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자리의 이름, 12궁(十二宮)
삼정이 얼굴의 계절이라면 12궁은 절기다. 명궁에서 부모궁까지, 얼굴 위에 새겨진 열두 자리의 이름과 뜻을 읽는다. 그 목록은 곧 옛사람이 꼽은 한 삶의 살림살이다.
한눈에
- 12궁이란 · 얼굴 위에 새겨진 열두 자리. 삼정이 계절이라면 12궁은 절기.
- 열두 이름 · 명궁·관록궁·복덕궁·천이궁·부모궁·형제궁·전택궁·처첩궁·자녀궁·질액궁·재백궁·노복궁.
- 무엇이 담기나 · 본성·일·복·떠남·뿌리·형제·터·짝·자녀·몸·재물·도움. 한 삶의 살림살이 전부.
- 다시 읽기 · 자리의 이름은 곧 옛사람이 삶에서 무겁게 여긴 것들의 목록이다.
앞에서 얼굴을 세 층으로 갈랐다. 이마는 초년, 가운데는 중년, 턱은 말년. 그런데 삼정은 큰 눈금이다. 계절은 알려주지만 절기까지는 일러주지 않는다. 관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얼굴 위에 열두 개의 자리를 따로 새겨 두었다. 그것이 12궁(十二宮)이다. 궁(宮)은 집이라는 뜻이니, 얼굴에 지어 둔 열두 채의 집인 셈이다.
열두 자리를 얼굴 위에서 차례로 짚어 본다.

먼저 얼굴 한가운데, 세로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눈썹 사이가 명궁(命宮)이다. 목숨 명 자를 쓴, 열두 자리의 첫머리. 한 사람의 본성이 머무는 자리로 본다. 그 아래 콧대가 시작되는 자리가 질액궁(疾厄宮), 몸의 자리다. 병과 액이라는 험한 글자가 붙었지만, 뜻은 건강을 살피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코가 재백궁(財帛宮), 재물의 자리다. 얼굴 한가운데 우뚝한 그 자리에 옛사람은 살림의 무게를 두었다.
이마에는 네 자리가 있다. 이마 한가운데가 관록궁(官祿宮), 일의 자리다. 벼슬과 녹봉이라는 옛말이 붙었지만 지금 말로 하면 일과 이룸의 자리다. 그 곁이 복덕궁(福德宮), 복의 자리. 이마 가장자리는 천이궁(遷移宮), 옮기고 떠나는 자리다. 이사와 여행, 삶의 터를 옮기는 일이 여기 담긴다. 그리고 이마 위쪽에 부모궁(父母宮), 뿌리의 자리가 있다. 나를 낳은 이들, 내가 비롯된 곳이 얼굴의 가장 높은 자리에 얹힌다.
눈가에도 네 자리가 모여 있다. 눈썹이 형제궁(兄弟宮), 형제의 자리다. 눈썹과 눈 사이 눈두덩이 전택궁(田宅宮), 밭과 집, 곧 터의 자리다. 눈꼬리 곁이 처첩궁(妻妾宮), 짝의 자리. 이름에 옛 시대의 흔적이 짙어 요즘은 부부궁이라 바꿔 부르기도 하는데, 뜻은 하나다. 평생을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의 자리. 그리고 눈 아래가 자녀궁(子女宮), 자녀의 자리다. 눈물이 고이는 그 자리에 자식을 두었다는 것이 어쩐지 아릿하다.
마지막으로 턱 언저리가 노복궁(奴僕宮)이다. 종과 하인이라는 옛말이 붙었지만, 뜻은 도움의 자리다. 아랫사람, 곁에서 나를 거드는 이들, 내가 부리고 또 기대는 손들. 지금 말로 하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자리인 셈이다.
이렇게 열둘을 다 짚고 나서 이름만 다시 나란히 읽어 본다. 본성, 일, 복, 떠남, 뿌리, 형제, 터, 짝, 자녀, 몸, 재물, 도움.
문득 이것이 관상 책의 목차가 아니라 삶의 목록이라는 데 생각이 닿는다. 옛사람이 한 생에서 무겁게 여긴 것들, 있으면 든든하고 없으면 서러운 것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다. 얼굴에 열두 자리를 새긴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살면서 마음 쓰는 자리가 무엇인지를 열두 개로 간추린 일이었다. 천 년 전의 간추림인데 지금 읽어도 뺄 것이 없다.
물론 이 자리들을 읽는 눈에도 첫 편의 원칙이 그대로 선다. 자리는 판결문이 아니라 지도다. 재백궁이 어떻다고 재물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고, 처첩궁이 어떻다고 짝이 못 박히는 것이 아니다. 열두 자리는 삶의 열두 살림을 비춰 보는 창일 뿐, 그 살림의 결말을 적어 둔 장부가 아니다.
일과 재물과 짝과 몸이 한 뼘 얼굴에 다 들어 있다는 옛 지도를 오래 들여다본 날이 있다. 그날 든 생각은 뜻밖에 단순했다. 사는 데 마음 쓸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구나. 열두 개면 다 담기는구나. 무언가에 쫓기듯 바쁜 날이면, 그 열두 자리를 속으로 한 번 세어 보게 된다.
얼굴 위 열두 자리의 이름은 곧 삶의 목록이다. 자리는 장부가 아니라 창이다. 내 사주는 어느 살림이 두터울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 나이는 얼굴 위를 지나간다 (유년) → 이어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