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치우침을 고르다 (이름과 조후)
사주에는 저마다의 기후가 있다. 차고 습한 사주, 마르고 더운 사주. 이름이 그 치우침을 크게 고치지는 못해도, 적어도 거스르지는 않아야 한다.
한눈에
- 사주의 기후 · 태어난 계절과 글자들의 성질이 만드는 그 사람만의 춥고 더움. 차고 습한 한습, 마르고 더운 난조.
- 이름에서의 조후 · 치우침을 크게 고치는 자리가 아니라, 거스르지 않게 고르는 자리. 비중은 작아도 어긋나면 안 된다.
- 방향 · 한습한 사주에는 데우는 쪽의 기운을, 난조한 사주에는 적시는 쪽의 기운을 곁들인다.
- 비유 · 보약이 아니라 옷. 계절에 맞는 옷을 입히는 정도의 상식.
사주에도 기후가 있다. 한겨울 깊은 밤에 태어난 사주와 한여름 대낮에 태어난 사주는, 글자를 읽기 전에 이미 온도가 다르다. 태어난 계절이 바탕을 깔고, 여덟 글자의 성질이 그 위에 얹혀, 그 사람만의 춥고 더움이 만들어진다. 차고 습한 쪽으로 기운 사주를 한습(寒濕)하다 하고, 마르고 더운 쪽으로 기운 사주를 난조(暖燥)하다 한다. 이 기후를 살펴 데울 것은 데우고 적실 것은 적시는 눈이 조후(調候)다.
용신 시리즈에서 조후를 다룰 때 이렇게 적었다. 무엇으로 용신을 잡든, 끝내 조후에는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강약을 아무리 잘 골라도 그 사주의 한기와 열기를 거스르면, 좋은 약을 지어 놓고 몸에 듣지 않는 셈이 된다고. 이름에서도 사정은 같다. 용신을 잘 담고 소리를 잘 흘려도, 그 이름이 사주의 기후를 거스르면 어딘가 헛도는 이름이 된다.
다만 이름에서 조후가 차지하는 자리는 크지 않다. 성명학의 축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용신이고, 소리의 흐름이 그다음이다. 조후는 그 뒤에 서서, 앞의 선택들이 사주의 기후와 어긋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에 가깝다. 비중은 작다. 그러나 어긋나면 앞의 좋은 점들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작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눈이다.
방향은 단순하다. 한습한 사주, 그러니까 차고 습한 쪽으로 기운 사주라면 이름에 데우는 쪽의 기운을 곁들인다. 따뜻한 소리, 볕과 불을 품은 뜻. 난조한 사주, 마르고 더운 쪽으로 기운 사주라면 적시는 쪽의 기운을 곁들인다. 물기를 머금은 소리, 시내와 이슬을 품은 뜻. 용신이 이미 그 방향과 같다면 자연히 해결되고, 용신이 다른 데 있다면 적어도 기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글자는 피한다.
여기서 이름의 분수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조후의 치우침이 심한 사주는 운에서 그 계절을 만나야 풀린다. 겨울 사주는 불의 운이 와야 데워지고, 여름 사주는 물의 운이 와야 식는다. 이름이 그 운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름이 할 수 있는 것은 훨씬 소박하다. 추운 사주에 찬 소리를 덧입히지 않는 것. 더운 사주에 마른 글자를 보태지 않는 것. 보약이 아니라 옷이다. 계절에 맞는 옷을 입히는 정도의 상식, 그것이 이름의 조후다.
옷이라는 비유를 꺼내고 보니, 오히려 이 축이 정답게 느껴진다. 아이가 추위를 타는지 더위를 타는지 아는 부모가 계절마다 옷을 챙기듯, 그 사주가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아는 사람이 이름의 온도를 챙긴다. 효험을 따지자면 옷 한 벌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단한 처방보다 계절에 맞는 옷 한 벌이 아쉬운 날이, 살다 보면 분명히 있다. 이름의 조후란 그 옷 한 벌 같은 것이라고, 나는 적어 두었다.
이름은 운을 대신하지 못한다. 다만 사주의 계절을 거스르지는 않을 수 있다. 내 사주는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을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갇히고 비는 자리를 피하다 (입묘와 공망)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