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괘(乾卦)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다. 초구(初九):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 구이(九二):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 구삼(九三):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며 저녁까지 두려워하듯 하니,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으니, 무구하다. 구오(九五):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상구(上九):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니, 회(悔)가 있다. 용구(用九): 여러 용이 나타나되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이에 힘입어 비롯되니, 곧 하늘을 거느린다. 구름이 가고 비가 베풀어져 온갖 사물이 형체를 이룬다. 처음과 끝을 크게 밝히니 여섯 자리가 때에 맞추어 이루어진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건도(乾道)가 변화하여 각기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고, 대화(大和)(한편 태화(太和)로 되어 있다)를 보전하고 합하니, 이에 이(利)하고 정(貞)하다. 뭇 사물 위로 머리를 내미니 온 나라가 다 편안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의 운행이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쉬지 않는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陽)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덕의 베풂이 두루 미친다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도를 되풀이하여 행한다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나아가도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대인이 일어나 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悔)가 있다는 것은 가득 찬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용구(用九)는 하늘의 덕은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다. 형(亨)은 아름다움의 모임이다. 이(利)는 의(義)의 조화이다. 정(貞)은 일의 줄기이다. 군자는 인(仁)을 체득하여 사람을 기를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禮)에 합할 수 있으며,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에 조화될 수 있고, 곧고 굳건하여 일을 주관할 수 있다. 군자는 이 네 가지 덕을 행하는 자이므로 "건(乾)은 원(元)·형(亨)·이(利)·정(貞)이다"라고 한다. 초구(初九)에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孔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숨어 있는 자이다. 세상에 따라 바뀌지 않고, 이름을 이루려 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살아도 번민이 없고, 옳다고 인정받지 못해도 번민이 없다.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스러우면 떠나니, 확고하여 뽑을 수 없는 것이 잠긴 용이다."
구이(九二)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용의 덕을 지니고 바르게 중(中)에 있는 자이다. 평소의 말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을 삼가며, 사악함을 막아 그 정성을 보존하고, 세상을 선하게 하되 자랑하지 않으며, 덕이 넓어 [사람들을] 교화한다. 『역(易)』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임금의 덕이다." 구삼(九三)에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며 저녁까지 두려워하듯 하니,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덕을 증진하고 업을 닦는다. 충(忠)과 신(信)은 덕을 증진하는 방법이고, 말을 닦아 그 정성을 세우는 것은 업에 머무는 방법이다. 이를 곳을 알아 이르니 더불어 기미(幾微)를 말할 수 있고, 마칠 곳을 알아 마치니 더불어 의(義)를 보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윗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어 그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우나 허물이 없다."
구사(九四)에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으니 무구(无咎)하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으나 사악함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항상됨이 없으나 무리를 떠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덕을 증진하고 업을 닦는 것은 때에 미치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허물이 없다." 구오(九五)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젖은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가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성인이 일어나매 만물이 우러러본다. 하늘에 근본한 것은 위와 친하고 땅에 근본한 것은 아래와 친하니, 각기 그 부류를 따르는 것이다."
상구(上九)에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니 회(悔)가 있다"고 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공자가 말하였다. "귀하나 지위가 없고, 높으나 백성이 없으며, 현인이 아랫자리에 있으나 돕지 않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뉘우침이 있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때에 맞추어 머무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스스로 시험하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다스리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가 있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건원(乾元)이 구(九)를 쓴다"는 것은 천하가 다스려지는 것이다.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는 것은 양기(陽氣)가 잠겨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문명(文明)해지는 것이다.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다"는 것은 때와 더불어 함께 행하는 것이다. "혹 뛰어오르나 연못에 있다"는 것은 건도(乾道)가 이에 바뀌는 것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이에 하늘의 덕에 자리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이 오른 용이 회가 있다"는 것은 때와 더불어 함께 극에 이르는 것이다. "건원이 구를 쓴다"는 것은 이에 하늘의 법칙을 보이는 것이다. 건원(乾元)은 비롯하여 형통하는 것이다. 이정(利貞)은 성정(性情)이다. 건(乾)의 비롯함은 아름다운 이로움으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으나 이롭게 하는 바를 말하지 않으니, 위대하도다!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강건하고 중정(中正)하며 순수하고 정밀하다. 여섯 효(爻)가 발휘되어 두루 실정에 통한다. 때에 맞추어 여섯 용을 타고 하늘을 다스린다. 구름이 가고 비가 베풀어지니 천하가 평안하다.
군자는 덕을 이루는 것을 행실로 삼으니, 날마다 드러내 보일 수 있는 행실이다. 잠(潛)이라는 말은 숨어서 아직 드러나지 않고, 행하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니, 이 때문에 군자가 쓰지 않는다. 군자는 배워서 [지식을] 모으고, 물어서 분별하며, 너그러움으로 처하고, 인(仁)으로 행한다. 『역(易)』에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다"고 하였으니, 임금의 덕이다. 구삼(九三)은 강(剛)이 거듭되었으나 중(中)이 아니어서,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굳세고 굳세어 그때에 따라 두려워하니, 비록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는 강이 거듭되었으나 중이 아니어서, 위로는 하늘에 있지 않고 아래로는 밭에 있지 않으며 가운데로는 사람에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或)'이라 하였다. '혹'이라는 것은 의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무구하다. 무릇 대인(大人)은 천지와 그 덕을 합하고, 해와 달과 그 밝음을 합하며, 사계절과 그 차례를 합하고, 귀신과 그 길흉(吉凶)을 합한다. 하늘보다 앞서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고, 하늘보다 뒤에 하면 하늘의 때를 받든다. 하늘도 또한 어기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항(亢)이라는 말은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 모르며, 보존할 줄만 알고 망할 줄 모르며, 얻을 줄만 알고 잃을 줄 모르는 것이다. 오직 성인뿐이로다! 나아가고 물러나며 보존하고 망함을 알아 그 바름을 잃지 않는 자는 오직 성인뿐이로다!
