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사람의 서투름 (장생과 목욕)
새로 시작한 자리에서 자꾸 넘어지는 사람에게. 십이운성은 태어남 다음에 곧장 어른의 자리를 두지 않았다. 장생과 목욕, 서투르라고 마련된 두 단계의 이야기.
한눈에
- 장생 · 기운이 세상에 태어나는 자리. 여리지만 생기로 가득한 시작.
- 목욕 · 갓 태어난 기운이 씻기며 흔들리는 자리. 서투르고 실수 많은, 그러나 순서에 들어 있는 단계.
- 건너뛸 수 없다 · 목욕을 지나야 관대로, 건록으로 여문다. 서투름을 면제받은 성장은 없다.
- 허락 · 시작한 자리에서는 서툴러도 된다. 지금 못하는 것은 앞으로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잘하고 싶다. 새 일, 새 자리, 새 공부.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개 그렇다. 그리고 대개 그 마음에 시달린다. 남들은 수월해 보이는데 나만 헤매는 것 같고, 실수 하나에 자질을 통째로 의심하게 된다. 그 조급함 앞에 십이운성의 두 자리를 놓아 보고 싶다. 장생(長生)과 목욕(沐浴)이다.
앞 편의 절과 태를 지나, 기운은 드디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자리가 장생이다. 갓 태어난 생명의 자리. 여리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생기가 가득한, 열두 단계에서 가장 맑은 자리로 꼽힌다. 시작의 설렘, 처음의 순수함이 이 자리의 얼굴이다. 그런데 십이운성은 이 태어남 다음에 곧장 어른의 자리를 두지 않았다. 그 사이에 한 단계를 끼워 두었다. 목욕이다.
목욕은 갓 태어난 기운이 씻기는 자리다. 아기를 씻기는 장면에서 온 이름인데, 그 속뜻은 세상의 물에 처음 닿아 흔들리는 시기다. 십이운성 시리즈에서 다뤘듯 이 자리는 예부터 실수와 방황의 자리로 읽혔다. 이것저것 기웃대고, 홀리고, 데이고, 넘어지는 시기.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옛사람들이 이 흔들림을 순환의 정식 단계로 넣어 두었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아니라 순서라는 것이다. 태어난 기운은 반드시 이 씻김을 지난다. 서투름은 결함이 아니라, 애초에 일정표에 들어 있던 단계다.
목욕의 자리에는 별명이 하나 더 있다. 이 자리가 도화(桃花), 복사꽃의 자리와 겹쳐 읽히곤 한다는 것이다. 갓 태어나 처음 세상에 씻기는 기운은 여리고, 여린 것은 곱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홀리고 홀리게 하는 힘이 함께 산다. 새것에 쉽게 반하고, 사람에게 쉽게 데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빛이 나는 시기. 방황과 매력이 같은 자리에서 나온다는 이 배치가 나는 정확하다고 느낀다. 서투른 시절의 사람이 종종 가장 반짝여 보이는 것은, 그 시절에만 있는 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단계는 건너뛸 수 없다. 목욕 다음에야 옷을 갖춰 입는 관대가 오고, 제 힘으로 서는 건록이 오고, 정점의 제왕이 온다. 흔들리며 씻기는 시간을 지나지 않은 기운은 여물지 못한다. 실수 없이 배운 것은 얕게 배운 것이고, 데어 보지 않은 능숙함은 없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능숙한 사람들도 전부 자기 몫의 목욕을 지나온 사람들이다. 다만 그 시절이 지금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씻기는 데는 손이 필요하다는 것도 잊지 말자. 갓난 기운은 저 혼자 목욕하지 못한다. 시작하는 시기의 사람에게 물어볼 어른, 넘어질 때 웃지 않고 일으켜 주는 동료가 있느냐 없느냐는, 그 시절의 온도를 크게 바꾼다. 혼자 영상을 뒤져 가며 배우는 시대라지만, 서투름을 보여도 안전한 사람 하나의 값은 여전히 무엇으로도 대신되지 않는다. 지금 시작하는 자리에 있다면, 잘하는 법보다 먼저 그 사람부터 구해도 좋다.
그러니 시작하는 자리에서의 서투름을 다시 읽자. 지금 헤매는 것은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단계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 못하는 것은 앞으로 못한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목욕의 물속이라는 뜻일 수 있다. 실수를 없애려 애쓰는 것보다, 실수에서 하나씩 건지며 지나는 것이 이 단계의 일이다. 씻긴다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물을 뒤집어써야 씻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그대로 두어도 된다. 그 마음이 배움의 연료다. 내려놓을 것은 하나뿐이다. 벌써 잘해야 한다는 마음.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서투른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정확한 일이다. 요즘 새로 배우는 것 앞에서 나도 자주 되뇐다. 지금은 씻기는 중이라고. 순서대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 말이 조급해지려는 나를 여러 번 살렸다.
서투름은 결함이 아니라 순서에 들어 있는 단계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을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정점을 지난 것 같은 날들 (쇠)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