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를 자리로 읽다, 함께 읽기
열두 단계는 좋고 나쁨의 등급이 아니라 한 바퀴를 도는 기세의 국면이다. 일간과 십성을 십이운성으로 읽는 법을 정리하고, 왕상휴수와 함께 강약을 보는 자리에 십이운성을 놓는다.
이 시리즈를 여는 자리에서, 좋은 단계와 나쁜 단계를 줄 세우는 버릇을 내려놓자고 했다. 열두 단계를 다 돌아본 지금, 그 말을 다시 새긴다. 십이운성은 길흉의 등급표가 아니라, 한 바퀴를 도는 기세의 국면을 읽는 도구다.
한 바퀴를 다시 펴 보면 결이 또렷해진다. 장생에서 갓 태어나, 목욕과 관대를 거치며 자라고, 건록과 제왕에서 한창때를 맞고, 쇠·병·사로 누그러지며, 묘·절에서 갈무리되고 비워졌다가, 태·양에서 다시 깃들어 길러진다. 차오르는 자리에는 차오르는 일이, 무르익는 자리에는 무르익는 일이, 비우는 자리에는 비우는 일이 있다. 어느 한 단계만 떼어 좋다 나쁘다 매기는 것은, 봄만 옳고 겨울은 그르다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같은 단계도 사주에 따라 달리 쓰인다. 신약한 사주에는 건록·제왕 같은 한창때의 기운이 약을 받쳐 주는 기둥이 되지만, 이미 강한 사주에 그 기운이 더해지면 넘쳐서 병이 된다. 반대로 사·묘·절처럼 가라앉고 갈무리하는 기운이, 너무 들뜬 사주에는 도리어 무게중심을 잡아 준다. 단계 자체에 점수가 매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주에 그 기운이 필요한가 아닌가가 빛을 가른다.
읽는 법은 두 갈래다. 하나는 일간을 보는 것이다. 일간이 어느 단계에 앉아 있느냐로 그 사람 기운의 결을 가늠한다. 한창때의 자리에 앉았는지, 무르익은 자리인지, 비워 가는 자리인지를 본다. 다른 하나는 십성을 보는 것이다. 재성·관성·인성 같은 십성이 어느 단계에 놓였느냐로, 그 십성이 힘 있게 펼쳐지는지 가만히 잠겨 있는지를 읽는다. 같은 재성이라도 제왕에 놓이면 활달히 드러나고, 묘에 놓이면 안으로 갈무리되는 식이다.
다만 십이운성은 강약을 보는 여러 잣대 가운데 하나일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자가 계절을 얻었는지를 보는 왕상휴수(旺相休囚)와, 같은 오행이 곁에 얼마나 모였는지, 합·충으로 그 자리가 흔들리는지를 함께 보아야 비로소 강약이 제대로 잡힌다. 십이운성만 떼어 일간이 사에 앉았으니 약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한 잣대에 너무 큰 무게를 지우는 일이다. 여러 잣대를 겹쳐 읽을 때 십이운성은 제 몫을 한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사람의 한평생에 좋은 나이와 나쁜 나이가 따로 없다. 차오를 때 차오르고, 익을 때 익고, 비울 때 비우는 것이 한 생의 결이다. 십이운성이 끝까지 가리키는 것이 그 자리다. 지금 내가 어느 단계에 서 있는지를 알면, 한창때에는 한창때의 일을, 갈무리할 때에는 갈무리의 일을 고를 수 있다. 어느 자리가 더 낫다 묻기보다, 지금 선 자리에 맞는 걸음을 찾는 것—한 바퀴를 자리로 읽는다는 것은 그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