{{ header2 |previous =乾 |next=屯 }} 곤괘(坤卦) 곤하곤상(坤下坤上) 곤(坤)은 원형(元亨)하니, 암말의 정(貞)함이 이롭다. 군자가 갈 바가 있으니, 앞서면 헤매고 뒤에 하면 주인을 얻는다. 서남쪽에서는 벗을 얻고 동북쪽에서는 벗을 잃음이 이롭다. 안정(安貞)하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 육이(六二): 곧고 반듯하고 크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육삼(六三): 빛남을 머금었으니 정(貞)할 수 있다. 혹 왕의 일에 종사하면 이룸은 없으나 마침은 있다.
육사(六四):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육오(六五): 누런 치마이니,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상육(上六): 용이 들판에서 싸우니, 그 피가 검고 누렇다. 용육(用六): 영원히 정(貞)함이 이롭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지극하도다, 곤원(坤元)이여! 만물이 이에 힘입어 생겨나니, 곧 순히 하늘을 받든다. 곤(坤)은 두터워 만물을 싣고, 덕이 끝없음에 합한다. 너그러움을 머금고 빛나며 커서 온갖 사물이 다 형통한다. 암말은 땅의 부류이니, 땅을 다님에 끝이 없고, 유순하고 이정(利貞)하다. 군자가 행하는 바는 앞서면 헤매어 길을 잃고, 뒤에 하면 순하여 떳떳함을 얻는다. 서남쪽에서 벗을 얻는 것은 곧 같은 부류와 함께 가는 것이고, 동북쪽에서 벗을 잃는 것은 곧 마침내 경사가 있는 것이다. 안정(安貞)의 길함은 땅의 끝없음에 응하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의 형세가 곤(坤)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덕을 두터이 하여 만물을 싣는다.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는 것은 음(陰)이 비로소 엉기는 것이다. 그 도를 순히 따라 이르게 하면 굳은 얼음에 이른다. 육이(六二)의 움직임은 곧고 반듯하다.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땅의 도가 빛나는 것이다. 빛남을 머금었으니 정(貞)할 수 있다는 것은 때에 맞추어 드러내는 것이다. 혹 왕의 일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혜가 빛나고 큰 것이다.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이 없다는 것은 삼가면 해롭지 않은 것이다. 누런 치마이니 크게 길하다는 것은 문채(文彩)가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용이 들판에서 싸운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한 것이다. 용육(用六)의 영원한 정(貞)은 크게 마치는 것이다.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곤(坤)은 지극히 유순하나 움직임은 굳세고, 지극히 고요하나 덕은 반듯하다. 뒤에 하면 주인을 얻어 떳떳함이 있고, 만물을 머금어 화육함이 빛난다. 곤의 도는 순하도다! 하늘을 받들어 때에 맞추어 행한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하고 자식이 그 아비를 시해하는 것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까닭이 아니니, 그 말미암아 온 것이 점진적이다. 분별해야 할 것을 일찍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易)』에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고 하였으니, 대개 [점차] 따라 이름을 말한 것이다. 직(直)은 그 바름이고, 방(方)은 그 의로움이다. 군자는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하고 의로움으로 밖을 반듯하게 하니, 공경과 의로움이 서면 덕이 외롭지 않다. "곧고 반듯하고 크니, 익히지 않아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그 행하는 바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음(陰)은 비록 아름다움이 있으나 그것을 머금는다. 그로써 왕의 일에 종사하되 감히 이룸을 자처하지 않는다. 이는 땅의 도이고, 아내의 도이며, 신하의 도이다. 땅의 도는 이룸을 자처하지 않으나 [하늘을] 대신하여 마침이 있다. 천지가 변화하면 초목이 번성하고, 천지가 닫히면 현인이 숨는다. 『역』에 "주머니를 묶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고 하였으니, 대개 삼감을 말한 것이다. 군자는 누런 빛이 속에 있어 이치에 통하고, 바른 자리에 몸을 두니, 아름다움이 그 속에 있어 사지(四肢)에 펼쳐지고 사업에 드러나니, 아름다움의 지극함이다. 음이 양(陽)과 견줄 만큼 성하면 반드시 싸우니, 양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용이라 일컬었다. 오히려 아직 그 부류를 떠나지 않았으므로 피라 일컬었다. 무릇 검고 누런 것은 하늘과 땅이 섞인 것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둔괘(屯卦)는 원형(元亨)하니 정(貞)함이 이롭다. 갈 바를 두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초구(初九): 머뭇거리니, 정(貞)에 머묾이 이롭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육이(六二): 어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탔다가 내려서 서성이니,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는 자이다. 여자가 정(貞)하여 [혼약을] 허락하지 않다가 십 년 만에야 허락한다. 육삼(六三): 사슴을 쫓는데 우인(虞人)이 없어 다만 숲 속으로 들어가니, 군자가 기미를 보아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가면 인색하다[린(吝)]. 육사(六四): 말을 탔다가 내려서 서성이니, 혼인을 구하여 가면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구오(九五): 그 은택을 베풀기 어려우니, 작게 정(貞)하면 길하고 크게 정하면 흉(凶)하다.
