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고 싶은 마음, 눌러온 마음 (식상)
하고 싶은 말을 삼키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다. 명리는 나에게서 흘러나가는 기운에 식상이라는 이름을 두었다. 표현은 사치가 아니라 기운의 출구라는 이야기.
한눈에
- 식상이란 · 내가 낳는 기운, 나에게서 밖으로 흘러나가는 통로. 말·글·노래·요리·만들기가 다 이 자리다.
- 막히면 · 나가지 못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안에서 고인다. 답답함과 체증은 그 고임의 얼굴이다.
- 오해 하나 · 표현은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순환의 영역이다. 잘하는 표현이 아니라 흘러나가는 표현이면 된다.
- 허락 · 서툰 표현도 표현이다. 들어 줄 사람이 없으면 혼자 쓰는 것으로도 통로는 열린다.
말을 삼키는 버릇이 오래된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삼켰는지도 잊는다. 그 자리에서는 참는 것이 맞았고, 다음 자리에서도 참는 것이 편했고, 그러다 보니 참는 것이 성격이 되었다. 그런데 몸은 기억한다. 이유 없이 답답하고, 가슴에 무언가 얹힌 것 같고, 어느 날은 별것 아닌 일에 왈칵 넘친다. 명리는 이 사정을 읽는 자리를 하나 가지고 있다. 식상(食傷)이다.
십성 시리즈에서 다뤘던 이름이다. 식신과 상관을 묶어 부르는 말인데, 뜻은 하나로 모인다. 내가 낳는 기운. 내 안의 것이 밖으로 흘러나가는 통로다. 말이 그렇고, 글이 그렇고, 노래와 요리와 만드는 일이 다 그렇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도 이 자리로 읽는다. 안의 것을 밖으로 내어놓는 모든 일이 식상의 일이다.
내어놓는 기운에도 두 결이 있다는 것을 곁들여 두면 좋겠다. 식신(食神)은 한 우물을 잔잔히 파는 내어놓음이다. 오래 익힌 것을 꾸준히, 깊게 내놓는 결. 상관(傷官)은 번뜩이고 거침없는 내어놓음이다. 틀을 답답해하고, 낡은 것을 꼬집고, 새 길을 내는 결. 어느 쪽이 낫다는 서열은 없다. 다만 제 표현이 어느 결인지 알면, 애먼 방식으로 애쓰는 일이 줄어든다. 잔잔한 결의 사람이 튀어 보려 무리할 것도, 번뜩이는 결의 사람이 얌전한 틀에 저를 구겨 넣을 것도 없다.
통로라는 말에 이 자리의 요체가 있다. 기운은 흐르려 한다. 내 안에서 만들어진 것들, 생각과 감정과 흥은 밖으로 나가려는 성질이 있다. 통로가 열려 있으면 그것들은 말이 되고 글이 되고 일이 되어 흘러나간다. 그런데 통로가 막히면 어떻게 되는가. 나가지 못한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안에서 고인다. 답답함, 얹힌 느낌, 까닭 모를 짜증은 대개 그 고임의 얼굴이다. 오래 눌러온 사람일수록 이 감각이 낯익을 것이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걷어 내고 싶다. 표현은 재능의 영역이 아니라 순환의 영역이라는 것. 우리는 표현을 잘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미뤄 둔다. 글은 작가가, 노래는 가수가, 나 같은 사람은 들어 주기나 하는 거라고. 그러나 식상은 특별한 사주에만 있는 기운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의 사주에나 있고, 없다시피 한 사주라도 그 기운은 운으로, 삶으로 흐를 길을 찾는다. 숨 쉬는 일에 재능이 필요 없듯, 내어놓는 일도 본래 자격이 필요 없다. 잘하는 표현이 아니라 흘러나가는 표현이면 족하다.
그러니 눌러온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통로를 한 뼘만 여는 것이다. 들어 줄 사람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된다. 아무도 안 볼 일기, 혼자 흥얼거리는 노래, 한 접시의 요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저녁. 나간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디로 나가는지는 부차적이다. 그리고 처음 여는 통로에서 나오는 것들은 대개 서툴고, 두서없고, 조금 부끄럽다. 그래도 된다. 오래 잠긴 수도를 틀면 녹물부터 나온다. 그것은 물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흐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 가지 덧붙이면, 표현을 다시 일로 만들지는 말자. 눌러온 사람이 통로를 열기 시작하면, 이내 오랜 버릇이 따라붙는다. 이왕 쓰는 글이면 잘 써야 하고, 이왕 배우는 악기면 자격증까지 가야 직성인 버릇. 표현이 다시 성과가 되는 순간 통로는 도로 좁아진다. 식상은 본래 노는 기운에 가깝다. 아이가 그리고 싶어서 그리듯, 쓸모와 평가 바깥에서 흘러나올 때 가장 잘 흐른다. 못 그린 그림을 그릴 권리, 어설픈 노래를 부를 권리. 그 권리를 저에게 돌려주는 것이 이 통로의 진짜 개통이다.
삼킨 말들은 없어지지 않고 어딘가에 쌓인다. 그 창고를 평생 넓히며 살 수는 없다. 오늘 하나쯤은 흘려보내도 된다. 긴 글이 아니어도, 완성된 무엇이 아니어도. 잘하지 않아도 된다.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이 기운의 전부이고, 어쩌면 숨통의 전부다.
잘하는 표현이 아니라 흘러나가는 표현이면 족하다. 내 사주의 표현하는 기운 살펴보기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책임이 무겁게 느껴질 때 (관성)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