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이 길을 꺾다
일간이 버티기를 포기하고 가장 강한 흐름을 따르는 자리, 종격. 여기서 처방은 통째로 뒤집힌다. 나를 돕던 글자가 짐이 되고, 나를 치던 글자가 답이 된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규칙과 학습이 처음으로 갈린다.
한눈에 사주가 한쪽으로 극단까지 쏠리면 일간은 버티기를 포기하고 그 흐름을 따른다. 종격이다. 종격에서는 억부의 처방이 통째로 뒤집힌다. 나를 돕던 인수가 짐이 되고, 나를 치던 글자가 답이 된다. 문제는 어디부터가 종격이냐다. 이것은 정도가 아니라 문턱의 문제다. 그리고 그 문턱 근처에서, 기계 안의 두 눈이 처음으로 다른 글자를 짚는다.
2부에 들어선다. 여기서부터는 규칙을 끝까지 밟아도 답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자리들을 본다.
발 디딜 곳이 없는 일간
時 日 月 年
庚 壬 丙 甲
戌 寅 寅 午
↑ 일간 壬
일간은 임수(壬)다. 그런데 이 사주에서 수의 세력은 1.2%. 여덟 글자 가운데 수는 일간 자신 하나뿐이고, 그마저 거의 무게가 없다.
대신 화가 47.8%, 목이 31.5%. 둘이 합쳐 사주의 팔 할이다. 게다가 지지가 인오술(寅午戌)로 거듭 묶여 화의 무리로 끌려간다. 일간이 발 디딜 자리가 남지 않았다.
여기서 억부의 문법을 그대로 쓰면 이렇게 된다. 일간이 극도로 약하다, 그러니 돕는다. 인수 금으로 받치고 견겁 수를 더한다.
명리는 이 자리에서 문법을 꺾는다.
물 한 방울로 산불을 끄려는 격이기 때문이다. 도와 봐야 그 도움은 왕한 화에 곧장 말라 버리고, 어설픈 저항은 도리어 판을 흔들어 놓는다. 그럴 바에는 따른다. 사주의 대세가 화라면, 일간도 그 화를 따라간다. 이것을 종(從)이라 한다. 재성 화를 따르니 종재격(從財格)이다.
이 사주의 용신은 월간의 병화(丙), 곧 따라가는 그 왕신 자체다.
희신은 토다. 시지의 술토(戌)가 그 자리다. 본디 일간을 극하던 관살이지만, 종재격에서는 왕신 화의 기운을 받아 그 흐름을 이어 주는 자리에 선다. 따르기로 한 순간, 나를 치던 글자까지 반가운 글자가 된다.
처방이 뒤집힌다
종격의 무서운 점은 여기다. 다섯 신의 자리가 통째로 뒤집힌다.
이 사주에서 기신, 곧 가장 해로운 글자는 무엇인가. 수다. 십성으로는 견겁이고, 드러난 글자로는 일간 자신 말고는 없다. 다시 말해 이 사주에서 일간 자신이 기신이다. 일간이 자기 길을 고집하는 순간 그것이 짐이 된다.
구신은 금이다. 일간을 낳아 주는 인수다. 보통이라면 약한 일간에게 가장 반가운 글자다. 여기서는 해롭다. 일간을 살려 대세를 거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도움이 짐이 된다.
일반 사주에서 배운 것이 그대로 뒤집히는 자리. 그래서 종격 판정은 함부로 내릴 수 없다. 판정 하나가 처방을 정반대로 돌려놓는다.
문턱의 문제
여기서 이 층의 성질이 드러난다.
앞의 세 층은 정도의 문제였다. 조금 약하면 조금 돕고, 많이 약하면 많이 돕는다. 저울의 눈금이 조금 달라져도 답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종격은 다르다. 종이냐 아니냐 사이에 중간이 없다. 문턱을 넘으면 처방이 정반대가 되고, 문턱을 못 넘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문턱 위 한 뼘에서 답이 절벽처럼 갈린다.
그러면 그 문턱은 어디인가. 세력 몇 퍼센트부터인가. 뿌리가 몇 자리 남으면 아직 버티는 것인가. 여기에 만인이 동의하는 눈금은 없다.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을 뿐이다.
처음으로 갈린 자리
문턱 근처의 사주를 하나 편다.
時 日 月 年
戊 庚 癸 戊
寅 寅 亥 子
↑ 일간 庚
일간 경금(庚)이 겨울 해월(亥月)에 났다. 사주가 수로 크게 쏠렸다. 일간이 낳는 글자, 식상 수의 흐름을 따르는 자리다. 이런 종격을 종아격(從兒格)이라 부른다. 아(兒)는 내가 낳은 것, 곧 식상이다.
규칙은 그 왕한 수를 용신으로 잡는다. 따라가는 대상 자체를 답으로 놓는 종격의 기본 문법이다.
그런데 기계 안의 다른 눈들은 다른 글자를 짚었다. 일곱 개의 모델 가운데 다섯이 목을 가리켰다. 수가 아니라 목이다.
목은 무엇인가. 왕한 식상 수가 낳는 다음 글자, 재성이다. 명리에는 이런 짜임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아우생아(兒又生兒). 내가 낳은 것이 또 낳는다. 식상을 따르되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 식상이 흘러갈 곳까지 열어 준다는 관점이다.
규칙은 왕신 자체를 잡았고, 학습은 왕신이 흘러갈 방향을 잡았다. 둘 다 종아격의 문법 안에 있다. 그런데 짚은 글자는 다르다.
갈리지 않은 자리
같은 종격이라도 두 눈이 나란히 만나는 사주가 있다.
時 日 月 年
辛 丙 乙 癸
卯 午 卯 未
↑ 일간 丙
일간 병화(丙)를 낳아 주는 인수 목이 사주를 장악했다. 인수가 지나치게 강해 일간이 그 흐름 자체를 따르는 자리, 종강격(從强格)이다.
여기서는 규칙도 목을 짚고, 학습의 다수도 목을 짚었다. 같은 문턱을 넘는데도 한쪽에서는 갈리고 다른 쪽에서는 만난다.
왜 어떤 종격은 갈리고 어떤 종격은 만나는가. 이것이 2부의 물음이다.
꺾이는 일에 대하여
종격을 오래 들여다보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명리는 이 자리를 패배로 그리지 않는다. 일간이 무너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 판에서는 버티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따르기로 한 순간, 그 왕한 흐름이 통째로 내 편이 된다.
거스를 수 없는 것 앞에서 어떻게 서야 하는가. 이 물음을 명리는 수백 년 전에 이미 격국의 이름으로 적어 두었다. 나는 이것이 명리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대목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판단이 언제 옳은지는, 계산이 다 말해 주지 못한다.
한 줄 요약: 사주가 극단까지 쏠리면 일간은 따른다. 종격이다. 이때 처방이 통째로 뒤집히고, 그 문턱 근처에서 기계 안의 두 눈이 처음으로 갈린다.
내 사주는 버티는 자리일까 따르는 자리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따를 것인가 버틸 것인가. 넘쳐서 따르는 사주와 눌려서 따르는 사주, 정반대 두 판을 나란히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