상육(上六): 말을 탔다가 내려서 서성이며, 피눈물을 줄줄 흘린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둔(屯)은 강(剛)과 유(柔)가 비로소 사귀어 어려움이 생기고, 험한 가운데에서 움직이니, 크게 형통하고 정(貞)하다. 우레와 비의 움직임이 가득 차니, 하늘이 만물을 지어냄이 어지럽고 어두운 때이므로, 제후를 세우는 것이 마땅하되 편안히 여겨서는 안 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구름과 우레가 둔(屯)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천하를] 경륜(經綸)한다. 비록 머뭇거리나 뜻은 바름을 행하는 데 있다. 귀한 신분으로 천한 이에게 낮추니 크게 백성을 얻는다. 육이(六二)의 어려움은 강(剛)을 탔기 때문이다. 십 년 만에야 허락한다는 것은 떳떳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사슴을 쫓는데 우인이 없다는 것은 짐승을 좇기 때문이다. 군자가 그만두는 것은 가면 인색하고 궁하기 때문이다. 구하여 간다는 것은 밝은 것이다. 그 은택을 베풀기 어렵다는 것은 베풂이 아직 빛나지 못한 것이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몽괘(蒙卦)는 형(亨)하다. 내가 어린 몽매한 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린 몽매한 이가 나를 찾는다. 처음 점치면 알려 주고, 두세 번 하면 모독하는 것이니, 모독하면 알려 주지 않는다. 정(貞)함이 이롭다. 초육(初六): 몽매함을 일깨우니, 사람에게 형벌을 씀이 이롭고, 차꼬와 수갑을 벗겨 주는 데 쓴다. 그대로 가면 인색하다[린(吝)]. 구이(九二): 몽매한 이를 포용하니 길(吉)하고, 아내를 맞아들이니 길하며, 자식이 집안을 잘 다스린다. 육삼(六三): 여자를 취하지 말라. 돈 많은 사내를 보면 제 몸을 지키지 못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육사(六四): 몽매함에 갇히니 인색하다. 육오(六五): 어린 몽매함이니 길하다. 상구(上九): 몽매함을 치니, 도적이 됨은 이롭지 않고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몽(蒙)은 산 아래에 험함이 있고, 험하여 그치니 몽이다. 몽이 형통한 것은 형통함으로 행하니 때에 맞게 중(中)을 얻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몽매한 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린 몽매한 이가 나를 찾는다는 것은 뜻이 서로 응하는 것이다. 처음 점치면 알려 준다는 것은 강(剛)으로 중에 있기 때문이다. 두세 번 하면 모독하는 것이니 모독하면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은 몽매함을 모독하기 때문이다. 몽매할 때 바름을 기르는 것이 성인의 공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서 샘이 솟아나는 것이 몽(蒙)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행실을 과감히 하고 덕을 기른다. 사람에게 형벌을 씀이 이롭다는 것은 법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자식이 집안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강(剛)과 유(柔)가 접하기 때문이다. 여자를 취하지 말라는 것은 행실이 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몽매함에 갇혀 인색한 것은 홀로 실(實)에서 멀기 때문이다. 어린 몽매함이 길한 것은 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도적을 막음이 이롭다는 것은 위아래가 순하기 때문이다.
수괘(需卦)는 믿음[부(孚)]이 있어 빛나고 형통하며, 정(貞)하면 길(吉)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초구(初九): 교외에서 기다리니, 항상됨을 씀이 이로우며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모래밭에서 기다리니, 약간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하다. 구삼(九三): 진흙에서 기다리니, 도적이 이르게 한다. 육사(六四): 피에서 기다리니, 구멍에서 나온다. 구오(九五): 술과 음식으로 기다리니, 정(貞)하면 길하다. 상육(上六): 구멍에 들어가니, 청하지 않은 손님 세 사람이 오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수(需)는 기다림이니 험함이 앞에 있다. 강건하여 빠지지 않으니 그 뜻이 곤궁하지 않다. 수는 믿음이 있어 빛나고 형통하며 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하늘의 자리에 자리하여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가면 공이 있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구름이 하늘 위에 오르는 것이 수(需)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시고 먹으며 잔치하고 즐긴다. 교외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지 않는 것이다. 항상됨을 씀이 이로우며 무구하다는 것은 떳떳함을 잃지 않은 것이다. 모래밭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너그러움이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비록 약간 말이 있으나 길함으로 마친다. 진흙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재앙이 밖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 도적을 이르게 하였으나 공경하고 삼가면 패하지 않는다. 피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순하여 [명을] 듣는 것이다. 술과 음식으로 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청하지 않은 손님이 오니 공경하면 마침내 길하다는 것은,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크게 잃지는 않은 것이다.
