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생은 病이 된다, 과다와 반생반극(反生反剋)
생은 좋고 극은 나쁘다는 셈법이 뒤집히는 자리. 너무 많이 받으면 도리어 막히고(반생), 너무 약한 것을 누르면 누르는 쪽이 다친다(반극). 기운의 양에 따라 작용이 거꾸로 도는 이치를 읽는다.
앞에서 생은 살리고 극은 다스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숨은 단서가 하나 붙는다. '적당할 때'라는 단서다. 양이 도를 넘으면, 생과 극은 거꾸로 돈다. 이것을 반생반극(反生反剋)이라 한다.
먼저 지나친 생, 곧 과다(過多)다. 물이 나무를 키운다지만, 물을 너무 많이 부으면 나무는 산다기보다 뿌리가 썩는다. 이를 수다목부(水多木浮), 물이 많아 나무가 뜬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끝없이 거두면 자식이 제 힘으로 서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받는 기운이 너무 적은데 주는 기운만 넘치면, 생은 살림이 아니라 막힘이 된다. 인성이 지나치게 많은 사주를 따로 살피는 까닭이 여기 있다.
반대로 받는 쪽이 도리어 너무 거셀 때도 생은 거꾸로 돈다. 내가 낳은 것이 지나치게 왕성해지면, 그것을 대느라 낳아 준 쪽이 기운을 다 빨려 도리어 마른다. 나무가 일으킨 불이 너무 맹렬하면 그 불길이 되돌아 나무를 남김없이 태워 버린다. 화다목분(火多木焚), 불이 많아 나무가 탄다는 말이다. 받아 가는 쪽이 거세면 주는 쪽이 제 기운을 다 내주고 상하니, 이를 설기태과(洩氣太過)라 한다.
극도 마찬가지로 거꾸로 돈다. 이것이 반극이다. 쇠가 나무를 다듬는다지만, 다듬을 나무가 아름드리 거목이고 도끼가 작으면, 나무가 베이는 게 아니라 도끼날이 상한다. 목견금결(木堅金缺), 나무가 단단해 쇠가 이지러진다는 말이다. 누르는 쪽이 약하고 눌리는 쪽이 강하면, 다스림은 도리어 다스리는 쪽의 화가 된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억누르려다 제가 다치는 형국이다.
그래서 명리는 글자의 종류만 보지 않고 늘 그 양을 함께 본다. 같은 수생목이라도 물이 알맞으면 나무가 살고, 물이 넘치면 나무가 뜬다. 같은 금극목이라도 도끼가 알맞으면 나무가 다듬어지고, 도끼가 작으면 도끼가 상한다. 작용의 이름이 길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이 정한다.
여기서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생이라고 무턱대고 반길 일도, 극이라고 무턱대고 꺼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부족한 것에는 생이 약이지만 넘치는 것에는 생이 독이고, 강해서 날뛰는 것에는 극이 약이지만 약한 것에는 극이 매가 된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늘 그 사주의 형편이 정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사랑도 도움도, 많을수록 좋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받는 이가 감당할 만큼을 넘어서면, 넘치는 사랑은 그를 무르게 하고 끝없는 도움은 그를 약하게 한다. 반대로 아직 여린 것을 너무 일찍 호되게 다그치면, 다듬어지기 전에 꺾이거나 다그친 쪽이 먼저 지친다. 무엇을 주느냐보다 얼마나 주느냐가, 그 마음의 빛깔을 정한다. 오행은 그 양의 감각을 글자의 무게로 가만히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