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고 다듬느라 부딪히다, 형(刑)
충처럼 단번에 부딪히지 않고, 어긋난 채 서로를 갈고 가는 작용. 인사신·축술미 삼형과 자묘형, 그리고 자형을 따라가며, 형이 마찰을 통한 다듬어짐의 국면임을 읽는다.
지지의 작용 중에 충과는 결이 다른 부딪힘이 있다. 정면으로 한 번에 들이받는 충과 달리, 어긋난 채로 서로를 자꾸 갈고 가는 작용이다. 이것을 형(刑)이라 한다. 형벌이라 할 때의 그 글자다.
형에는 몇 갈래가 있다. 가장 무거운 것이 세 글자가 얽히는 삼형(三刑)이다. 인사신(寅巳申)이 한 삼형이고, 축술미(丑戌未)가 또 한 삼형이다. 두 글자가 어긋나는 형도 있다. 자묘(子卯)가 서로를 형한다. 그리고 같은 글자가 둘 겹쳐 스스로를 가는 자형(自刑)이 있으니, 진진·오오·유유·해해가 그것이다.
형의 성질은 '간다(磨)'는 말에 가깝다. 톱니가 맞물려 돌아갈 때 이가 서로를 긁듯, 형은 글자끼리 어긋난 자리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킨다. 충이 한 번의 큰 흔들림이라면, 형은 잔잔하지만 끈질긴 갈림이다. 그래서 형은 곧잘 다툼·시비·갈등·수술처럼 무언가를 깎고 도려내는 일과 연결되어 읽혀 왔다.
그러나 여기서 형을 불길의 표로만 읽으면 그 절반을 놓친다. 가는 일은 상하게 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다듬는 일이다. 칼은 숫돌에 갈려야 비로소 날이 서고, 거친 돌은 깎이고 갈려야 보석이 된다. 형의 마찰을 견디고 나온 자리에서 도리어 단단함과 날카로움이 나온다. 그래서 무언가를 깊이 파고들어 갈고닦아야 하는 일—의료, 법, 기술처럼 정교함을 요하는 자리—에서는 형이 도리어 그 사람을 벼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관건은 늘 그 마찰이 어디로 향하느냐다. 갈리는 자리가 사주의 약한 곳이면 마찰이 생채기가 되고, 단단한 곳이면 마찰이 연장을 만든다. 또 형은 합이나 다른 작용과 겹치면 그 결이 달라진다. 형 하나만 떼어 "그러니 다친다"로 닫는 것은 형을 절반만 읽는 일이다. 마찰에는 늘 다듬어짐이라는 다른 얼굴이 함께 있고, 그 얼굴을 끌어내는 출구가 있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거슬리는 마찰을 우리는 피하고만 싶어 한다. 자꾸 부딪히고 어긋나는 자리는 빨리 떠나고 싶다. 그러나 어떤 마찰은 사람을 갈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편하기만 한 자리에서는 무뎌지고, 부대끼며 갈리는 자리에서 날이 선다. 형은 그 끈질긴 갈림의 자리다. 갈려서 상할지, 갈려서 벼려질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거슬리는 마찰을 무엇으로 쓰는가, 그 몫이 사람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