송괘(訟卦)는 믿음[부(孚)]이 있으나 막히니, 두려워하여 중도에 그치면 길(吉)하고 끝까지 가면 흉(凶)하다. 대인(大人)을 만나봄이 이롭고, 큰 내를 건넘은 이롭지 않다. 초육(初六): 송사하는 일을 오래 끌지 않으니, 약간 말이 있으나 마침내 길하다. 구이(九二): 송사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달아나니, 그 고을 사람 삼백 호가 재앙이 없다. 육삼(六三): 옛 덕[녹(祿)]을 먹으니, 정(貞)하면 위태로우나 마침내 길하다. 혹 왕의 일에 종사하면 이룸이 없다. 구사(九四): 송사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명(命)에 나아가 [마음을] 바꾸니, 안정(安貞)하면 길하다. 구오(九五): 송사함이니,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상구(上九): 혹 가죽 띠를 하사받더라도 하루아침에 세 번 빼앗긴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송(訟)은 위는 강(剛)하고 아래는 험하니, 험하면서 굳세어 송이다. 송은 믿음이 있으나 막히니 두려워하여 중도에 그치면 길하다는 것은 강이 와서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끝까지 가면 흉하다는 것은 송사는 끝까지 이루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중정(中正)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연못에 빠지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가는 것이 송(訟)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일을 할 때 처음을 도모한다. 송사하는 일을 오래 끌지 않는다는 것은 송사는 오래 끌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록 약간 말이 있으나 그 분변이 밝다. 송사를 이기지 못하고 돌아와 달아난다는 것은 달아나 숨는 것이다. 아래에서 위를 송사하니 근심이 이르는 것이 주워 담듯 [쉽다]. 옛 덕을 먹는다는 것은 위를 따르면 길하다는 것이다. 돌아와 명에 나아가 바꾸어 안정하다는 것은 잃지 않는 것이다. 송사함이 크게 길하다는 것은 중정하기 때문이다. 송사로 관복을 받으니 또한 공경할 만하지 못하다.
사괘(師卦)는 정(貞)하니, 장인(丈人)이면 길(吉)하고 무구(无咎)하다. 초육(初六): 군대가 나감에 규율로써 하니, 규율이 좋지 않으면 흉(凶)하다. 구이(九二): 군대 가운데 있으니 길하고 무구하다. 왕이 세 번 명을 내린다. 육삼(六三): 군대가 혹 시체를 수레에 싣고 오니 흉하다. 육사(六四): 군대가 물러나 머무니 무구하다. 육오(六五): 밭에 짐승이 있으니, 말을 받들어 [죄를] 성토함이 이로우며 무구하다. 장자(長子)가 군대를 거느려야 하니, 제자(弟子)가 [거느리면] 시체를 수레에 싣고 오니, 정(貞)하여도 흉하다. 상육(上六): 대군(大君)이 명을 내려 나라를 열고 가문을 잇게 하니, 소인은 쓰지 말라.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사(師)는 무리이다. 정(貞)은 바름이다. 무리를 바르게 할 수 있으면 왕 노릇할 수 있다. 강(剛)이 중(中)에 있어 응하고, 험한 것을 행하되 순하니, 이로써 천하를 수고롭게 하여도 백성이 따르니, 길한데 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 가운데 물이 있는 것이 사(師)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포용하고 무리를 기른다. 군대가 나감에 규율로써 해야 하니, 규율을 잃으면 흉하다. 군대 가운데 있어 길하다는 것은 하늘의 총애를 받은 것이다. 왕이 세 번 명을 내린다는 것은 만방을 품는 것이다. 군대가 혹 시체를 수레에 싣고 온다는 것은 크게 공이 없는 것이다. 물러나 머무니 무구하다는 것은 떳떳함을 잃지 않은 것이다. 장자가 군대를 거느린다는 것은 중도(中道)로 행하기 때문이다. 제자가 시체를 수레에 싣고 온다는 것은 부림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군이 명을 내린다는 것은 공을 바르게 하기 위함이다. 소인을 쓰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비괘(比卦)는 길(吉)하다. 근원을 헤아려 점쳐 보아 원(元)하고 영(永)하며 정(貞)하면 무구(无咎)하다. 편안하지 못한 자들이 바야흐로 오니, 뒤늦게 오는 자는 흉(凶)하다. 초육(初六): 믿음[부(孚)]이 있어 친하니 무구하다. 믿음이 질그릇에 가득 차면 마침내 다른 [길함이] 와서 길하다. 육이(六二): 안으로부터 친하니 정(貞)하여 길하다. 육삼(六三): 친하는 대상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육사(六四): 밖으로 친하니 정하여 길하다. 구오(九五): 드러나게 친한다. 왕이 세 방향으로 몰아 앞으로 달아나는 짐승은 놓아주니, 고을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아 길하다. 상육(上六): 친함에 머리가 없으니 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비(比)는 길하다. 비는 돕는 것이니 아래가 순하게 따르는 것이다. 근원을 헤아려 점쳐 보아 원하고 영하며 정하면 무구하다는 것은 강(剛)으로 중(中)에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지 못한 자들이 바야흐로 온다는 것은 위아래가 응하는 것이다. 뒤늦게 오는 자가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 위에 물이 있는 것이 비(比)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만국을 세우고 제후와 친하였다. 비괘의 초육은 다른 [길함이] 있어 길하다. 안으로부터 친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잃지 않는 것이다. 바른 사람이 아닌 자와 친하니 또한 상하지 않겠는가! 밖으로 어진 이와 친하는 것은 위를 따르기 때문이다. 드러나게 친하여 길한 것은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거스르는 것은 버리고 순한 것은 취하니 앞으로 달아나는 짐승을 놓아준다. 고을 사람들이 경계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부림이 중도에 맞기 때문이다. 친함에 머리가 없으니 마칠 곳이 없다.
