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기운을 이름에 담다 (용신과 이름)
성명학의 여러 축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용신이다. 그 사주에 가장 필요한 한 기운을 평생 불릴 소리에 담는 일. 이름 짓기의 첫 자리는 언제나 여기다.
한눈에
- 첫 자리 · 성명학의 여러 축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이 용신. 이름 짓기는 그 사주에 가장 필요한 기운을 찾는 데서 시작한다.
- 담는 법 · 부르는 소리에 담고, 글자에 담는다. 겹으로 담을수록 이름과 사주가 한 방향을 본다.
- 아닌 것 · 용신을 담았다고 운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부적이 아니라 방향의 표시다.
- 순서 · 그래서 작명은 이름 후보를 늘어놓는 일이 아니라, 사주부터 읽는 일이다.
이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좋은 뜻, 예쁜 소리, 부르기 쉬운 리듬. 다 담고 싶은 것들이다. 그런데 성명학이 가장 먼저 꺼내 드는 답은 따로 있다. 그 사주에 가장 필요한 기운, 용신(用神)이다.
용신 시리즈에서 길게 다뤘지만, 짧게 되짚는다. 사주 여덟 글자에는 저마다 넘치는 것과 모자란 것이 있다. 그 가운데 전체의 균형을 잡아 주는 결정적 한 기운이 있으니, 그것이 용신이다. 불이 모자란 사주에는 불이, 물이 마른 사주에는 물이 용신이 된다. 같은 글자도 누구에겐 약이 되고 누구에겐 독이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성명학은 이 용신을 이름에 담자는 발상이다. 사주에 목(木)이 모자라 목이 용신인 사람이라면, 이름의 소리와 글자에 목의 기운을 심는다. 화(火)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화의 기운을 심는다. 이름은 평생 가장 많이 불리는 소리이니, 부를 때마다 그 모자란 기운이 한 번씩 곁에 다녀가게 하자는 것이다.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간절하다면 간절한 발상이다.
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먼저 소리에 담는다. 한글의 첫소리마다 오행이 깃든다고 보는 관점이 있어서, 어떤 소리로 시작하는 글자를 고르느냐에 따라 이름에 흐르는 기운이 달라진다. 이 소리의 문법은 다음 편에서 따로 다룬다. 그리고 글자에 담는다. 한자 이름이라면 글자가 품은 오행을 보고, 뜻으로도 담는다. 물이 필요한 아이에게 바다나 시내의 뜻을 가진 글자를 고르는 식이다. 소리로 한 겹, 글자로 한 겹. 겹으로 담을수록 이름과 사주가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성급해지기 쉬운 자리가 있다. 용신을 담은 이름이 운을 바꿔 준다고 믿어 버리는 것이다. 첫 편에서 말했듯 이름은 사주를 바꾸지 못한다. 용신을 담았다고 없던 불이 사주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헛수고인가.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용신을 담은 이름은 부적이 아니라 표시다.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름을 지은 사람이 알았고, 부르는 사람마다 모르는 채로 되뇌게 되는 표시. 효험을 장담할 수는 없어도, 방향을 잊지 않게는 해 준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작명이 왜 어려운지도 보인다. 이름 후보를 백 개 늘어놓아도, 사주를 읽지 않았다면 고를 기준이 없다. 어느 이름이 좋은 이름인지는 이름 안에 있지 않고 그 사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성 들인 작명일수록 이름 짓는 시간보다 사주 읽는 시간이 길다. 용신을 잡는 일 자체가 명리에서 가장 어려운 관문이니, 작명의 무게도 결국 거기서 온다.
그리고 그 무게는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져야 한다. 용신은 보는 눈에 따라 갈리기도 하는 자리다. 그러니 이 이름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도, 이 이름이라 탈이 났다는 말도 성명학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 정도다. 이 사주에는 이 기운이 모자라 보이니, 이왕이면 그쪽을 향한 이름이면 좋겠다.
모자란 것의 이름을 평생 불러 준다는 것. 생각해 보면 묘한 일이다. 우리는 대개 넘치는 것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 강한 것, 빛나는 것, 남보다 나은 것. 그런데 성명학은 반대로 간다. 가장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아, 그것을 채우는 소리를 이름으로 삼는다. 작명의 첫 자리가 용신인 까닭을, 나는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름이란 자랑이 아니라 돌봄의 형식일 수 있다는 것으로.
좋은 이름의 기준은 이름 안에 있지 않고 그 사주 안에 있다. 내 사주의 용신은 무엇일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부르는 소리에 흐르는 기운 (음령오행)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