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히고 비는 자리를 피하다 (입묘와 공망)
좋은 것을 담는 눈이 있다면, 나쁜 배치를 피하는 눈도 있다. 기운이 창고에 갇히는 입묘, 자리가 비어 버리는 공망. 이름이 그 자리를 굳이 건드리지 않게 하는 보호의 눈이다.
한눈에
- 담기와 피하기 · 용신·소리·조후가 담는 눈이라면, 입묘·공망은 피하는 눈이다.
- 입묘 · 기운이 창고 노릇을 하는 글자에 들어가 갇히는 자리. 있어도 꺼내 쓰기 어려운 힘.
- 공망 · 육십갑자의 짝에서 밀려나 비어 버린 자리. 힘이 헛도는 글자.
- 겁내지 않기 · 피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배려다. 이 자리로 이름의 좋고 나쁨이 갈리지는 않는다.
지금까지가 담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편은 피하는 이야기다. 용신으로 무엇을 담을지 정하고, 소리로 어떻게 흘릴지 고르고, 조후로 온도를 맞추고 나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피는 자리가 있다. 이 이름이 그 사주의 약한 데를 굳이 건드리지는 않는가. 그때 들여다보는 것이 입묘(入墓)와 공망(空亡)이다.
입묘부터 보자. 지지 가운데는 창고 노릇을 하는 글자들이 있다. 진(辰), 술(戌), 축(丑), 미(未)다. 오행의 기운이 이 글자들을 만나면 창고에 들어가듯 갈무리된다고 보는데, 그것을 묘(墓)에 든다, 입묘한다고 한다. 갈무리는 좋게 보면 저장이지만, 달리 보면 갇힘이다. 있어도 꺼내 쓰기 어려운 힘. 사주에서 아끼는 기운이 이미 창고에 들어 있다면, 이름이 그 창고 문을 자꾸 두드리는 모양이 되지 않게 살핀다.
공망은 결이 다르다. 천간은 열이고 지지는 열둘이라, 육십갑자를 짤 때 순번마다 지지 두 글자가 짝을 얻지 못하고 남는다. 그 비어 버린 자리가 공망이다. 사주에서 공망을 맞은 글자는 힘이 헛돈다고 본다. 있는데 온전히 쓰이지 못하는 자리. 신살 시리즈에서 다뤘듯 공망은 비었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비어 있어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도 있다. 다만 이름을 지을 때는, 그 사주에서 이미 헛도는 자리에 이름의 기운까지 얹어 더 흔들지는 않게 살핀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이 눈은 보호의 눈이지 공포의 눈이 아니다. 입묘나 공망이 있다고 사주가 흠집 난 것이 아니고, 그 자리를 스친 이름이라고 탈이 나는 것도 아니다. 성명학의 축들 가운데서도 이 자리는 가장 가벼운 축이어서, 이름의 좋고 나쁨이 여기서 갈리지는 않는다. 다만 같은 값이면 굳이 약한 데를 건드리지 말자는 것. 그뿐이다. 이 대목을 부풀려 겁을 파는 말들이 있다면, 그것은 성명학이 아니라 장사다.
피한다는 말을 오해 없이 두고 싶다. 피한다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마루의 삐걱대는 자리를 아는 사람이 밤에 그 자리를 살짝 돌아 딛는 것과 같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는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사주의 빈 데와 갇힌 데를 알고 이름이 그 자리를 조심스레 돌아가는 것은, 겁이 아니라 배려에 가깝다.
이렇게 다섯 편으로, 한글 이름을 보는 눈은 얼추 갖춰졌다. 가장 필요한 기운을 담고, 소리로 순하게 흘리고,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약한 자리를 피해 간다. 다음 편부터는 무대가 넓어진다. 한자 이름의 전통, 획수에 운을 새겨 읽던 수리의 세계다.
좋은 것을 주는 일보다 아픈 데를 건드리지 않는 일이 더 섬세한 애정일 때가 있다. 말 한마디를 고를 때도 그렇고, 선물 하나를 고를 때도 그렇다. 이름에도 그런 애정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이 가장 가벼운 축에서 배운다. 담는 정성만큼 피하는 정성도 정성이라는 것을.
담는 정성만큼 피하는 정성도 정성이다. 내 사주의 비어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획에 새겨진 운, 수리 (81수리와 사격)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