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아서 다음에게 건네다, 상생(相生)
물이 나무를 키우고 나무가 불을 일으킨다. 다섯 기운이 한 방향으로 손을 건네는 상생의 고리를 따라간다. 받아서 다음으로 넘기는 자리, 그것이 생의 본뜻이다.
오행은 서로를 낳고 살린다. 이것을 상생(相生)이라 한다. 서로 낳아 살리는 관계라는 뜻이다.
고리는 한 방향으로 돈다. 목생화(木生火), 나무가 불을 낳는다. 화생토(火生土), 불이 타고 남은 재가 흙이 된다. 토생금(土生金), 흙이 다져져 그 속에서 쇠가 나온다. 금생수(金生水), 쇠가 차가워지면 그 표면에 물방울이 맺힌다. 수생목(水生木), 물이 나무를 키운다. 그리고 다시 목생화로 이어진다. 다섯 기운이 손에 손을 잡고 한 바퀴 도는 고리다.
이 고리에는 두 자리가 함께 있다. 낳아 주는 쪽과 받는 쪽이다. 명리에서는 나를 낳아 주는 기운을 인성(印星), 내가 낳는 기운을 식상(食傷)이라 부른다. 나무에게 물은 인성이고, 나무가 일으키는 불은 식상이다. 곧 상생의 고리 위에서 내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같은 생이라도 받는 일이 되기도 하고 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하나 풀어야 한다. 생은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다.
생을 받으면 기운이 살아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생을 주는 쪽은 그만큼 제 힘을 덜어 낸다. 물이 나무를 키우느라 말라 가고, 나무가 불을 일으키느라 제 몸을 태운다. 받는 쪽이 너무 약하면 아무리 부어도 살지 않고, 주는 쪽이 너무 많으면 받는 쪽이 도리어 물러 터진다. 어머니가 자식을 끝없이 거두면 자식이 제 힘으로 서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명리는 생이 지나친 자리를 따로 살핀다. 그 이야기는 뒤에 과다와 반생을 다룰 때 다시 만난다.
그러니 상생의 진짜 뜻은 '거저 주는 사랑'이 아니라 '건넴'에 가깝다.
나는 앞 기운에게서 받아 살아나고, 그 받은 것을 다음 기운에게 넘긴다. 받기만 하는 자리도, 주기만 하는 자리도 고리 안에는 없다. 모두가 받아서 건네는 중간 자리다. 다섯 기운 중 어느 하나도 처음이거나 끝이 아닌 까닭이 여기 있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무언가를 키우고 돕는 일을 우리는 흔히 한쪽의 희생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상생의 고리는 다른 그림을 그린다. 내가 누군가를 살리는 힘은 본래 다른 누군가에게서 건네받은 것이고, 내가 키운 것은 또 다음으로 흘러간다. 받은 적 없이 줄 수 있는 사람도, 주지 않고 받기만 하는 자리도 없다. 낳는다는 것은 결국, 내게로 흘러온 것을 멈춰 세우지 않고 다음으로 건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