凡萬物之始。莫不始於無。而後有。是故易有大極。是生兩儀。兩儀生四序。四序。生之所生也。有萬物滋繁。然後萬物生成也。皆由陰陽二氣。鼓舞陶鑄。互相交感。故孤陽不能獨生。單陰不能獨成。必須配合以鑪冶。爾乃萬物化通。是則天有其象。精氣下流。地道含化。以資形始。陰陽消長。生殺用成。明其道難明。非數不可究。故因數以辨之。數之顯理。猶筌蹄之取魚兔。陽順唱始。陰佐其終。窮奇偶之數。備相成之道。極變化之源者。詳於蓍策之數也。七八爲靜。九六爲動。陽動而進。變七之九。象氣息也。明陽道之舒。以象君德。唱始不休。無所屈後。去極一等。而猶進之。故九動也。陰動而退。變八之六。象氣消也。以明臣法有所屈後。唱和而已。事理近君。則靖息以聽命。必須退讓。以明其義。故八靜也。易曰。分二以象兩。掛一以象三。揲之以四。以象四時者。餘手有四七。故名七也。有四八。故名八也。有此。則靜爻之數。夏殷尚質。以用靜爻占之。餘有四九。故名九也。有四六。故名六也。此則動爻之數。周備質文。故兼用動爻。凡大衍極天地之數。五十有五也。京房以十日。十二辰。二十八宿。合應五十。其一不用者。天之生氣。將欲以虛求實。故用四十九焉。馬融以易之大極。爲北辰也。生兩儀。兩儀生日月。日月生四時。四時生五行。五行生十二月。十二月生二十四氣。北辰居位不動。其餘四十九。轉運而用也。鄭玄曰。貞悔六爻。本有五十。定所用者。四十有九。天地之數。本五十五。天五與地十通。天一與地六通。數之者氣則有并。并則宜減焉。大衍減五。故有五十。其用減一。故四十有九。不并者。不可減也。今總其數五十者。天一至地十。凡五十五也。此合生成之數。若止言生數。唯十有五。從一至五也。易之所象。
무릇 만물의 시작은 무(無)에서 시작하여 뒤에 유(有)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때문에 『역』에 태극(大極)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서(四序)를 낳는다. 사서는 낳은 것이 낳는 바이다. 만물이 번성함이 있은 연후에 만물이 생성된다. 모두 음양 두 기운이 고무하고 빚고 주조하여 서로 교감함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외로운 양은 홀로 낳을 수 없고, 홑 음은 홀로 이룰 수 없으니, 반드시 배합하여 풀무질하고 녹여야 이에 만물이 화하여 통한다. 이는 곧 하늘에 그 상이 있어 정기가 아래로 흐르고, 지도(地道)가 머금어 화하여 형체의 시작을 돕는 것이다. 음양의 소장(消長)과 생살(生殺)의 쓰임이 이루어지니, 그 도가 밝히기 어려움을 밝히는 데에는 수가 아니면 궁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수로 말미암아 이를 분변한다. 수가 이치를 드러내는 것은 통발과 올가미로 물고기와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양은 순하게 선창하여 시작하고, 음은 그 끝을 돕는다. 기우(奇偶)의 수를 다하고, 서로 이루는 도를 갖추며, 변화의 근원을 다한 것은 시책(蓍策)의 수에 자세하다. 칠(七)·팔(八)은 정(靜)이 되고, 구(九)·육(六)은 동(動)이 된다. 양은 움직여 나아가니, 칠이 변하여 구로 가는 것은 기운이 자라는 것을 본뜬 것이다. 양도(陽道)의 펼쳐짐을 밝혀 임금의 덕을 본뜨니, 선창하여 시작하고 쉬지 않으며 굽히거나 뒤처지는 바가 없다. 극에서 한 등급 떨어져 있어도 오히려 나아가므로 구가 동이다. 음은 움직여 물러나니, 팔이 변하여 육으로 가는 것은 기운이 사그라짐을 본뜬 것이다. 이로써 신하의 법도는 굽히고 뒤처지는 바가 있어 화답할 따름임을 밝힌다. 일과 이치가 임금에 가까우면 고요히 쉬며 명을 들어야 하니, 반드시 물러나 사양하여 그 의(義)를 밝혀야 한다. 그러므로 팔이 정이다. 『역』에 이르기를 “둘로 나누어 양(兩)을 본뜨고, 하나를 걸어 삼(三)을 본뜨며, 넷씩 세어 사시를 본뜬다”고 하였으니, 남은 손에 4가 일곱 번 있으므로 칠이라 이름하고, 4가 여덟 번 있으므로 팔이라 이름한다. 