看雜氣墓庫法 舊書生辰戌丑未月為雜氣格,其說以填地不正之氣,蓄於四季庫墓之中,故謂之雜。夫十干之氣,分佈於十二支,皆正氣也,何以佈於辰戌丑未者,獨為不正?若所謂蓄者雜,則寅巳亦各藏三支,何獨不雜?況正氣必宜於人,雜而不正之氣,必損於人,何取此損人之氣為格耳?且動稱墓庫,取必刑沖,夫戊之在辰戌,己之在丑未,乃本氣用事,非墓也。乙辛之在辰戌,癸丁之在丑未乃本方分正,亦非墓也。特辰中之癸,戌中之丁,丑中之辛,未中之乙,乃誠墓耳。故生於四月,如用辰戌中之戊,丑未中之己,猶之用餘八支中之本氣。如用辰戌中之乙辛,丑未中之癸丁,猶之用餘八支中支所藏,皆不特刑沖而後得力也。惟用辰戌中之癸丁,丑未中之辛乙,慮其閉藏,當求其透出,天干苟得透出,亦不待刑沖而後得力也,不能透出,乃講刑沖,然墓神強旺,遇刑則動,遇沖則發,是為開庫,墓神衰弱,遇刑則敗,遇沖則拔,是為克倒。又或日主,或六神屬水火,而生辰戌之月,屬金木,而生丑未之月,恐其入墓,亦宜刑沖,然需看木神強弱,強則欲脫墓而出,固利疏通,弱則須倚墓以存,深嫌破壞。是亦有開庫克倒之別歟,要皆未可皆取刑沖也。若土則本無庫墓,愈不待言矣。至於命理多變更,有日主六神,過於發揚震動,而用此季庫以斂之者,則翕闢亦隨其宜耳。或曰,向傳季支所藏,皆為庫中物,今者之論,勿乃強分為別否?餘曰,信於舊說,是乙不特墓於未而又墓於辰,辛不特墓於丑而又墓於戌,癸不特墓於辰而又墓於丑,丁不特墓於戌而又墓於未,戊則墓於辰而又墓於戌,己則墓於丑而又墓於未。是則木火金水,各增一木,而土競有四墓矣,豈不大可怪乎?
잡기(雜氣)·묘고(墓庫)를 보는 법 옛 책에서는 진술축미(辰戌丑未)월에 태어나면 잡기격(雜氣格)이라 하였으니, 그 설은 천지의 바르지 않은 기운이 사계(四季)의 고묘(庫墓) 가운데 쌓여 있으므로 잡(雜)이라 한다는 것이다. 무릇 십간의 기운은 십이지에 분포되어 모두 정기(正氣)인데, 어찌 진술축미에 분포된 것만 홀로 바르지 않다고 하는가? 만약 이른바 쌓인 것이 잡이라면, 인(寅)·사(巳)도 각각 세 천간을 감추고 있는데 어찌 홀로 잡이 아닌가? 하물며 정기는 반드시 사람에게 마땅하고, 잡되어 바르지 않은 기운은 반드시 사람을 손상할 것인데, 어찌 이 사람을 손상하는 기운을 취하여 격으로 삼는가? 또 걸핏하면 묘고라 일컬으며 반드시 형충(刑沖)을 취하는데, 무릇 무(戊)가 진술(辰戌)에 있고 기(己)가 축미(丑未)에 있는 것은 본기(本氣)가 용사(用事)하는 것이지 묘(墓)가 아니다. 을(乙)·신(辛)이 진술에 있고 계(癸)·정(丁)이 축미에 있는 것은 본방(本方)의 여기(餘氣)이니 역시 묘가 아니다. 다만 진(辰) 중의 계(癸), 술(戌) 중의 정(丁), 축(丑) 중의 신(辛), 미(未) 중의 을(乙)이 참으로 묘일 뿐이다. 그러므로 사계월에 태어나 만약 진술 중의 무(戊), 축미 중의 기(己)를 쓴다면 나머지 여덟 지지 가운데의 본기를 쓰는 것과 같다. 만약 진술 중의 을·신, 축미 중의 계·정을 쓴다면 나머지 여덟 지지 가운데 지지에 감추어진 것을 쓰는 것과 같으니, 모두 굳이 형충을 기다린 뒤에야 힘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진술 중의 계·정, 축미 중의 신·을을 쓸 때는 그것이 닫혀 감추어질까 염려되니 마땅히 투출하기를 구해야 하고, 천간에 만약 투출할 수 있으면 역시 형충을 기다린 뒤에야 힘을 얻는 것이 아니며, 투출할 수 없으면 비로소 형충을 강구한다. 