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 둔 자리, 공망(空亡)
열 천간이 열두 지지를 다 채우지 못해 남는 두 자리. 공망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따라가며, 그것이 결핍의 낙인이 아니라 채움을 비워 둔 여백의 국면임을 읽는다.
지지의 작용을 한 바퀴 돌며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 공망(空亡)이다. 합도 충도 형도 아닌, 자리 자체가 비는 현상이다. 어떻게 자리가 비는지부터 보아야 한다.
천간은 열 글자, 지지는 열두 글자다. 둘을 짝지어 갑자·을축·병인 하고 나가다 보면, 천간 열 글자가 한 바퀴를 다 도는 동안 지지는 두 글자가 짝을 얻지 못하고 남는다. 이 짝 없이 남은 두 지지가 그 묶음(순중·旬中)의 공망이다. 가령 갑자로 시작하는 한 묶음에서는 술과 해가 짝을 얻지 못해 공망이 된다. 일주를 기준으로 어느 두 글자가 비는지를 따지는 것이 공망을 보는 법이다.
공망의 성질은 '비어 있음'이다. 짝이 될 천간을 얻지 못했으니, 그 자리의 지지는 작용이 헐거워진다. 채워야 할 곳이 비어 있는 셈이라, 그 자리에 놓인 글자는 제 힘을 온전히 내지 못하거나, 마음이 그쪽에 깊이 머물지 못하는 결로 나타난다고 보아 왔다.
여기서 공망을 결핍의 낙인으로 읽으면 크게 어긋난다. 비어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혹은 일부러 비워 둔 자리라는 뜻이다. 비운 자리는 두 갈래로 작용한다. 하나는 그 자리에 매이지 않게 한다. 좋은 것이 공망에 들면 누리는 마음이 옅어지지만, 나쁜 것이 공망에 들면 그 무게 또한 헐거워진다. 흉한 작용이 공망을 만나 풀려나는 일은 흔하다. 다른 하나는 그 비움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한 자리가 비면 사람은 그 채움을 다른 데서 찾으니, 공망은 곧잘 마음을 세속의 채움에서 비워 더 깊은 것으로 향하게 하는 자리—수행·학문·정신의 자리로도 읽힌다.
게다가 공망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다. 비어 있던 자리도 충을 맞거나 합을 만나면 그 비움이 채워지거나 풀린다(충공·합공). 곧 공망은 '영영 빈 자리'가 아니라 '지금 비워져 있는, 그래서 움직일 수 있는 자리'다. 빈자리를 결핍으로 못 박는 대신, 무엇으로 채워 갈 여백으로 보는 것이 공망을 옳게 읽는 길이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비어 있는 것을 우리는 모자란 것으로 여긴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보면 불안하고, 어서 메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모든 자리가 가득 차 있어야만 온전한 것은 아니다. 비워 둔 여백이 있어야 새것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고, 한곳을 비워야 마음이 다른 데로 향할 수 있다. 공망은 그 비움의 자리다. 비어 있다는 것은 끝내 빈 채로 두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채워 갈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