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를 것인가 버틸 것인가
넘쳐서 따르는 사주와 눌려서 따르는 사주. 정반대 두 판이 같은 이름의 판정에 이른다. 종격의 문턱이 어디인지, 그리고 그 문턱을 정하는 것이 계산인지 약속인지를 짚는다.
한눈에 너무 강해서 따르는 사주가 있고, 너무 약해서 따르는 사주가 있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판정의 문법은 같다. 거스를 수 없으면 따른다. 문턱을 넘느냐 못 넘느냐로 처방이 정반대가 된다. 그런데 그 문턱의 높이를 정한 것은 계산이 아니라 사람의 약속이다.
넘쳐서 따르는 사주
時 日 月 年
丙 戊 己 戊
辰 戌 未 戌
↑ 일간 戊
여덟 글자 가운데 일곱이 토다. 세력으로 64.5%. 거기에 토를 낳아 주는 인수 화 한 글자를 더하면 일간 편이 사주의 89%에 이른다.
일간을 다스릴 재성 수, 잡아 줄 관살 목, 빼 줄 식상 금. 셋 다 드러난 글자로 하나도 없다. 일간이 부딪힐 상대 자체가 사라진 판이다.
이런 자리를 종왕격(從旺格)이라 한다. 왕(旺)한 견겁 무리의 흐름에 일간이 자신을 맡긴다. 용신은 그 토 자신이다.
희신은 화다. 시간의 병화(丙)가 그 자리다. 화가 토를 낳기 때문이다. 사주가 따르기로 한 그 흐름을 앞에서 떠받치는 글자다. 한 글자뿐이지만 일간 바로 옆이라 받침이 직접적이다.
여기서 무엇이 가장 해로운가. 관살 목이다. 일곱 글자의 토를 목 한둘로 누르려 들면 눌리는 것이 아니라 반발이 인다. 다행히도 이 사주엔 목이 없다. 없어서 다행인 글자가 있는 판이다.
눌려서 따르는 사주
이번엔 정반대다.
時 日 月 年
甲 丁 壬 丁
辰 亥 子 丑
↑ 일간 丁
일간은 정화(丁)다. 한겨울 자월(子月)에 났다. 화는 두 글자나 되는데 세력이 도합 0.2%. 거의 자취가 없다.
반면 수가 68.2%. 지지는 해자축(亥子丑)으로 묶여 북방의 물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게다가 두 정화가 모두 월간의 임수(壬)와 천간에서 합으로 묶인다. 꺼져 가는 두 촛불이 거센 물에 매인 형국이다.
이 수는 일간을 극하는 글자, 관살이다. 나를 치는 것이 사주의 칠 할이다. 버틸 수 있는가. 없다. 그래서 일간은 그 관살에 순응한다. 종관격(從官格)이다.
이 판의 용신은 월간의 임수(壬), 사주가 따르는 그 왕신이다. 희신은 목이고, 시간의 갑목(甲)이 그 자리다. 수가 목을 낳고 목이 일간 화를 낳는다. 거센 물이 일간을 바로 치지 않고 한 번 거쳐 흐르게 하는 자리다. 따르는 사주에도 숨 통하는 구멍은 있다.
앞의 사주는 내 편이 넘쳐서 따랐고, 이 사주는 나를 치는 것이 너무 커서 따랐다. 방향이 정반대인데 판정의 문법은 똑같다. 거스를 수 없으면 따른다.
문턱의 높이
두 사주는 모두 극단이다. 89%와 68%. 이 정도면 종격이라는 데 이견이 적다.
문제는 극단이 아닌 판이다.
일간의 뿌리가 하나 남았다면 아직 버티는 것인가. 그 뿌리가 충으로 흔들리고 있다면 없는 것으로 쳐야 하는가. 인수가 하나 떠 있는데 그것이 합으로 묶여 제 일을 못 한다면 살아 있는 받침인가 죽은 받침인가.
이 물음들에 자로 잰 듯한 답은 없다. 어떤 유파는 뿌리 하나만 살아 있어도 종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어떤 유파는 그 뿌리가 무력하면 종으로 본다. 문턱의 높이가 유파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턱 위와 아래에서 처방은 정반대가 된다. 문턱 아래라면 인수로 돕는 것이 답이고, 문턱 위라면 인수가 짐이다. 같은 사주, 같은 계산, 다른 약속. 답이 정반대로 뒤집힌다.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기계는 이 문턱을 숫자로 들고 있다. 어느 세력 이하, 어느 통근 이하면 종으로 판정하라는 조항이 코드 안에 적혀 있다.
이 숫자를 신탁처럼 받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계산의 결론이 아니라 계산에 들어간 전제다. 사람이 넣은 값이다.
그렇다고 이 숫자가 자의적인 것도 아니다. 수백 년의 사례와 논쟁이 쌓여 좁혀진 범위이고, 그 범위 안에서 대다수의 판이 같은 답으로 모인다. 흔들리는 것은 경계선 위의 소수다.
정직한 계산이 할 일은 그 소수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이 사주는 문턱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답이 단단하다고 말하고, 저 사주는 문턱 위에 걸터앉아 있어 판정이 갈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확신의 크기까지 함께 내놓는 것.
기계가 사람보다 나은 자리는 여기다.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확신하는지를 잘 모른다. 애매한 판을 만나도 어제 본 사주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술술 답을 낸다. 기계는 애매함을 애매함으로 출력할 수 있다.
그 여백에 대하여
따를 것인가 버틸 것인가.
명리는 이 물음을 격국의 이름으로 정리해 두었다. 그런데 나는 이 물음이 격국의 물음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거스를 수 없는 것 앞에 섰을 때, 사람은 늘 이 문턱을 혼자 정한다. 여기까지는 버틸 만한가. 이제는 따라야 하는가. 아무도 정확한 눈금을 주지 않는다. 잘못 정하면 무너지고, 그래도 정해야 한다.
계산은 이 문턱을 숫자로 적어 준다. 그러나 그 숫자를 어디에 놓을지는, 끝내 사람이 정한다.
한 줄 요약: 넘쳐서 따르든 눌려서 따르든 문법은 하나다. 다만 그 문턱의 높이는 계산이 아니라 약속이고, 정직한 계산은 문턱 위에 걸터앉은 사주를 숨기지 않는다.
내 사주는 문턱의 어디쯤에 있을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하나로 이룬 사주. 한 오행이 사주를 통째로 장악한 다섯 개의 특별한 판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