欲識三元萬物宗,先觀帝載與神功。 天有陰陽,故春木,夏火,秋金,冬水,季土。得時而顯其神功,命中天地元之理,悉本於此,日干為天元,地支為地元,支中所為人元。 坤元合德機緘通,五氣偏全定吉凶。 地有剛柔,故五行佈於東西南北,與天合德,而神其機緘,賦於人者,有偏全之不一,故吉凶定焉。 戴天履地人為貴,順則吉兮悖則凶。 凡物莫不得五行,而戴天履地,惟人得五行之全,故為貴,其有吉凶之不一者,以其得於五行之順與逆也。 欲與人間開聾瞶,順悖之機須理會。 不知命者如聾瞶,知命者於順悖之機而能理會之,庶可以開之耳。 理承氣行荳有常,進兮退兮宜抑揚。 翕闢往來皆氣,而理行乎其間,行之始而進,進之極。則為退之機,如三月甲木是也,行之盛而退,退之極,則為進之機,如九月甲木是也,學者能抑揚其淺深,斯可以言命。 配合干支仔細詳,斷人禍福與災祥。 干支配合,細詳其進退之機。 五陽皆陽丙為最,五陰皆陰癸為至。 甲,丙,戊,庚,壬,為陽,獨丙火稟陽之精,而為陽中之陽。 乙,丁,己,辛,癸,為陰,獨癸水稟陰之精,而為陰中之陰。 五陽從氣不從勢,五陰從勢無情義。 五陽得陽之氣,即能成其陽剛,不畏財煞之勢,五陰得陰之氣,即能成其陰順,故木盛則從木,火盛則從火,金盛則從金,水盛則從水,土盛則從土,於情義之所在,見其勢衰則忘之,若從得其正,亦未必於無情義也。
삼원(三元)이 만물의 근본[宗]임을 알고자 하면, 먼저 제재(帝載)와 신공(神功)을 살펴야 한다. 하늘에는 음양이 있으므로 봄은 목(木), 여름은 화(火), 가을은 금(金), 겨울은 수(水), 사계(四季)는 토(土)이다. 때를 얻어 그 신공(神功)을 드러내니, 명(命) 가운데 천원(天元)·지원(地元)·[인원(人元)]의 이치는 모두 여기에 근본한다. 일간(日干)은 천원(天元)이고, 지지(地支)는 지원(地元)이며, 지지 속에 [감추어진] 것은 인원(人元)이다. 곤원(坤元)이 [하늘과] 덕을 합하여 기함(機緘)이 통하니, 오기(五氣)의 치우침과 온전함이 길흉을 정한다. 땅에는 강유(剛柔)가 있으므로 오행이 동서남북에 펼쳐져 하늘과 덕을 합하고 그 기함(機緘)을 신묘하게 하는데, 사람에게 부여된 것은 치우침과 온전함이 한결같지 않으므로 길흉이 이로써 정해진다.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것 가운데 사람이 귀하니, 순(順)하면 길하고 패(悖)하면 흉하다. 무릇 만물 가운데 오행을 얻지 않은 것이 없어 [모두] 하늘을 이고 땅을 밟지만, 오직 사람만이 오행의 온전함을 얻었으므로 귀하다. 그 길흉이 한결같지 않은 것은 오행을 얻음에 순(順)과 역(逆)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의 귀머거리와 소경을 틔워 주고자 한다면, 순패(順悖)의 기틀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명(命)을 알지 못하는 자는 귀머거리·소경과 같으니, 명을 아는 자가 순패의 기틀을 이해할 수 있어야 거의 그들을 틔워 줄 수 있을 것이다. 이(理)는 기(氣)를 이어 행하니 어찌 일정함이 있겠는가, 나아가고 물러남에 마땅히 억양(抑揚)해야 한다. 닫히고 열리며[翕闢] 가고 오는 것은 모두 기(氣)이고, 이(理)는 그 사이에서 행한다. 행함이 시작되면 나아가고, 나아감이 극에 이르면 물러남의 기틀이 되니, 3월의 갑목(甲木)이 이것이다. 행함이 성하면 물러나고, 물러남이 극에 이르면 나아감의 기틀이 되니, 9월의 갑목(甲木)이 이것이다. 배우는 자가 그 깊고 얕음을 억양(抑揚)할 수 있으면 비로소 명(命)을 말할 수 있다. 간지(干支)의 배합을 자세히 살펴야 사람의 화복(禍福)과 재상(災祥)을 판단할 수 있다. 간지를 배합하여 그 진퇴(進退)의 기틀을 자세히 살핀다. 오양(五陽)은 모두 양이나 병(丙)이 으뜸이고, 오음(五陰)은 모두 음이나 계(癸)가 지극하다.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은 양이니, 오직 병화(丙火)만이 양의 정기(精)를 받아 양 중의 양이 된다. 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는 음이니, 오직 계수(癸水)만이 음의 정기를 받아 음 중의 음이 된다. 오양(五陽)은 기(氣)를 따르고 세(勢)를 따르지 않으며, 오음(五陰)은 세(勢)를 따르니 정의(情義)가 없다. 오양은 양의 기를 얻으면 곧 그 양강(陽剛)을 이룰 수 있어 재성(財星)과 칠살(七殺)의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음은 음의 기를 얻으면 곧 그 음순(陰順)을 이루므로, 목이 성하면 목을 따르고, 화가 성하면 화를 따르고, 금이 성하면 금을 따르고, 수가 성하면 수를 따르고, 토가 성하면 토를 따른다. 정의(情義)가 있는 곳에 대해서도 그 세가 쇠함을 보면 잊어버리지만, 따름에 그 바름을 얻는다면 반드시 정의가 없는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