소축괘(小畜卦)는 형(亨)하다. 빽빽한 구름이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으니, 우리 서쪽 교외로부터 [일어난다]. 초구(初九): 돌아옴이 제 길로부터 하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길(吉)하다. 구이(九二): 이끌려 돌아오니 길하다. 구삼(九三): 수레의 바퀴살[복(輹)]이 빠지니 부부가 반목한다. 육사(六四): 믿음[부(孚)]이 있으니 피가 사라지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믿음이 있어 서로 이끌어 매이니, 부유함을 그 이웃과 함께한다. 상구(上九): 이미 비가 오고 이미 그치니 덕을 숭상하여 가득 싣는다. 부인은 정(貞)하여도 위태롭다. 달이 거의 보름이니 군자가 나아가면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소축(小畜)은 유(柔)가 자리를 얻고 위아래가 그에 응하니 소축이라 한다. 굳세고 겸손하며 강(剛)이 중(中)에 있어 뜻이 행해지니 이에 형통하다. 빽빽한 구름이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기운이] 여전히 위로 가기 때문이다. 우리 서쪽 교외로부터라는 것은 베풂이 아직 행해지지 않은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하늘 위로 가는 것이 소축(小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한다. 돌아옴이 제 길로부터 한다는 것은 그 뜻이 길하다는 것이다. 이끌려 돌아오되 중(中)에 있으니 또한 스스로를 잃지 않는다. 부부가 반목한다는 것은 집안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어 두려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위와 뜻을 합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어 서로 이끌어 매인다는 것은 홀로 부유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비가 오고 이미 그친다는 것은 덕이 쌓여 가득 실린 것이다. 군자가 나아가면 흉하다는 것은 의심스러운 바가 있기 때문이다.
범의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亨)하다. 초구(初九): 소박하게 밟아 나가니, 가면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밟는 길이 평탄하니, 숨어 사는 이가 정(貞)하면 길(吉)하다. 육삼(六三): 애꾸눈이 볼 수 있다 하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다 하여 범의 꼬리를 밟으니, 사람을 물어 흉(凶)하다. 무인(武人)이 대군(大君) 노릇을 한다. 구사(九四): 범의 꼬리를 밟으나 두려워하고 조심하니 마침내 길하다. 구오(九五): 결단하여 밟으니, 정하여도 위태롭다. 상구(上九): 밟아 온 것을 보고 상서로움을 살피니, 두루 돌아보면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이(履)는 유(柔)가 강(剛)을 밟는 것이다. 기뻐하며 건(乾)에 응하니, 이 때문에 범의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아 형통하고 정함이 이롭다. 강이 중정(中正)하여 제왕의 자리를 밟되 흠이 없으니 광명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위는 하늘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이(履)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위아래를 분별하고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다. 소박하게 밟아 나간다는 것은 홀로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숨어 사는 이가 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중(中)에 있어 스스로 어지럽히지 않기 때문이다. 애꾸눈이 볼 수 있다 함은 밝게 보기에 부족한 것이다.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다 함은 함께 가기에 부족한 것이다. 사람을 무는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인이 대군 노릇을 한다는 것은 뜻만 굳센 것이다. 두려워하고 조심하니 마침내 길하다는 것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결단하여 밟으니 정하여도 위태롭다는 것은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으니 크게 경사가 있다.
태괘(泰卦)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吉)하고 형(亨)하다. 초구(初九): 띠풀을 뽑으면 뿌리가 그 무리와 함께 딸려 나오니, 나아가면 길하다. 구이(九二): 거친 것을 포용하고, 맨몸으로 황하를 건너는 [용기를] 쓰며, 먼 것을 버리지 않고, 붕당을 없애니, 중도(中道)를 행함에 짝할 수 있다. 구삼(九三): 평평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것은 없으며,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어렵게 여기고 정(貞)하면 무구(无咎)하다.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말라, 먹는 데에 복이 있다. 육사(六四): 훨훨 [내려오니], 부유하지 않으면서도 그 이웃과 함께하며, 경계하지 않고도 믿는다. 육오(六五):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니, 이로써 복을 받고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상육(上六): 성이 무너져 해자로 돌아가니, 군대를 쓰지 말고, 자기 고을로부터 명을 알리니, 정(貞)하여도 인색하다[린(吝)].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태(泰)는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고 형통하다. 이는 천지가 사귀어 만물이 통하고, 위아래가 사귀어 그 뜻이 같은 것이다. 안은 양(陽)이고 밖은 음(陰)이며, 안은 굳세고 밖은 순하며, 안은 군자이고 밖은 소인이니,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사라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천지가 사귀는 것이 태(泰)이니, 임금[후(后)]은 이를 본받아 천지의 도를 마름질하여 이루고, 천지의 마땅함을 도와서 백성을 좌우한다. 띠풀을 뽑으니 나아가면 길하다는 것은 뜻이 밖에 있는 것이다. 거친 것을 포용하여 중도를 행함에 짝할 수 있다는 것은 빛나고 크기 때문이다. 가기만 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은 천지가 맞닿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훨훨 [내려오니] 부유하지 않다는 것은 모두 실(實)을 잃었기 때문이다. 경계하지 않고도 믿는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복을 받고 크게 길하다는 것은 중(中)으로 원하는 바를 행하기 때문이다. 성이 무너져 해자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 명이 어지러운 것이다.
