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용은 겹쳐서 일어난다, 함께 읽기
생극·합·충·형·파·해·공망은 한 사주 안에서 따로따로 일어나지 않는다. 합이 충을 풀고 충이 합을 흩는 자리에서, 작용을 한 묶음으로 겹쳐 읽는 법을 정리한다.
이 시리즈를 여는 자리에서, 글자는 홀로 서지 않는다고 했다. 마지막 자리에서 그 말을 다시 새긴다. 생극·합·충·형·파·해·공망은 한 사주 안에서 따로따로 일어나지 않는다. 한 글자에는 여러 작용이 동시에 걸려 있고, 그 작용들은 서로를 풀고 흩고 돕는다. 그러니 작용 하나만 떼어 길흉을 단정하는 것은 늘 절반의 읽기다.
가장 흔한 겹침이 합과 충이 한자리에 있는 경우다. 충을 맞아 흔들리던 글자 곁에 합이 있으면, 합이 그 글자를 붙들어 흔들림을 가라앉힌다. 이를 합으로 충을 푼다고 한다. 반대로 다정히 손잡고 있던 합 곁에 충이 끼어들면, 짝이 흔들려 합이 풀린다. 충으로 합을 흩는 것이다. 같은 충이라도 곁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결과가 정반대로 갈린다.
거리와 자리도 결과를 가른다. 바짝 붙은 두 글자 사이의 작용은 또렷하고, 멀리 떨어진 글자 사이의 작용은 흐릿하다. 사이에 다른 글자가 끼어 막고 있으면 작용이 가로막히기도 한다(탐합망충·탐생망극처럼, 한 작용에 마음이 쏠려 다른 작용을 잊는 경우도 여기 든다). 또 사주 원국에서 일어나는 작용과, 대운·세운의 글자가 들어와 새로 일으키는 작용을 함께 보아야 비로소 흐름이 잡힌다.
그래서 작용을 읽는 데에는 대강의 차례가 있다. 먼저 큰 기운부터 본다. 셋이 모여 국을 이루는 삼합·방합이 있는지, 사주의 판을 쥔 기운이 무엇인지를 잡는다. 그다음 가까운 합과 충을 보아 어느 자리가 묶이고 어느 자리가 흔들리는지를 살핀다. 형·파·해는 그 위에서 결을 더하는 가는 작용으로, 공망은 어느 자리가 비워졌는지로 본다. 큰 줄기에서 잔가지로 내려오며 겹쳐 읽는 것이다.
무엇보다 잊지 말 것은, 이 모든 작용이 길흉의 도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합이 늘 좋고 충이 늘 나쁜 것이 아니다. 필요한 글자가 묶이면 합이 손해가 되고, 막힌 데가 트이면 충이 숨통이 된다. 형은 다듬음일 수 있고, 공망은 비워 둔 여백일 수 있다. 작용은 그 글자가 지금 어떤 국면에 놓였는지를 알려 줄 뿐, 그다음을 어떻게 쓰는가는 늘 열려 있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한 사람을 한 가지 사건으로 판단하지 않듯, 한 글자도 한 가지 작용으로 단정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묶임이던 인연이 다른 자리에서는 버팀목이 되고, 한때의 흔들림이 지나고 보면 길을 연 전환이었음을 안다. 작용은 늘 겹쳐서 일어나고, 그 겹침 속에서 서로를 풀고 돕는다. 글자 하나의 길흉을 묻기 전에 그 글자가 놓인 판 전체를 먼저 읽는 일—생극제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키는 자리가 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