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찾아, 눌러서 쓰다
약하면 돕는다는 말이 늘 맞지는 않는다. 신약한데도 돕지 않고 위협을 먼저 누르는 판단, 일간을 극하던 글자가 도리어 약이 되는 뒤집힘. 규칙의 층에서 가장 정교한 자리들을 실제 명식으로 짚는다.
한눈에 약하면 돕는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병이 너무 크면 돕기 전에 병을 눌러야 한다. 신약한 일간을 살리는 답이 위협을 먼저 제압하는 데 있는 사주가 있다. 일간을 극하던 글자가 도리어 약이 되는 사주도 있다. 이 정교한 조항들까지 규칙 안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답이 갈리기 시작한다.
앞의 두 편에서 저울과 처방을 보았다. 약하면 돕고 넘치면 뺀다. 여기까지는 깔끔하다.
그런데 이 문장이 통하지 않는 판이 있다. 분명히 약한데, 도우면 안 되는 판이다.
돕지 않는 판단
時 日 月 年
丙 甲 丁 乙
寅 申 酉 卯
↑ 일간 甲
가을 유월(酉月)의 갑목(甲)이다. 세력을 재면 금이 43.2%로 가장 무겁다. 목은 글자가 넷이나 되는데도 31.2%로 둘째다.
일간을 극하는 관살 금이 일지와 월지에 나란히 앉아 방국(方局)으로 묶였다. 뭉쳐서 더 거세졌다는 뜻이다. 반대로 일간 편이 되어 줄 견겁 목은 그 금과 정면으로 부딪쳐 흔들린다. 누르는 쪽은 뭉치고 받치는 쪽은 흩어진다. 신약이다.
약하니 도우면 될까. 규칙은 여기서 한 번 꺾인다.
일간을 도와 봐야 그 도움이 관살에 곧장 깎인다. 물을 더 붓는데 바닥이 뚫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먼저 뚫린 바닥을 막아야 한다. 살(殺)이 너무 강할 때는 그 살을 식상으로 눌러 제압한다. 명리는 이것을 식상제살(食傷制殺)이라 부른다.
이 사주의 용신은 시간의 병화(丙)다. 십성으로는 식상이다. 화가 금을 녹인다. 일간을 지키는 방법이 일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일간을 위협하는 것을 먼저 누르는 것이다.
희신은 목이다. 일간과 같은 무리인 견겁이다. 년간의 을목과 시지의 인목, 년지의 묘목이 그 자리다. 목이 화를 낳기 때문이다. 약이 끊기지 않게 뒤에서 대는 글자다. 일간 편이 약해서 문제였는데, 바로 그 약한 편이 약을 지피는 자리에 선다.
이런 판단을 병약(病藥)이라 한다. 억부가 강약을 보고 처방했다면, 병약은 먼저 묻는다. 이 판의 가장 또렷한 병이 무엇인가. 그리고 약을 그 병에 겨눈다.
위협이 약이 되는 뒤집힘
또 다른 판이다.
時 日 月 年
壬 丁 辛 己
寅 未 未 酉
↑ 일간 丁
여름 미월(未月)의 정화(丁)다. 사주가 메마른 쪽으로 또렷이 기운다. 명리는 이 기울기를 난조(燥)라 부른다. 덥고 메마르다는 뜻이다.
메마름을 적실 글자는 수뿐이다. 사주에 수는 시간의 임수(壬) 하나. 그것도 세력으로 1.2%.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옅은 글자다.
그런데 이 임수는 일간을 극하는 글자다. 관살이다. 일간을 치러 온 글자가 어떻게 약이 되는가.
여기서 명리의 눈이 한 번 더 접힌다. 임수와 정화 사이에는 천간의 간합(干合)이 든다. 극하러 온 글자가 충돌이 아니라 화합으로 일간과 묶이는 자리다. 위협이 그대로 들이치지 않고 한 번 묶여, 도리어 메마른 사주를 적시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사주의 용신은 그 옅은 임수다. 세력으로는 1.2%, 있으나 마나 한 무게다. 그러나 이 사주의 결핍이 정확히 그 글자에 맞춰져 있어, 자리는 그만큼 무겁다.
용신은 힘센 글자가 아니다. 필요한 글자다. 이 사주가 그것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다.
희신은 목이다. 시지의 인목(寅)이 그 자리다. 수가 목을 낳고 목이 화를 낳는다. 가느다란 임수가 적신 기운이 이 인목을 거쳐 일간까지 닿는다. 약이 끊기지 않게 이어 주는 다리다. 1.2%의 글자가 그래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이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규칙은 이 조항들을 다 들고 있다
여기까지 오면 규칙의 층이 얼마나 촘촘한지가 보인다.
억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병약이 있고, 조후가 있고, 통관이 있고, 격국이 있다. 강한 살은 식상으로 누른다는 조항이 있고, 오만한 상관은 인수로 거둔다는 조항이 있고, 식상이 재성을 낳아 흐름을 잇는다는 조항이 있다. 저마다 이름이 붙어 있고, 저마다 적용되는 판이 정해져 있다.
이 조항들을 다 외우고, 한 판 위에서 어느 조항이 발동하는지를 빠짐없이 확인하는 일. 이것이 규칙의 층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계가 지치지 않고 하는 종류의 일이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1부는 여기서 닫힌다. 달력은 순수한 계산이었다. 저울은 약속 위의 계산이었다. 규칙은 조항의 적용이었다. 세 층 모두, 사람이 손으로 하면 흔들리고 기계가 하면 흔들리지 않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마지막으로 한 판을 더 편다.
時 日 月 年
丁 丙 甲 丁
酉 寅 辰 未
↑ 일간 丙
봄 진월(辰月)의 병화(丙)다. 다섯 오행이 고르게 퍼져 있고, 일간 편이 두터워 신강이다. 넘치니 다스려야 한다. 여기까지는 앞 편과 같다.
그런데 두 눈이 갈렸다.
규칙을 한 자 한 자 따지는 쪽은 식상 토를 짚었다. 두터운 인수를 빼내는 자리다. 수많은 사주를 익혀 판의 모양으로 가늠하는 쪽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재성 금을 짚었다. 식상이 재성을 낳는 사슬의 끝자락이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토에서 금으로 가는 한 흐름 위의 두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풀이는 학습이 짚은 금, 정확히는 시지 유(酉) 중의 신금(辛金)을 최종 용신으로 잡고, 규칙이 짚은 토는 그 용신을 받치는 희신으로 자리하게 했다. 갈림이 구제된 셈이다.
하지만 늘 이렇게 곱게 구제되지는 않는다. 두 눈이 한 흐름 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판이 있다. 규칙을 끝까지 밟고도 답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판이다.
계산을 정직하게 따라오면 언젠가 이 자리에 닿는다. 나는 이 자리가 명리의 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 자리가 있어서, 계산이 무엇이고 판단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나눠 볼 수 있게 된다.
다음 부는 그 경계에서 시작한다.
한 줄 요약: 병약은 이 판의 병을 먼저 찾고 약을 겨눈다. 그래서 약한데도 돕지 않는 판단이 나온다. 규칙은 이 조항들을 다 들고 있지만, 바로 여기서부터 답이 갈리기 시작한다.
내 사주의 병은 어디에 있을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일간이 길을 꺾다. 버티기를 포기하고 따라가는 사주, 종격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