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서서 부딪히다, 천간충(天干沖)
방위로도 성질로도 정반대에 선 천간끼리 정면으로 부딪히는 작용. 갑경충·을신충·병임충·정계충 네 충을 따라가며, 충이 깨뜨림이 아니라 흔들어 깨우는 국면임을 읽는다.
천간에는 손을 잡는 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면으로 마주 서서 부딪히는 작용도 있다. 이것을 천간충(天干沖), 혹은 충(冲)이라 한다.
부딪히는 쌍은 방위로도 성질로도 정반대에 선 글자들이다. 동쪽의 갑목과 서쪽의 경금이 갑경충(甲庚沖), 같은 동서축의 을목과 신금이 을신충(乙辛沖), 남쪽의 병화와 북쪽의 임수가 병임충(丙壬沖), 같은 남북축의 정화와 계수가 정계충(丁癸沖)이다. 한가운데 토에 속하는 무토와 기토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아 정면으로 맞설 상대가 없다. 그래서 충은 이 네 쌍을 두고 말한다.
충은 두 기운이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일어난다. 멀다는 것은 곧 또렷이 마주 본다는 뜻이다. 갑목은 솟으려 하고 경금은 베려 하니, 둘이 만나면 그 성질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부딪힘은 분명 흔들림을 가져온다. 충을 맞은 글자는 자리가 흔들리고, 본래의 작용이 출렁인다.
그러나 흔들림을 곧장 깨짐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충은 무너뜨리는 힘이기 이전에 흔들어 깨우는 힘이다. 고여 있던 물을 휘저으면 가라앉았던 것이 떠오르듯, 충은 잠들어 있던 글자를 일으켜 세운다. 너무 단단히 묶여 움직이지 못하던 자리, 지나치게 한쪽으로 굳어 버린 사주에서는 충이 도리어 숨통을 틔운다. 막힌 데를 두드려 트는 셈이다.
물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자리가 흔들리면 그것은 손해다. 사주의 기둥이 되는 글자가 충을 맞아 출렁이면, 그 사람의 중심이 흔들린다. 그러나 같은 충도, 그 글자가 본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뿌리 깊은 글자는 흔들려도 다시 서고, 뿌리 없는 글자는 한 번의 충에 흩어진다. 그러니 충을 만났을 때 먼저 볼 것은 '무엇이 흔들렸는가'와 '그것이 다시 설 힘이 있는가'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부딪힘을 우리는 두려워한다.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고, 모나지 않게 지나가려 한다. 그러나 어떤 부딪힘은 오래 고여 있던 것을 비로소 움직이게 한다. 정면으로 맞선 두 생각이 부딪혀야 잠들어 있던 물음이 깨어나고, 한 번의 충돌이 굳어 버린 관계에 새 길을 내기도 한다. 충은 늘 흔들림을 동반하지만, 그 흔들림이 무너뜨릴지 깨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부딪힘을 무엇으로 쓰는가, 그 몫이 사람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