그러나 묘신(墓神)이 강왕하면 형을 만나면 움직이고 충을 만나면 발하니 이것이 개고(開庫)이고, 묘신이 쇠약하면 형을 만나면 패하고 충을 만나면 뽑히니 이것이 극도(剋倒)이다. 또 혹 일주나 혹 육신(六神)이 수·화(水火)에 속하는데 진술월에 태어나거나, 금·목(金木)에 속하는데 축미월에 태어나면 그것이 입묘(入墓)할까 염려되므로 역시 형충이 마땅하나, 묘신의 강약을 보아야 하니, 강하면 묘를 벗어나 나오고자 하므로 진실로 소통이 이롭고, 약하면 묘에 의지하여 보존해야 하므로 파괴를 깊이 싫어한다. 이 역시 개고와 극도의 구별이 있는 것이니, 요컨대 모두 형충을 취해서는 안 된다. 토(土)의 경우는 본래 고묘가 없으니 더욱 말할 필요도 없다. 명리(命理)는 변화가 많음에 이르러서는, 또 일주와 육신이 지나치게 발양하고 진동하여 이 사계의 고(庫)를 써서 거두어들이는 경우가 있으니, 닫고 여는 것[翕闢] 역시 그 마땅함을 따를 뿐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종래에 전하기를 사계 지지에 감추어진 것은 모두 고 안의 물건이라 하였는데, 지금의 논은 억지로 나누어 구별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옛 설을 믿는다면 을(乙)은 미(未)에서 묘가 될 뿐 아니라 또 진(辰)에서도 묘가 되고, 신(辛)은 축(丑)에서 묘가 될 뿐 아니라 또 술(戌)에서도 묘가 되며, 계(癸)는 진(辰)에서 묘가 될 뿐 아니라 또 축(丑)에서도 묘가 되고, 정(丁)은 술(戌)에서 묘가 될 뿐 아니라 또 미(未)에서도 묘가 되며, 무(戊)는 진(辰)에서 묘가 되고 또 술(戌)에서도 묘가 되며, 기(己)는 축(丑)에서 묘가 되고 또 미(未)에서도 묘가 된다. 그렇다면 목·화·금·수는 각각 묘가 하나씩 늘고, 토는 끝내 네 개의 묘를 갖게 되니, 어찌 크게 괴이하지 않겠는가?
是故生月遇辰戌丑未,只照寅申巳亥等支,一例取用,先以土論,後及所藏,其或用所藏之墓神,或為日主六神之墓地,則斟酌宜否刑沖可也。 看從局法 凡看日主無根,滿柱皆官則當從官,滿柱皆煞則當從煞,滿柱皆財則當從財,滿柱皆食則當從食,滿柱皆傷則當從傷。若滿柱皆印綬,則無從理,蓋皆生助日主,旺甚無依決矣。凡從何神,只要此神生旺則吉。若從神受克,日主逢根則兇。其不同者,從官從煞,只喜生官生煞,及官煞運。從財從食,固喜生財食傷,及食傷運,即財再生官煞,食傷復生財皆可,此其定理也。然又須看日主情勢如何,所從之神,意向安在,而變通推測之,無不驗矣。或曰舊但取從煞從財,今復取從官從食從傷,其理何出?蓋不知命理惟取生克,克我之煞可從,則可我之官何不可從?我克之財可從,而我生之食傷何不可從?古今命如是者甚多,術家未之遍考耳。至於從局動云棄命,豈有命而可棄者乎?蓋從神強甚,譬之馬馳峻阪,舟飽疾風,非人力所及制,若強取收頓,必有顛墜覆溺之尤。不若從其所如,而駕役得宜,則馬與舟仍為我用耳。此棄乃不棄也。或曰,不可強制信矣,行運生扶日主,何以不可,不知身在峻阪之上,疾風之中,棄馬與舟而自求全,豈不速敗乎?
