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어 갈무리하다, 묘(墓)
흩어진 기운을 한곳에 거두어 갈무리하는 단계, 묘. 무덤의 글자에 가려진, 창고에 거두어 저장하는 수렴과 축적의 국면을 위상으로 읽고 그 출구를 짚는다.
사를 지나면 묘(墓)다. 무덤이라는 글자라 사보다 더 무겁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십이운성에서 묘를 읽는 첫걸음은, 이 글자를 무덤이 아니라 창고로 바꿔 보는 데 있다. 그래서 묘는 고(庫), 곧 곳간이라고도 불린다.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십이운성의 묘는 죽음이나 매장을 가리키는 예언이 아니다. 흩어져 활동하던 기운을 한곳에 거두어 갈무리하는 한 국면에 붙은 이름이다. 이를 불길의 표로 읽어 두려움을 심는 것은 묘를 가장 크게 오해하는 길이다. 묘는 끝이 아니라 거둠이다.
묘의 결은 거두어 갈무리함이다. 가을걷이를 마친 곡식을 곳간에 들이듯, 한 바퀴를 돌며 펼쳤던 기운을 한자리에 모아 저장한다. 그래서 묘에 앉은 자리는 밖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에 쌓아 두고, 흩뜨리기보다 모으며, 함부로 쓰기보다 아껴 갈무리하는 결로 읽힌다. 알뜰하고 끈기 있게 모으는 힘, 한번 들인 것을 쉽게 내놓지 않는 저력이 여기 있다. 무언가를 오래 쌓아 두텁게 만들어야 하는 일—저장하고 관리하고 축적하는 자리에 어울린다.
무엇보다 곳간은 닫아 두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거두어 갈무리한 것은 때가 되면 다시 꺼내 쓴다. 그래서 묘, 곧 창고를 품은 글자(진·술·축·미)는 충(沖)을 만나 문이 열리면 안에 갈무리해 둔 기운을 내어놓는다. 닫혀 있던 곳간이 한 번 열려 쌓아 둔 것이 쓰임을 얻는 것이다. 묘가 늘 닫힌 자리가 아니라 '때를 기다려 여는 자리'인 까닭이 여기 있다.
물론 묘에는 안으로 거두는 만큼의 닫힘도 따른다. 밖으로 펼치는 힘이 약하고, 모으는 데 골몰해 드러내기를 꺼리며, 한곳에 머물려는 결이 강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계의 성질이지 결함이 아니다. 출구는 분명하다. 갈무리한 것을 때맞춰 꺼내 쓰는 것이다. 쌓아 두기만 하면 묵히는 자리가 되지만, 거둔 것을 알맞게 풀어내면 묘는 가장 두터운 저력의 자리가 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거두어들이는 일을 우리는 끝맺음으로만 여긴다. 한 해를 닫고, 펼쳤던 것을 접고,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자리로. 그러나 곳간에 곡식을 들이는 것은 한 해를 닫는 일이면서 동시에 다음 한 해를 여는 일이다. 거두지 않으면 쌓이는 것이 없고, 쌓이지 않으면 다음에 꺼내 쓸 것도 없다. 묘는 그 갈무리의 자리다.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때를 기다려 다시 꺼내 쓰기 위해 쌓아 두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