비(否)는 사람의 도가 아니니, 군자의 정(貞)함에 이롭지 않고,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초육(初六): 띠풀을 뽑으면 뿌리가 그 무리와 함께 딸려 나오니, 정(貞)하면 길(吉)하고 형(亨)하다. 육이(六二): 포용하여 받드니, 소인은 길하고 대인(大人)은 비색(否塞)하나 형통하다. 육삼(六三): 부끄러움을 품는다. 구사(九四): 명이 있으니 무구(无咎)하며, 무리가 복에 붙는다. 구오(九五): 비색함을 그치게 하니 대인이 길하다. "망할까, 망할까" 하고 [경계하여] 뽕나무 뿌리에 매어 둔다. 상구(上九): 비색함을 기울여 뒤엎으니, 먼저는 비색하고 뒤에는 기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비는 사람의 도가 아니니 군자의 정함에 이롭지 않고,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온다. 이는 천지가 사귀지 않아 만물이 통하지 않고, 위아래가 사귀지 않아 천하에 나라가 없는 것이다. 안은 음(陰)이고 밖은 양(陽)이며, 안은 유순하고 밖은 강하며, 안은 소인이고 밖은 군자이니, 소인의 도는 자라고 군자의 도는 사라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천지가 사귀지 않는 것이 비(否)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덕을 검소히 하여 어려움을 피하고, 녹(祿)으로 영화롭게 해서는 안 된다. 띠풀을 뽑으니 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뜻이 임금에게 있는 것이다. 대인은 비색하나 형통하다는 것은 무리를 어지럽히지 않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품는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이 있으니 무구하다는 것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 대인이 길하다는 것은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다. 비색함이 끝나면 기울어지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동인괘(同人卦)는 들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형(亨)하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고, 군자의 정(貞)함이 이롭다. 초구(初九): 문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무구(無咎)하다. 육이(六二): 종족 안에서만 사람들과 함께하니 인색하다[린(吝)]. 구삼(九三): 군사를 수풀에 숨기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나, 삼 년 동안 일으키지 못한다. 구사(九四): 그 담에 올라가나 공격하지 못하니 길(吉)하다. 구오(九五): 사람들과 함께하되 먼저는 울부짖고 뒤에는 웃는다. 큰 군대로 이겨야 서로 만난다. 상구(上九): 교외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회(悔)가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동인(同人)은 유(柔)가 자리를 얻고 중(中)을 얻어 건(乾)에 응하니 동인이라 한다. 동인괘에 "들판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형통하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고 한 것은 건(乾)의 행함이다. 문명(文明)하면서 굳세고, 중정(中正)하여 응하니, 군자의 바름이다. 오직 군자만이 천하의 뜻을 통할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과 불이 동인(同人)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족속을 분류하고 사물을 분별한다. 문을 나서 사람들과 함께하니 또 누가 허물하겠는가. 종족 안에서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은 인색한 도이다. 군사를 수풀에 숨긴다는 것은 적이 강하기 때문이다. 삼 년 동안 일으키지 못하니 어찌 행하겠는가. 그 담에 오른다는 것은 의리상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이 길한 것은 곤궁하여 법칙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되 먼저 [울부짖는] 것은 중(中)하고 곧기 때문이다. 큰 군대로 서로 만난다는 것은 서로 이긴다는 것을 말한다. 교외에서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은 뜻을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대유괘(大有卦)는 원형(元亨)하다. 초구(初九): 해로운 것과 사귐이 없으니 허물이 아니다. 어렵게 여기면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큰 수레로 실으니, 갈 바가 있어 무구하다. 구삼(九三): 공(公)이 천자에게 향연을 올리니[형(亨)], 소인은 감당하지 못한다. 구사(九四): 그 성대함[방(尫)]을 자처하지 않으니 무구하다. 육오(六五): 그 믿음[부(孚)]으로 사귀고 위엄이 있으니 길(吉)하다. 상구(上九):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대유(大有)는 유(柔)가 존귀한 자리를 얻고, 크게 중(中)에 있어 위아래가 응하니 대유라 한다. 그 덕이 강건하고 문명(文明)하며,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추어 행하니,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大有)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악을 막고 선을 드러내며,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 대유괘의 초구는 해로운 것과 사귐이 없다. 큰 수레로 싣는다는 것은 가운데에 쌓아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공이 천자에게 향연을 올린다는 것은 소인이면 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 성대함을 자처하지 않으니 무구하다는 것은 밝게 분별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믿음으로 사귄다는 것은 믿음으로 뜻을 일으키는 것이다. 위엄이 있어 길한 것은 쉽게 대하여 [아랫사람이] 대비함이 없기 때문이다. 대유괘의 상효(上爻)가 길한 것은 하늘로부터 돕기 때문이다.
