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글자가 원국을 건드릴 때, 합과 충
운이 들어온다는 것은 새 글자 한 쌍이 원국에 더해진다는 뜻이다. 그 글자는 원국과 손을 잡거나 부딪친다. 시간 위에서 일어나는 합과 충을, 공망과 삼재의 통념까지 풀어 읽는다.
한눈에
- 운도 글자다 · 대운과 세운은 원국에 더해지는 새 간지. 그 글자가 원국과 만난다.
- 합 · 운에서 온 글자가 원국 글자와 손을 잡는다. 거슬리던 글자가 묶이면 길하고, 꼭 필요하던 글자가 묶이면 흉하다.
- 충 · 운에서 온 글자가 원국 글자와 부딪친다. 닫힌 곳간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선 자리를 흔드는 망치가 되기도 한다.
- 길흉은 무엇이냐에서 · 합도 충도 그 자체엔 좋고 나쁨이 없다. 무엇이 묶이고 무엇이 열리느냐가 가른다.
운이 들어온다는 것은 막연한 기운이 감도는 일이 아니다. 새 글자 한 쌍이 또렷이 내 원국에 더해지는 일이다. 대운이든 세운이든, 그것은 결국 간지 두 글자다. 그리고 그 글자는 원국 위에 가만히 얹혀만 있지 않는다. 원국의 글자들과 손을 잡거나, 정면으로 부딪친다. 손을 잡는 것을 합(合), 부딪치는 것을 충(沖)이라 한다.
먼저 합을 본다. 운에서 온 글자가 원국의 어떤 글자와 합하면, 그 원국 글자는 운에서 온 손님과 손을 맞잡느라 제 일을 잠시 내려놓는다. 이때 묶이는 것이 무엇이냐가 갈림이 된다. 평소 나를 거슬리게 하던 글자가 운에서 온 손님에게 손이 묶이면, 그 시기 나는 한결 편해진다. 거슬리던 것이 잠잠해진 까닭이다. 그러나 반대로, 내게 꼭 필요하던 글자가 그렇게 묶여 버리면 그 시기는 도리어 답답하다. 든든하던 한 글자가 제 자리를 비운 셈이기 때문이다. 격국에서 본 합거(合去), 곧 합이 되어 제 일을 못 하게 되는 그 일이, 이번에는 흐르는 시간 위에서 일어난다. 가령 앞 편에서 한 그루 목을 용신으로 삼았던 그 사주를 떠올려 보자. 운에서 기토(己)가 들어오면 그 기토가 용신인 갑목과 갑기합(甲己合)으로 손을 맞잡아, 든든하던 처방이 그 시기 제 일을 잠시 내려놓는다. 꼭 필요하던 한 글자가 운에서 온 손님에게 손이 묶인 셈이다.
다음은 충이다. 운에서 온 글자가 원국 글자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그 자리가 흔들린다. 흔들림은 두 얼굴을 지녔다. 어떤 자리는 단단히 닫혀 있어 그 안의 기운을 못 쓰고 있는데, 충이 와서 그 빗장을 깨면 안에 잠겨 있던 기운이 비로소 풀려난다. 진술축미 같은 자리가 충을 만나 그 안의 글자를 내어놓는 일, 곧 격국에서 본 형충개고(刑沖開庫)가 그것이다. 풀려난 그 기운이 내게 약이면 그 충은 도리어 반갑다. 반면 이미 잘 서 있던 자리가 충을 맞으면 공연히 흔들려 고단할 수 있다. 같은 충이라도 닫힌 곳간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선 기둥을 때리는 망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흔한 통념 하나를 짚어 두고 싶다. 운을 이야기할 때면 삼재가 들었다거나 어떤 살이 비친다거나 하며 미리 겁부터 먹는 일이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것도 결국 운에서 온 글자가 내 원국의 어떤 자리를 건드리는 일이다. 무서운 이름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건드려지는지가 먼저다. 삼재에 관해서는 앞서 띠를 다룰 때 그 정체를 따로 풀어 두었으니, 여기서는 이름에 눌리지 말고 무엇이 묶이고 무엇이 열리는지를 보면 된다는 것만 새겨 둔다. 이름이 흉해 보여도, 그 건드림이 내 약한 자리를 메우는 쪽이면 도리어 약이 된다.
그러니 운에서 오는 합과 충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들고 오지 않는다. 무엇이 묶이고 무엇이 풀리는가, 그렇게 묶이고 풀린 것이 내게 약인가 독인가. 길흉은 거기서 갈린다. 같은 손님이 같은 날 찾아와도, 그가 집안의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그날의 공기가 달라진다. 거슬리던 사람의 손을 잡아 주면 집이 고요해지고, 살림을 떠받치던 사람을 데리고 나가면 집이 빈다. 운이 건드리는 그 자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곧 그 해를 읽는 일이다.
운에서 온 글자가 무엇을 묶고 무엇을 여느냐, 그것이 내게 약인지 독인지가 길흉을 가른다. 올해 운은 내 어느 자리를 건드릴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운에도 손님이 있다 (희운과 기운)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