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는 자리
기계 안에는 일곱 개의 눈이 있다. 만장일치부터 정답에 영 표까지, 그 스펙트럼을 실제 수치로 펼친다. 그리고 세 겹으로 갈리는 한 사주 앞에서 계산은 정직하게 멈춘다.
한눈에 기계 안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주를 익힌 일곱 개의 눈이 있다. 일곱이 한목소리를 낼 때가 있고, 규칙이 짚은 답에 한 표도 주지 않을 때가 있다. 이 투표는 정답을 정하지 않는다. 판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알려 줄 뿐이다. 그리고 세 겹으로 갈리는 사주 앞에서, 계산은 정직하게 멈춘다.
일곱 개의 눈
지금까지 두 개의 관점이 사주를 본다고 말해 왔다. 규칙을 한 자 한 자 밟는 눈과, 수많은 사주를 익혀 판의 모양으로 가늠하는 눈이다.
뒤의 눈은 사실 하나가 아니다. 일곱이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학습된 일곱 모델이 같은 사주를 각자 읽고, 각자 한 글자를 짚는다.
이름은 북두칠성에서 가져왔다. 탐랑, 거문, 녹존, 문곡, 염정, 무곡, 파군. 동아시아에서 오래도록 사람의 명을 관장한다고 여겨 온 일곱 별의 이름이다. 밤하늘의 수많은 별 가운데 이 일곱만이 국자 모양으로 이어져, 옛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의 저울이라 불렀다.
이름은 장난이지만 구조는 진지하다. 하나의 눈만 두면 그 눈이 흔들릴 때 답도 흔들린다. 일곱을 두면 흔들림이 보인다.
스펙트럼
앞의 편들에서 본 판정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 사주 | 규칙 | 일곱 눈 |
|---|---|---|
| 종혁격 (경진경신경진경진) | 금 | 금 7 |
| 가색격 (경오기미기미무진) | 금 | 금 7 |
| 염상격 (갑오병인정사무인) | 화 | 화 6, 다른 글자 1 |
| 종강격 (신묘병오을묘계미) | 목 | 목 3, 화 2, 토 1, 금 1 |
| 종아격 (무인경인계해무자) | 수 | 목 5, 토 1, 화 1 |
| 화기격 (무오계묘기사기축) | 화 | 목 6, 화 1 |
| 윤하격 (임자계유갑자기유) | 수 | 금 4, 목 3 |
맨 위는 완전한 합의다. 일곱이 하나도 빠짐없이 같은 글자를 짚었고, 규칙도 같은 곳에 섰다. 종혁격의 확률은 86.3%. 이 시리즈에서 만난 가장 단단한 답이다.
맨 아래는 완전한 어긋남이다. 규칙이 수를 짚었는데 일곱 눈 가운데 수를 짚은 것이 하나도 없다. 영 표다. 그들은 금과 목으로 갈려 섰다.
그 사이에 여러 층이 있다. 여섯 대 하나, 다섯 대 둘, 셋 둘 하나 하나로 흩어진 판.
투표는 답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를 하나 걷어 내야 한다.
일곱 눈이 목을 짚었다고 목이 정답인 것이 아니다. 다수결로 진리를 정하지 않는다. 명리는 표 대결로 정해지는 학문이 아니고, 기계의 일곱 모델도 진리의 배심원이 아니다.
투표의 쓸모는 다른 데 있다. 답의 두께를 재는 것이다.
일곱이 한목소리로 모이면, 규칙으로 따져도 사례로 보아도 같은 자리라는 뜻이다. 이런 답은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일곱이 흩어지면, 이 판은 원래 여러 갈래로 읽힐 수 있게 생겼다는 뜻이다. 그럴 때 기계가 내놓는 한 글자는 결론이 아니라 후보다.
그물은 물고기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다만 어디를 훑었고 무엇이 걸렸는지 알려 준다. 일곱 눈은 그물이다.
세 겹으로 갈리는 사주
마지막으로 한 사주를 편다. 이 사주는 세 겹으로 갈린다.
時 日 月 年
戊 丙 丁 庚
戌 戌 丑 申
↑ 일간 丙
1980년 1월, 겨울에 태어난 사람이다.
첫째 갈림. 2편에서 말한 그 약속이 여기서 돌아온다. 한 해의 시작을 어디로 볼 것인가. 이 사람은 동지와 입춘 사이에 태어났다. 입춘으로 세면 연주가 이렇게 서고, 동지로 세면 저렇게 선다. 기둥 하나가 통째로 바뀌면 세력이 바뀌고, 세력이 바뀌면 격이 바뀐다. 사주를 적기도 전에 이미 두 갈래다.
둘째 갈림. 그렇게 세운 판을 놓고 규칙은 화를 짚었다. 일곱 눈 가운데 여섯은 금을 짚었다. 규칙과 학습이 정면으로 갈라섰다.
셋째 갈림. 기계는 이 사주를 상관격으로, 그것도 요건을 다 채운 진격으로 판정했다. 그런데 이 명식을 오래 본 사람은 종아격으로 읽는다. 격 자체가 다르다.
세 겹이다. 연주를 세우는 약속에서 한 번, 규칙과 학습 사이에서 한 번, 기계와 사람 사이에서 한 번.
이 자리에서 멈춘다
이런 사주 앞에서 계산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은 무엇인가.
답을 하나 골라 내놓고 확신에 찬 얼굴을 하는 것이 아니다. 갈림을 그대로 펼쳐 놓는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갈립니다, 이 전제를 택하면 이 답이고 저 전제를 택하면 저 답입니다, 일곱 눈은 이렇게 나뉘었습니다, 하고.
그러면 답이 없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지도가 없는 것과 갈림길이 그려진 지도를 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갈림길이 표시된 지도를 받은 사람은 적어도 자기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갈림길 앞에서 한쪽을 고르는 일. 그것은 계산의 일이 아니다.
별을 보며
일곱 별의 이름을 모델에 붙일 때, 나는 그것이 그저 재미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갈림들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의 배치를 읽었지, 별에게 답을 받지는 않았다. 별은 답하지 않는다. 다만 거기 있다. 읽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일곱 개의 눈이 나에게 일곱 개의 답을 준다. 그 답들이 갈릴 때, 나는 계산이 실패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계산이 자기 자리까지 정확히 왔다고 느낀다.
여기까지가 기계의 자리다. 다음 편부터, 사람의 자리로 넘어간다.
한 줄 요약: 일곱 눈의 투표는 정답을 정하지 않고 답의 두께를 잰다. 세 겹으로 갈리는 사주 앞에서 계산은 갈림을 정직하게 펼치고 멈춘다. 고르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내 사주의 답은 얼마나 단단할까 → 첫 분석 보기
다음 편: 지도는 걷지 않는다. 명(命)은 계산되어도 걸음은 계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