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는 관계가 있다면 (충)
만나기만 하면 부딪히는 사람이 있다. 명리는 그 자리에 충이라는 이름을 두었다. 마주 보는 기운끼리의 충돌. 그런데 충은 깨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게도 한다.
한눈에
- 충이란 · 정반대 자리의 기운끼리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 서로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반대라서 부딪힌다.
- 두 얼굴 · 충은 깨뜨리는 힘이면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고인 것을 흔들어 옮기게 하는 것도 충이다.
- 관계에서 · 자꾸 부딪히는 사람과는 거리와 완충이 요령이다. 억지로 붙어 있지도, 원수로 만들지도 않는 것.
- 기억할 것 · 부딪힘 없는 삶은 편한 대신 굳는다. 충은 불화의 이름이기 전에 운동의 이름이다.
그 사람과는 이상하게 자꾸 부딪힌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 자꾸 어긋나고, 가만있어도 신경이 곤두선다. 가족일 수도, 동료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결론 내리기 쉽다. 저 사람이 이상하거나, 내가 못났거나. 명리는 세 번째 답을 가지고 있다. 둘이 반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충(沖)은 지지의 열두 자리에서 정반대에 앉은 글자끼리 마주치는 것을 말한다. 시계의 12시와 6시처럼, 원의 정중앙을 두고 마주 보는 자리들. 자(子)와 오(午)가 그렇고, 묘(卯)와 유(酉)가 그렇다. 물의 극과 불의 극, 봄의 극과 가을의 극이 정면으로 만나는 것이니 부딪힘은 자연스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라는 점이다. 어느 쪽도 나빠서 부딪히는 것이 아니다. 반대라서 부딪히는 것이다.
그리고 충에는 두 얼굴이 있다. 깨뜨리는 얼굴만 보면 충은 흉하다. 안정된 것을 흔들고, 붙어 있던 것을 떼어 놓는다. 그러나 옛 글들은 충의 다른 얼굴도 함께 적었다.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고인 물을 흔들어 흐르게 하고, 눌러앉은 것을 일으켜 옮기게 한다. 이사, 이직, 큰 결단 같은 인생의 굵직한 이동들이 충의 시기에 일어나는 일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부딪힘이 곧 운동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도 않는다.
충이 반가운 자리도 있다는 것을 짚어 두고 싶다. 앞서 성명학 시리즈에서 기운이 창고 글자에 갈무리되는 입묘를 이야기했다. 갇힌 기운은 있어도 꺼내 쓰기 어렵다고. 그런데 그 창고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충이다. 창고 글자끼리 부딪히면 갈무리되어 있던 기운이 밖으로 나온다고 본다. 잠겨 있던 재능이 어느 시기에 갑자기 터져 나오는 일을, 명리는 종종 이 그림으로 읽는다. 부딪힘이 늘 부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잠긴 것을 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눈을 관계에 가져와 보자. 자꾸 부딪히는 그 사람과 나는, 어쩌면 서로의 정반대 자리에 서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요령은 상대를 고치는 것도 나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끼리 지내는 법을 찾는 것이다. 첫째는 거리다. 마주 보는 기운은 바짝 붙을수록 세게 부딪힌다. 물리적으로든 마음으로든 한 뼘의 간격이 충돌을 크게 줄인다. 둘째는 완충이다. 둘 사이에 다른 사람, 다른 일, 다른 화제가 끼면 정면충돌이 비껴간다. 셋째는 방향이다. 부딪히는 힘을 서로에게 쓰지 않고 같은 과녁으로 돌리면, 반대의 기운은 뜻밖에 강한 짝이 된다. 정반대에서 보는 두 눈이 하나의 일을 보면, 어느 한쪽도 못 보던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충은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기로도 온다. 흐르는 운이 내 원국의 글자를 정면으로 칠 때다. 그런 해에는 바깥에 아무 일이 없어도 안이 시끄럽다. 눌러 두었던 물음들이 올라오고, 굳혀 두었던 결심이 흔들린다. 이때도 읽는 법은 같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움직이려는 것이다. 그 흔들림이 데려가는 곳이 어디인지는 몇 해 지나서야 보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끄럽던 해가 인생의 경첩이었던 경우가 많다.
물론 모든 부딪힘을 끌어안으라는 말은 아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는 관계라면 거리가 아니라 단절이 답일 때도 있다. 다만 부딪힌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지우기 전에, 한 번은 물어볼 만하다. 이 부딪힘이 나를 상하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부딪히는 사람을 다 끊어 내면 편해진다. 대신 굳는다. 아무도 나를 흔들지 않는 삶은 고요하지만, 고인 물도 고요하다. 돌아보면 나를 옮겨 놓은 것은 늘 어떤 부딪힘들이었다. 듣기 싫던 말, 불편하던 사람, 정반대의 눈. 충은 불화의 이름이기 전에 운동의 이름이라는 것을, 그 부딪힘들이 가르쳐 주었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움직이지도 않는다. 내 사주 속 부딪힘의 자리 살펴보기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이유 없이 미운 사람 (원진)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