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기며 흔들리는 때, 목욕(沐浴)
갓 태어난 기운이 한 번 씻기는 단계, 목욕. 미숙과 변동이 큰 이 자리를 따라가며, 흔들림을 불길로 읽는 대신 자라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다듬어짐의 국면으로 읽는다.
장생 다음 단계는 목욕(沐浴)이다. 갓 태어난 아기를 처음으로 씻기는 때다. 막 세상에 나온 기운이 한 번 물에 담겨 흔들리는 자리라 보면 된다.
목욕의 결은 변동과 흔들림이다. 갓난아기를 처음 씻길 때 그렇게 울어 대듯, 막 태어난 기운이 씻기는 동안에는 자리가 불안정하고 출렁인다. 그래서 목욕은 십이운성 가운데 변화가 크고 들뜨기 쉬운 단계로 읽혀 왔다. 한곳에 진득이 머물기보다 이리저리 움직이고, 새것에 쉽게 끌리며, 감정과 멋과 끼가 두드러지는 결이다.
옛 문헌은 목욕을 도화(桃花)와 연결 짓고, 패지(敗地)라 부르며 무겁게 다루기도 했다. 멋과 색을 탐하고 자리가 흔들린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기서 목욕을 음란이나 실패의 표로 읽으면, 이 단계의 결을 거꾸로 잡는 것이다. 끼와 매력, 감각의 예민함은 그 자체로 흠이 아니라 재능의 결이기도 하다. 예술과 표현, 사람을 끄는 일에서는 이 기운이 도리어 빛난다. 흔들림이 큰 만큼, 한곳에 굳지 않고 새로 움직일 힘도 크다.
무엇보다 목욕은 '씻는' 자리다. 씻는다는 것은 더러워지는 일이 아니라 깨끗해지는 일이다. 태어날 때 묻어 온 거친 것을 한 번 씻어 내야 다음으로 자랄 수 있다. 흔들림은 그 씻김에 따르는 출렁임이지, 망가짐이 아니다. 모난 돌이 물살에 씻겨 둥글어지듯, 목욕의 흔들림을 거치며 어린 기운은 한 겹 다듬어진다.
그러니 목욕이 사주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그 변동을 무엇으로 쓰는가에 달려 있다. 들뜸이 곁의 안정된 글자에 붙들리면 그 흔들림은 생기로 바뀌고, 끼와 감각이 펼칠 자리를 만나면 매력과 재능이 된다. 흔들리는 자리를 불안으로만 못 박지 않는 것이 목욕을 옳게 읽는 길이다.
여기서 지금을 본다.
자리가 흔들리고 마음이 자꾸 움직이는 때를, 우리는 무언가 잘못된 시기로 여긴다. 진득하지 못하다고, 들떠 있다고 스스로를 나무란다. 그러나 자라는 것은 한 번씩 흔들리며 큰다. 처음 씻길 때 우는 아기처럼, 새로 자라기 위해 거쳐야 할 출렁임이 있다. 목욕은 그 한 번의 씻김이다. 흔들림을 망가짐으로 읽는 대신, 모난 것을 씻어 다음으로 나아가는 자리로 본다면, 그 흔들리는 때에도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