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졌다 다시 잇는 자리, 절(絶)
기운이 다해 한 번 완전히 끊어지는 단계, 절. 단절의 글자에 가려진, 비움이 곧 새 시작의 직전이 되는 전환점의 국면을 위상으로 읽고 그 출구를 짚는다.
묘를 지나면 절(絶)이다. 끊어진다는 글자라 십이운성에서 가장 끝처럼 들린다. 실제로 절은 한 바퀴의 기운이 다해 한 번 완전히 끊어지는 자리다. 그러나 바로 이 자리가, 한 바퀴가 끝이 아니라 돌고 도는 것임을 가장 또렷이 보여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절은 포(胞), 곧 새 생명을 품기 직전의 자리라고도 불린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십이운성의 절은 인연이 끊기거나 일이 끝장난다는 예언이 아니다. 한 바퀴의 기운이 가장 낮은 바닥에 닿아 비워지는 한 국면에 붙은 이름이다. 이를 단절의 불행으로 읽어 두려움을 심는 것은 절을 가장 크게 오해하는 길이다. 절은 끝이 아니라 바닥이고, 바닥은 곧 돌아서는 자리다.
절의 결은 비움과 전환이다. 묘에서 갈무리된 기운이 절에서는 아예 한 번 끊어져 텅 빈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처럼, 더 내려갈 데 없이 비워진 자리다. 그래서 절에 앉은 기운은 한곳에 매이지 않고, 묵은 것을 미련 없이 끊어 내며, 자리를 훌쩍 옮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결로 읽힌다. 옛것을 끊고 새것으로 갈아타는 힘, 매인 데 없는 자유로움이 여기 있다. 변화가 잦고 새 출발이 많은 삶의 결과 통한다.
무엇보다 절은 끝과 시작이 맞닿은 자리다. 씨앗이 땅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 보이는 그때가, 사실 새싹이 깃들기 바로 직전이다. 절 다음에 오는 단계가 태(胎), 곧 새 생명이 잉태되는 자리인 까닭이 여기 있다. 가장 깊이 비워졌기에, 가장 먼저 새것이 들어설 수 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채울 자리를 내는 일이다.
물론 절에는 끊어진 자리의 불안정함이 따른다. 한곳에 진득이 머물기 어렵고, 끊고 옮기는 결이 강해 자리가 흔들리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단계의 성질이지 결함이 아니다. 출구는 분명하다. 그 비움을 새 시작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끊어진 자리에 주저앉으면 공허해지지만, 비워진 자리에 새것을 들이면 절은 한 바퀴를 다시 여는 전환점이 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완전히 끊어진 것 같은 자리에 서면,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낀다. 쥐고 있던 것이 사라지고, 더 내려갈 데 없이 비워진 듯한 그때. 그러나 가장 깊이 비워진 자리는 영영 빈 자리가 아니라, 새것이 들어올 바로 그 자리다. 씨앗이 사라진 듯한 겨울 땅속에서 봄의 싹이 깃들듯. 절은 그 바닥의 자리다. 끊어졌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다시 시작할 바닥에 닿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