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여덟 글자가 되기까지
생년월일시를 여덟 글자로 바꾸는 일에는 해석이 한 방울도 없다. 사주의 앞단은 점이 아니라 달력이다. 다만 그 달력에도 사람이 정한 약속이 숨어 있다.
한눈에 생년월일시를 여덟 글자로 바꾸는 일에는 해석이 들어가지 않는다. 육십갑자의 순환과 절기의 경계를 따라가는 순수한 계산이다. 다만 그 계산이 딛고 선 바닥에는 사람이 정한 약속이 몇 개 깔려 있다. 계산과 약속을 갈라 놓는 것이 이 시리즈의 첫 걸음이다.
사주를 본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신비한 무엇을 떠올린다. 그런데 사주의 첫 단계에는 신비가 없다. 달력이 있을 뿐이다.
생년월일시라는 숫자 네 개를 넣으면 여덟 글자가 나온다. 이 변환을 만세력이라 한다. 여기에는 해석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다. 같은 생일을 넣으면 누가 계산하든 같은 여덟 글자가 나온다. 어제 넣어도 오늘 넣어도 같다. 계산하는 사람의 실력이나 기분이나 유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프로그래머의 말로 하면 순수한 함수다. 들어가는 값이 같으면 나오는 값이 반드시 같은, 그런 종류의 일이다.
네 기둥이 서는 법
네 기둥은 각각 다른 시계를 본다.
날의 기둥, 일주(日柱)는 가장 단순하다. 육십갑자가 하루에 하나씩, 끊긴 적 없이 흘러왔다. 갑자(甲子)로 시작해 계해(癸亥)로 끝나는 예순 개의 이름이 예순 날마다 한 바퀴를 돈다. 어느 기준일의 간지를 알면 그다음은 날수를 세는 일이다. 왕조가 바뀌고 달력이 바뀌어도 이 순환만은 끊기지 않았다.
달의 기둥, 월주(月柱)는 달력의 달을 보지 않는다. 절기를 본다. 이월이 되었다고 달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입춘이 지나야 인월(寅月)이 된다. 경칩이 지나야 묘월(卯月)이 되고, 청명이 지나야 진월(辰月)이 된다. 그러니 이월 초에 태어난 사람이 아직 지난달의 글자를 쓰는 일이 생긴다. 절기가 드는 시각은 분 단위까지 정해져 있고, 그 시각을 한 시간 넘기느냐 못 넘기느냐로 기둥 하나가 통째로 바뀐다.
해의 기둥, 연주(年柱)도 마찬가지다. 새해 첫날에 바뀌지 않는다. 입춘에 바뀐다. 그래서 양력 일월에 태어난 사람은 지난해의 글자를 쓴다. 새해가 밝았다고 사주의 해까지 밝은 것은 아니다.
시의 기둥, 시주(時柱)는 하루를 열둘로 나눈다. 두 시간이 한 자리다. 지지는 시각으로 정해지고, 천간은 그날의 일간에서 정해진 규칙으로 뽑는다. 여기까지가 전부다. 규칙은 몇 줄이면 적히고, 계산은 눈 깜짝할 새에 끝난다.
그런데 바닥에 약속이 깔려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만세력은 티끌 하나 없는 계산이다. 그런데 이 계산이 딛고 선 바닥에는 사람이 정한 약속이 몇 개 깔려 있다. 약속이 다르면, 같은 생일에서 다른 글자가 나온다.
첫째, 한 해의 시작을 어디로 볼 것인가. 입춘으로 보는 것이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그런데 동지를 한 해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양의 기운이 처음 되살아나는 자리를 한 해의 출발로 삼는 관점이다. 겨울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동지와 입춘 사이에 걸린 사람은, 어느 약속을 따르느냐에 따라 연주가 통째로 달라진다. 연주 하나가 바뀌면 뒤에 따라오는 격과 용신까지 흔들린다. 이 갈림은 뒤에서 다시 만난다.
둘째, 시계를 어느 자오선에 맞출 것인가. 우리가 쓰는 시계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서울의 하늘은 그보다 삼십 분쯤 늦게 정오를 맞는다. 태어난 시각을 시계 그대로 쓸 것인가, 하늘의 시각으로 되돌려 쓸 것인가. 경계 근처에 태어난 사람은 여기서 시주가 갈린다. 게다가 서머타임을 시행하던 몇 해가 우리 역사에도 있었다.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은 시계가 한 시간 앞당겨져 있었다는 사실까지 되돌려 놓아야 한다.
셋째, 자시(子時)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자시는 밤 열한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다. 자정을 사이에 끼고 있다. 열한 시 반에 태어난 사람은 오늘의 날짜를 쓰는가, 내일의 날짜를 쓰는가. 이것도 정해진 답이 아니라 택하는 약속이다.
갈리는 것과 틀리는 것
여기서 조심할 것이 하나 있다. 이 약속들의 존재가 만세력을 흐리멍덩한 것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을 하나 정하고 나면, 계산은 다시 완벽하게 결정된다. 입춘으로 한 해를 세기로 했다면 그 뒤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동경 135도로 맞추기로 했다면 그것도 마찬가지다. 흔들리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계산의 출발점이고, 출발점은 사람이 고른다.
그래서 기계에게 물을 때 중요한 것은 답만 받는 것이 아니라 어느 약속으로 계산했는지를 함께 받는 것이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 밝히지 않는 계산은, 아무리 빨라도 신뢰할 수 없다. 반대로 기준을 밝힌 계산은 갈림까지 정직하게 보여 준다. 이 사람은 동지와 입춘 사이에 태어났고,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갈립니다, 하고.
이것이 이 시리즈에서 계산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유다. 정확함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단단하고 어디가 사람의 선택인지를 갈라 놓으려는 것이다.
달력 앞에서
만세력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이 층이 사주에서 가장 조용한 자리라고 느낀다.
여기에는 길흉이 없다. 좋은 글자도 나쁜 글자도 없다. 입춘 절입 시각을 넘겼는지 아닌지, 자정을 지났는지 아닌지, 그저 그것뿐이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조용함이 좋다. 여덟 글자가 놓이기까지는 아무도 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판이 깔릴 뿐이다. 판이 다 깔린 다음에야, 비로소 무거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는 그 판 위에 저울을 올린다. 여덟 글자 사이에서 힘이 몇 대 몇인지 재는 일이다. 그리고 저울부터는, 계산의 성질이 조금 달라진다.
한 줄 요약: 생일이 여덟 글자가 되는 일은 순수한 계산이다. 다만 그 계산의 출발점에는 사람이 정한 약속이 깔려 있고, 정직한 계산은 그 약속까지 함께 밝힌다.
내 생일이 어떤 여덟 글자가 되는지 궁금하다면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힘을 재다. 여덟 글자 사이의 무게를 저울에 올리는 일, 그리고 그 저울의 눈금은 누가 정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