減百也。先秋後秋為期,增百減百為數。物或出地而死,猶人始生而夭也。物或逾秋不死,亦如人年多度百至於三百也。傳稱老子二百余歲,邵公百八十,高宗享國百年,周穆王享國百年。并未享國之時,皆出百三十、四十歲矣。
문왕이 무왕에게 말하기를 “나는 백 세이고 너는 구십 세이다. 내가 너에게 셋을 준다.” 하였다. 문왕은 구십칠 세에 훙(薨)하였고, 무왕은 구십삼 세에 붕(崩)하였다. 주공은 무왕의 아우이니 형제의 차이는 십 년을 넘지 않는다. 무왕이 붕어하자 주공이 섭정한 지 칠 년에 정사를 돌려주고 물러나 늙었으니, 백 세 안팎이었다. 소공(邵公)은 주공의 형인데 강왕(康王) 때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태보(太保)였으니, 백여 세 안팎이었다. 성인은 조화로운 기를 받았으므로 수명이 바른 수를 얻었다. 기가 조화로우면 다스림이 평안하므로 태평한 세상에는 장수하는 사람이 많다. 백 세의 수명은 대개 사람 나이의 바른 수이니, 사물이 가을에 이르러 죽는 것이 사물 명의 바른 기한인 것과 같다. 사물이 가을보다 먼저 [죽거나] 가을보다 뒤에 [죽는] 것은, 또한 사람이 죽을 때 혹 백 세를 넘기거나 혹 백 세에 못 미치는 것과 같다. 가을보다 먼저와 뒤를 기한으로 삼고, 백을 넘김과 모자람을 수로 삼는다. 사물이 혹 땅에서 나오자마자 죽는 것은 사람이 처음 태어나서 요절하는 것과 같다. 사물이 혹 가을을 넘기고도 죽지 않는 것은 또한 사람의 나이가 백을 많이 넘어 삼백에 이르는 것과 같다. 전(傳)에 일컫기를 노자(老子)는 이백여 세, 소공은 백팔십 세, 고종(高宗)은 나라를 누린 지 백 년, 주목왕(周穆王)은 나라를 누린 지 백 년이라 하였다. 아울러 나라를 누리기 전의 [나이를 더하면] 모두 백삼십·사십 세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