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이 멈추는 자리, 사(死)
겉으로 뻗던 활동이 멎고 안으로 가라앉는 단계, 사. 죽음의 글자에 가려진, 바깥의 멈춤이 곧 안의 깊어짐이 되는 정지와 몰입의 국면을 위상으로 읽고 그 출구를 짚는다.
병을 지나면 사(死)다. 십이운성에서 가장 무겁게 들리는 이름이다. 그러나 바로 그 무게 때문에, 이 자리는 가장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먼저 못 박아 둘 것이 있다. 십이운성의 사는 '죽음'을 예언하는 글자가 아니다. 천간이 지나는 한 바퀴에서, 겉으로 뻗어 나가던 활동이 멎는 한 국면에 붙은 이름일 뿐이다. 이를 수명이나 불행과 연결해 두려움을 심는 것은 십이운성을 가장 크게 그르치는 길이다. 사는 사건이 아니라 방향의 전환이다.
사의 결은 멈춤이다. 그런데 이 멈춤은 사라짐이 아니라 안으로의 돌아섬이다. 바깥으로 향하던 기운이 더는 뻗지 않으니, 그 힘은 안으로 가라앉아 고인다. 그래서 사에 앉은 자리는 활달히 나서기보다 한곳을 깊이 파고들고, 움직이기보다 생각하며, 넓게 펼치기보다 좁고 깊게 몰두하는 결로 읽힌다. 바깥의 활동이 멎은 만큼 안의 사색이 깊어지는 자리다. 학문·연구·기술·정신처럼 한자리에 오래 잠겨야 하는 일에서는, 이 가라앉은 기운이 도리어 큰 힘이 된다.
옛사람이 이 단계를 정(靜)의 자리로 본 까닭이 여기 있다. 동(動)이 멎으면 정이 깊어진다. 늘 바깥으로만 달리던 사람은 자기 안을 들여다볼 틈이 없지만, 활동이 한 번 멈춘 자리에서는 비로소 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그래서 사는 비움과 성찰, 한 가지에의 몰입과 통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론 사에는 추진력의 약함이 따른다. 새로 일을 벌이고 앞으로 밀어붙이는 힘은 약하고, 머뭇거리거나 가라앉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단계의 성질이지 결함이 아니다. 멈춰야 할 자리에서 멈추는 것은 무너짐이 아니라 다음을 향한 고요다. 출구는 분명하다. 그 가라앉은 기운을 깊이 파고들 자리에 두는 것이다. 멈춤을 무력으로 두지 않고 몰입으로 돌려세우면, 사는 가장 깊은 것을 길어 올리는 자리가 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바깥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출 때, 우리는 무언가 끝나 버렸다고 느낀다.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멈춤은 끝이 아니라 방향의 바뀜이다. 바깥으로 뻗던 길이 닫힐 때, 안으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늘 달리기만 하던 사람이 한 번 멈춰 서야 비로소 제 안을 들여다보듯. 사는 그 정지의 자리다. 멈춘다는 것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안을 향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