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어서 다시 짜다, 파(破)
지지끼리 서로를 헐고 흩뜨리는 가벼운 작용. 자유·오묘 같은 파의 짝을 따라가며, 파가 무너뜨림이 아니라 묵은 짜임을 헐어 다시 짜는 재편의 국면임을 읽는다.
지지의 작용 가운데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이 파(破)다. 깨뜨린다, 헌다는 뜻의 글자다. 충처럼 크게 흔들거나 형처럼 끈질기게 갈지는 않되, 서로의 짜임을 슬쩍 헐어 흩뜨리는 작용이다.
파의 짝으로는 자유(子酉), 오묘(午卯), 신사(申巳), 인해(寅亥), 진축(辰丑), 술미(戌未) 같은 쌍이 거론된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인해나 신사처럼 합으로도 묶이는 짝이 파에도 끼어 있어, 옛 문헌마다 짝을 잡는 법이 조금씩 다르다. 이 어긋남 자체가 파의 성격을 말해 준다. 파는 작용이 약하고, 다른 합·충·형에 곧잘 묻혀 단독으로는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래서 명리에서도 파는 보조로 가볍게 살피는 것이 보통이다.
파의 성질은 '짜임을 헐다'에 가깝다. 단단히 맞물려 있던 두 글자의 결합을 슬며시 풀거나, 잘 짜여 있던 자리를 흩뜨린다. 합으로 묶여 있던 글자를 파가 헐어 합을 느슨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언가가 너무 굳어 움직이지 못할 때, 그 굳은 짜임을 가볍게 풀어 주는 셈이다.
여기서도 파를 깨짐·손상으로만 읽으면 그 결을 놓친다. 헌다는 것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낡은 집을 헐어야 그 터에 새집을 짓고, 잘못 짜인 매듭을 풀어야 다시 바로 맬 수 있다. 파는 무너뜨림이라기보다 묵은 구조를 헐어 다시 짤 여백을 내는 재편에 가깝다. 너무 단단히 굳어 손대기 어렵던 자리에 파가 들면, 그 자리가 비로소 다시 짤 수 있게 풀린다.
다만 파는 힘이 약한 작용이니, 그 무게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파 하나를 두고 큰일을 점치는 것은 가벼운 신호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이다. 파는 다른 작용들 사이에서 짜임을 조금 느슨하게 하는 곁가지로 보는 편이 알맞다. 다른 작용과 겹쳐 읽을 때 비로소 제 결을 드러낸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무언가가 헐리는 것을 우리는 손실로만 여긴다. 잘 짜여 있던 것이 풀어지면 아깝고 불안하다. 그러나 모든 새로 짜기는 한 번의 헐어냄에서 시작된다. 오래 묵어 손댈 수 없던 관계도, 굳어 버린 일의 틀도, 한 번 풀어내야 다시 맬 여백이 생긴다. 파는 그 가벼운 풀어냄의 자리다. 헐린다는 것이 늘 잃는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다시 짤 자리를 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