겸괘(謙卦)는 형(亨)하니, 군자가 마침이 있다. 초육(初六):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이니, 큰 내를 건너도 길(吉)하다. 육이(六二): 겸손함이 [밖으로] 울려 알려지니, 정(貞)하여 길하다. 구삼(九三):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이니, 마침이 있어 길하다. 육사(六四):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겸손함을 펼친다. 육오(六五): 부유하지 않으면서도 그 이웃과 함께하니, 침공하고 정벌함이 이로워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육(上六): 겸손함이 울려 알려지니, 군대를 움직여 읍국(邑國)을 정벌함이 이롭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겸(謙)은 형통하니, 하늘의 도는 아래로 내려와 구제하여 광명하고, 땅의 도는 낮으면서 위로 올라간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뜨리고 겸손한 것에 보태며,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변하게 하고 겸손한 곳으로 흐르게 하며,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겸손함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 빛나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넘을 수 없으니, 군자의 마침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 가운데 산이 있는 것이 겸(謙)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많은 것을 덜어 적은 것에 보태고, 사물을 저울질하여 고르게 베푼다. 겸손하고 겸손한 군자는 낮춤으로써 스스로를 기른다. 겸손함이 울려 알려져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공로가 있으면서도 겸손한 군자는 만백성이 복종한다.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겸손함을 펼친다는 것은 법칙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침공하고 정벌함이 이롭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자를 정벌하는 것이다. 겸손함이 울려 알려진다는 것은 뜻을 아직 얻지 못한 것이다. 군대를 움직여 읍국을 정벌할 수 있다.
예괘(豫卦)는 제후를 세우고 군대를 움직임이 이롭다. 초육(初六): 즐거움을 울려 드러내니 흉(凶)하다. 육이(六二): 절개가 돌처럼 굳으니, 하루를 마치지 않고 [기미를 알아차리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육삼(六三): 위를 쳐다보며 즐거워하니 회(悔)가 있다. 머뭇거리면 회가 있다. 구사(九四): 즐거움이 [나로] 말미암으니 크게 얻음이 있다. 의심하지 말라. 벗들이 비녀처럼 모여든다. 육오(六五): 정(貞)하나 병이 있으니, 오래도록 죽지 않는다. 상육(上六): 즐거움에 어두우나, 이루어진 뒤에라도 바꿈이 있으면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예(豫)는 강(剛)이 응하여 뜻이 행해지고, 순함으로써 움직이니 예이다. 예는 순함으로써 움직이므로 천지도 이와 같이 하는데,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군대를 움직이는 일이겠는가? 천지가 순함으로써 움직이므로 해와 달이 지나치지 않고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으며, 성인이 순함으로써 움직이면 형벌이 맑아져 백성이 복종한다. 예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가 땅에서 나와 떨치는 것이 예(豫)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음악을 짓고 덕을 높여, 성대히 상제(上帝)에게 올리고 조상을 배향하였다. 초육이 즐거움을 울려 드러낸다는 것은 뜻이 궁하여 흉한 것이다. 하루를 마치지 않고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위를 쳐다보며 즐거워하여 회가 있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즐거움이 [나로] 말미암아 크게 얻음이 있다는 것은 뜻이 크게 행해지는 것이다. 육오가 정하나 병이 있다는 것은 강을 탔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죽지 않는다는 것은 중(中)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즐거움에 어두운 것이 위에 있으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수괘(隨卦)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니 무구(无咎)하다. 초구(初九): 주관함에 변함이 있으니 정(貞)하면 길(吉)하다. 문을 나가 사귀면 공이 있다. 육이(六二): 소자(小子)에게 매이면 장부(丈夫)를 잃는다. 육삼(六三): 장부에게 매이면 소자를 잃는다. 따르면 구하는 것을 얻으니, 정(貞)에 머묾이 이롭다. 구사(九四): 따라서 얻음이 있으나 정하여도 흉(凶)하다. 믿음[부(孚)]이 있어 도에 있고 밝음으로써 하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구오(九五): 아름다운 것에 믿음을 두니 길하다. 상육(上六): 붙잡아 매고 이에 따라 동여맨다. 왕이 서산(西山)에서 제향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수(隨)는 강(剛)이 와서 유(柔)의 아래에 처하고, 움직여 기뻐하니 수이다. 크게 형통하고 정(貞)하여 무구하니, 천하가 때를 따른다. 때를 따르는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가운데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어두워지면 들어가 편히 쉰다. 주관함에 변함이 있다는 것은 바름을 따르면 길하다는 것이다. 문을 나가 사귀면 공이 있다는 것은 잃지 않는 것이다. 소자에게 매인다는 것은 [둘을] 겸하여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장부에게 매인다는 것은 뜻이 아래를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얻음이 있다는 것은 그 뜻이 흉한 것이다. 믿음이 있어 도에 있다는 것은 밝음의 공이다. 아름다운 것에 믿음을 두어 길하다는 것은 자리가 정중(正中)하기 때문이다. 붙잡아 맨다는 것은 위에서 궁한 것이다.
고괘(蠱卦)는 원형(元亨)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갑(甲)에 앞서 사흘, 갑에 뒤서 사흘이다. 초육(初六): 아버지의 일[고(蠱)]을 바로잡으니, 아들이 있으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허물이 없다. 위태로우나 마침내 길(吉)하다. 구이(九二): 어머니의 일을 바로잡으니, 지나치게 곧게[정(貞)] 할 수는 없다. 구삼(九三):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으니, 약간 회(悔)가 있으나 큰 허물은 없다. 육사(六四): 아버지의 일을 너그러이 두니, 가면 인색함[린(吝)]을 본다. 육오(六五):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으니, 명예를 얻는다. 상구(上九): 왕후(王侯)를 섬기지 않고 그 일을 고상하게 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고(蠱)는 강(剛)이 위에 있고 유(柔)가 아래에 있으며, 겸손하고 그치니 고이다. 고는 원형하니 천하가 다스려진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가면 일이 있는 것이다. 갑에 앞서 사흘, 갑에 뒤서 사흘이라는 것은 마치면 다시 시작함이 있으니 하늘의 운행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것이 고(蠱)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기른다.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뜻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잇는 것이다. 어머니의 일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중도(中道)를 얻은 것이다.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마침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을 너그러이 둔다는 것은 가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일을 바로잡아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덕으로써 잇는 것이다. 왕후를 섬기지 않는다는 것은 그 뜻이 본받을 만한 것이다.