이러므로 생월(生月)에 진술축미(辰戌丑未)를 만나면 다만 인신사해(寅申巳亥) 등의 지지와 같이 한결같이 취용하여, 먼저 토(土)로 논하고 뒤에 감추어진 것에 미치며, 혹 감추어진 묘신(墓神)을 쓰거나 혹 [그 지지가] 일주나 육신(六神)의 묘지(墓地)가 되면, 형충(刑沖)이 마땅한지 아닌지를 헤아리면 된다. 종국(從局)을 보는 법 무릇 일주가 뿌리가 없는 것을 보아, 온 사주가 모두 정관(正官)이면 마땅히 종관(從官)하고, 온 사주가 모두 칠살(七殺)이면 마땅히 종살(從煞)하며, 온 사주가 모두 재성(財星)이면 마땅히 종재(從財)하고, 온 사주가 모두 식신(食神)이면 마땅히 종식(從食)하며, 온 사주가 모두 상관(傷官)이면 마땅히 종상(從傷)한다. 만약 온 사주가 모두 인수(印綬)이면 따를 이치가 없으니, 대개 모두 일주를 생조하여 매우 왕하되 의지할 데가 없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무릇 어느 신을 따르든 다만 이 신이 생왕하면 길하다. 만약 따르는 신이 극을 받고 일주가 뿌리를 만나면 흉하다. 그 다른 점은, 종관·종살은 다만 관살을 생하는 것과 관살운을 기뻐하고, 종재·종식은 진실로 재성과 식상을 생하는 것과 식상운을 기뻐하며, 곧 재성이 다시 관살을 생하거나 식상이 다시 재성을 생하는 것도 모두 괜찮으니, 이것이 정해진 이치이다. 그러나 또 일주의 정세가 어떠한지, 따르는 신의 의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아 변통하여 추측하면 맞지 않는 것이 없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다만 종살·종재만 취하였는데, 지금 다시 종관·종식·종상을 취하니 그 이치가 어디서 나왔는가?'라고 하였다. 대개 명리는 오직 생극(生剋)을 취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나를 극하는 칠살을 따를 수 있다면 나를 극하는 정관은 어찌 따를 수 없겠는가? 내가 극하는 재성을 따를 수 있다면 내가 생하는 식상은 어찌 따를 수 없겠는가? 고금의 명조 가운데 이와 같은 것이 매우 많으니, 술가(術家)가 두루 고찰하지 않았을 뿐이다. 종국을 걸핏하면 기명(棄命)이라 일컫는 데 이르러서는, 어찌 명(命)이 있는데 버릴 수 있겠는가? 대개 따르는 신이 매우 강한 것은 비유하자면 말이 가파른 비탈을 달리고 배가 거센 바람을 가득 받은 것과 같아서 사람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만약 억지로 거두어 멈추게 하려 하면 반드시 넘어지고 떨어지며 뒤집히고 빠지는 근심이 있다. 그 가는 바를 따르면서 부리기를 마땅하게 하는 것만 못하니, 그러면 말과 배는 여전히 나에게 쓰인다. 이 버림은 곧 버리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억지로 제어할 수 없음은 믿겠으나, 행운이 일주를 생부(生扶)하는 것은 어찌 안 되는가?'라고 하니, 몸이 가파른 비탈 위, 거센 바람 가운데 있으면서 말과 배를 버리고 스스로 온전하기를 구하면 어찌 빨리 패하지 않겠는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