이것이 있으면 곧 정효(靜爻)의 수이다. 하(夏)·은(殷)은 질(質)을 숭상하여 정효로 점쳤다. 남은 것에 4가 아홉 번 있으므로 구라 이름하고, 4가 여섯 번 있으므로 육이라 이름한다. 이것은 곧 동효(動爻)의 수이다. 주(周)는 질과 문(文)을 갖추었으므로 동효를 겸하여 썼다. 무릇 대연은 천지의 수를 다한 것이니 55이다. 경방(京房)은 10일(日)·12진(辰)·28수(宿)를 합하여 50에 응하게 하였다. 그 하나를 쓰지 않는 것은 하늘의 생기(生氣)로, 장차 허(虛)로써 실(實)을 구하고자 하므로 49를 쓴다. 마융(馬融)은 『역』의 태극을 북신(北辰)으로 여겼다. [태극이] 양의를 낳고, 양의가 일월을 낳고, 일월이 사시를 낳고, 사시가 오행을 낳고, 오행이 12월을 낳고, 12월이 24기를 낳는다. 북신은 자리에 있어 움직이지 않고, 그 나머지 49가 돌며 운행하여 쓰인다. 정현은 이르기를 “정회(貞悔)의 육효(六爻)는 본래 50이 있는데, 쓰는 바를 정한 것이 49이다. 천지의 수는 본래 55이다. 천오(天五)와 지십(地十)이 통하고, 천일(天一)과 지육(地六)이 통한다. 이를 세면 기운이 아우러짐이 있고, 아우러지면 마땅히 덜어야 한다. 대연은 5를 덜므로 50이 있고, 그 쓰임은 1을 덜므로 49이다. 아우러지지 않은 것은 덜 수 없다”고 하였다. 이제 그 수를 총괄하여 50이라 하는 것은, 천일에서 지십까지가 모두 55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수와 성수를 합한 수이다. 만약 생수만 말하면 오직 15이니, 1에서 5까지이다. 『역』이 본뜬 바는
爻盡之。有邃。故自天地以下。日月等數。皆爲蓍卦所攝。循環變轉。萬世無窮。而五十有五。五本并數。并數者。天之與地共。各有一體。體各有一正應敵對。今盈於五。則是氣之并數。并不再用。是其配義。配則爲虛。不當於實。不當於實。故事無所主。所以揲蓍不用。又虛其一者。掛一象無。無無可象。故有之用極。則無之功見。故曰。尋大業而得吉凶。尋吉凶而得八卦。尋八卦以得四時。尋四時以至兩儀。尋兩儀以至太極。太極者。大殺而極。窮無之致也。遣有以極邃。減多以就少。此之謂也。故曰。太極無所復象。明其空寂。非言象所詮也。
효(爻)가 이를 다하니 깊음이 있다. 그러므로 천지 이하 해와 달 등의 수가 모두 시괘(蓍卦)에 포섭되어 순환하고 변전하여 만세에 다함이 없다. 그런데 55에서 5는 본래 아우른 수이다. 아우른 수라는 것은 하늘과 땅이 함께하되 각각 한 체를 가지며, 체마다 각각 하나의 바른 응(應)과 대적(對敵)이 있는 것이다. 이제 5가 차고 넘치면 이는 기운의 아우른 수이니, 아우른 것은 다시 쓰지 않는다. 이것이 그 배합의 뜻이다. 배합되면 허가 되어 실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일에 주관하는 바가 없다. 그러므로 시초를 셀 때 쓰지 않는다. 또 그 하나를 비우는 것은 하나를 걸어 무(無)를 본뜨는 것이다. 무는 본뜰 수 있는 무가 없으므로, 유의 쓰임이 극에 이르면 무의 공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대업(大業)을 찾아 길흉을 얻고, 길흉을 찾아 팔괘를 얻으며, 팔괘를 찾아 사시를 얻고, 사시를 찾아 양의에 이르며, 양의를 찾아 태극에 이른다”고 한다. 태극이라는 것은 크게 덜어 극에 이른 것이니, 무를 다한 지극함이다. 유를 보내어 깊음을 다하고, 많음을 덜어 적음에 나아간다는 것이 이를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태극은 다시 본뜰 바가 없다”고 하니, 그 공적(空寂)함을 밝힌 것이요, 말과 상으로 설명할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