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고 누리고 싶은 힘, 식상(食傷)
식상이 두텁다는 말은 흔히 '말이 많다'로만 풀린다. 그러나 식상은 본디 내 안의 것을 바깥으로 꺼내려는 가장 자연스러운 힘이다. 표현·향락·생산이라는 한 욕망의 결을, 세 얼굴로 다시 읽는다.
한눈에
- 식상이란 · 일간이 낳는 자리.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을 묶어 부르는 이름.
- 욕망의 결 · 안의 것을 밖으로 꺼내려는 힘. 표현·향락·생산이라는 한 욕망의 자리.
- 세 얼굴 · 강하면 거침없는 표현, 약하면 속에 담아두기, 충극이면 표현이 검열로 막힌다.
- 다시 읽기 · 식상을 누르려 하지 말고, 어느 길로 꺼내는지를 본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 자리에 이런 말이 남곤 한다. "그 사람은 말이 많아." "그 사람은 손재주가 좋아." 한쪽에서는 흠으로, 한쪽에서는 재주로 부른다. 같은 자리가 다른 이름을 얻는 데는 까닭이 있다.
명리는 그 자리를 식상(食傷)이라 한다. 식신(食神)과 상관(傷官), 두 글자를 묶은 이름이다. 식신은 먹는 일에 깃든 신이라는 부드러운 글자이고, 상관은 다스리려는 자리를 상하게 한다는 험한 글자다. 부드러움과 거침이 한 자리에 나란히 붙은 까닭은, 이 자리가 본디 안의 것을 밖으로 내미는 일이기 때문이다.
식상은 사주에서 일간이 낳는 자리를 가리킨다. 내가 길러서 밖으로 내보내는 글자들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 손에서 빚어지는 일, 몸에서 흐르는 흥. 옛사람은 자식도 이 자리에 두었다. 내가 낳아 세상에 내어 보낸 것, 그 모두가 식상이다.
이 자리가 가리키는 욕망은 무엇인가. 표현이다. 향락이다. 생산이다. 안에 담긴 것을 가만 두지 못하고 바깥으로 꺼내려는 힘. 새가 우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사람이 노래하는 것도 같은 자리에서 온다. 자기 안의 것이 자기 밖으로 흐르려 할 때 사람은 살아 있다고 느낀다. 가장 자연스러운, 가장 멈추기 어려운 욕망이다.
이 자리가 두텁게 자리 잡은 사주가 있다. 식상이 강한 사람이다. 말이 술술 흐르고, 손이 가만 있지 않고, 즐길 거리를 잘 찾는다. 사람을 끄는 흥과 곁을 풀어주는 농담이 있다. 그러나 같은 결이 다른 자리로 돌아서면 다른 얼굴이 된다. 거침없는 표현이 곁을 다치게 하고, 즐거움을 좇는 자리가 일을 흐트러뜨린다. 한 번 내뱉은 말이 자기 자리를 흔드는 일도 잦다. 안의 것이 바깥으로 흐르는 길이 너무 넓으면, 새지 않아야 할 자리에서도 새기 시작한다.
거꾸로 이 자리가 옅은 사주도 있다. 식상이 약한 사람이다. 안에 담아두기를 잘한다. 말 한마디를 고르고 골라 내놓고, 손에 잡힌 일도 끝이 보일 때까지 안에 둔다. 즐기는 일이 어색하고, 농담이 입에서 잘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결이 다른 자리로 돌아서면, 진중함이 된다. 가벼이 흩어지지 않는 무게, 천천히 익히는 손길, 한 번 내놓은 것이 멀리 가는 글. 흥의 자리가 비어 보이지만, 그 빈 자리에 깊이가 자란다.
세 번째 얼굴은 충극을 받는 식상이다. 사주 안에서 식상이 다른 기운에 강하게 눌리는 자리, 특히 인성(印星)이 두텁게 들어와 식상을 치는 자리다. 인성은 안으로 받아들이고 다듬는 자리라, 강해지면 밖으로 내미는 길을 가로막는다. 말이 나오기 전 한 번 더 다듬어지고, 손에 잡힌 일이 내보내기 전 또 한 번 검열된다. 즐거움이 의무로 바뀌고, 표현이 시험처럼 무거워진다. 이때 사람은 자주 답답하다고 느낀다. 안에 분명히 무엇이 있는데 입과 손에 닿기 전에 막힌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고 싶다. 식상이 강하다고 좋은 것도, 약하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거침없는 자리에 곁이 다치고, 절제된 자리에 깊이가 자란다. 어느 한쪽 끝에 좋고 나쁨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식상은 한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꺼내 놓는지를 보여주는 자리일 뿐이다.
그러면 식상을 어떻게 쓰는가. 강한 식상은 길을 정해 흘려보내는 일이다. 안의 것이 사방으로 새지 않게 한 줄 길을 내어 두는 것. 글로, 일로, 만드는 자리로. 그렇게 길이 정해진 식상은 곁을 다치지 않으면서 멀리 간다. 약한 식상은 거꾸로다. 작은 표현 자리 하나를 곁에 두는 일. 짧은 글, 한 마디 농담, 손에 익히는 사소한 일거리. 그 작은 자리에서부터 안의 것이 바깥으로 흐를 길이 열린다. 충극받는 식상은 검열을 잠시 내려두는 시간을 가지는 일이다. 다듬기 전의 거친 한 줄을 그대로 두어 보는 자리, 그 자리에서 막힌 길이 다시 풀린다.
식상은 결국 안의 것이 바깥으로 흐르는 자리다. 그 흐름이 너무 거세도, 너무 잠겨도, 막혀도 사람은 답답해한다. 사람마다 자기를 꺼내 놓는 자리가 다르고, 그 자리가 열리는 너비도 다르다. 식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내 안의 것이 어느 길로 어떻게 흘러 나가는지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일이다.
안의 것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를 본다. 흐름은 막을 자리가 아니라 들여다볼 자리다. 내 사주의 식상은 어떤 결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재성 — 가지고 굴리고 싶은 힘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