임괘(臨卦)는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다. 8월에 이르면 흉(凶)함이 있다. 초구(初九): 감응하여 임하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구이(九二): 감응하여 임하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육삼(六三): 달콤하게 임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이미 그것을 근심하면 무구(无咎)하다. 육사(六四): 지극히 임하니 무구하다. 육오(六五): 지혜로 임하니, 대군(大君)의 마땅함이라 길하다. 상육(上六): 도탑게 임하니 길하고 무구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임(臨)은 강(剛)이 차츰 자라나는 것이다. 기뻐하고 순하며, 강이 중(中)에 있어 응하니, 크게 형통하되 바름으로써 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8월에 이르면 흉함이 있다는 것은 사라짐이 오래지 않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위에 땅이 있는 것이 임(臨)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가르치고 생각함이 다함이 없고, 백성을 포용하고 보호함이 끝이 없다. 감응하여 임하여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뜻이 바름을 행하는 것이다. 감응하여 임하여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아직 명(命)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달콤하게 임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그것을 근심하면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다. 지극히 임하여 무구하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대군의 마땅함이라는 것은 중도(中道)를 행함을 이른다. 도탑게 임하여 길하다는 것은 뜻이 안에 있는 것이다.
관괘(觀卦)는 손을 씻고 아직 제물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믿음[부(孚)]이 있어 우러러본다. 초육(初六): 어린아이처럼 보니, 소인은 무구(无咎)하나 군자는 인색하다[린(吝)]. 육이(六二): 엿보니, 여자의 정(貞)함에 이롭다. 육삼(六三): 나의 삶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 육사(六四): 나라의 빛을 보니, 왕에게 손님이 됨이 이롭다. 구오(九五): 나의 삶을 보니, 군자라면 무구하다. 상구(上九): 그의 삶을 보니, 군자라면 무구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크게 보이는 것이 위에 있고, 순하고 겸손하며, 중정(中正)으로 천하에 보인다. 관(觀)은 손을 씻고 아직 제물을 올리지 않았을 때처럼 하면 믿음이 있어 우러러본다는 것은 아래가 보고 교화되는 것이다. 하늘의 신묘한 도를 보면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으니, 성인이 신묘한 도로 가르침을 베풀어 천하가 복종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땅 위로 가는 것이 관(觀)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사방을 살피고 백성을 보아 가르침을 베풀었다. 초육이 어린아이처럼 본다는 것은 소인의 도이다. 엿보니 여자의 정함이라는 것은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삶을 보아 나아가고 물러난다는 것은 아직 도를 잃지 않은 것이다. 나라의 빛을 본다는 것은 손님 됨을 숭상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본다는 것은 백성을 보는 것이다. 그의 삶을 본다는 것은 뜻이 아직 평안하지 못한 것이다.
서합괘(噬嗑卦)는 형(亨)하니, 옥사(獄事)를 씀이 이롭다. 초구(初九): 차꼬를 신겨 발꿈치를 없애니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살갗을 씹다가 코를 없애니 무구하다. 육삼(六三): 말린 고기를 씹다가 독을 만나니, 약간 인색하나[린(吝)] 무구하다. 구사(九四): 뼈 붙은 마른 고기를 씹다가 쇠 화살을 얻으니, 어렵게 여기고 정(貞)함이 이로우니 길(吉)하다. 육오(六五): 마른 고기를 씹다가 황금을 얻으니, 정하여도 위태로우나 무구하다. 상구(上九): 칼을 씌워 귀를 없애니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턱 가운데 물건이 있는 것을 서합(噬嗑)이라 하니, 씹어서 합하면 형통하다. 강(剛)과 유(柔)가 나뉘고, 움직이며 밝고, 우레와 번개가 합하여 빛난다. 유가 중(中)을 얻어 위로 올라가니,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옥사를 씀이 이롭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와 번개가 서합(噬嗑)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형벌을 밝히고 법령을 바로잡았다. 차꼬를 신겨 발꿈치를 없앤다는 것은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살갗을 씹다가 코를 없앤다는 것은 강을 탔기 때문이다. 독을 만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렵게 여기고 정함이 이로우니 길하다는 것은 아직 빛나지 못한 것이다. 정하여도 위태로우나 무구하다는 것은 마땅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칼을 씌워 귀를 없앤다는 것은 귀 밝음이 밝지 못한 것이다.
비괘(賁卦)는 형(亨)하니, 가는 바가 있음이 조금 이롭다. 초구(初九): 그 발을 꾸미니,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 육이(六二): 그 수염을 꾸민다. 구삼(九三): 꾸민 듯 윤택한 듯하니, 영원히 정(貞)하면 길(吉)하다. 육사(六四): 꾸민 듯 흰 듯하니, 흰 말이 나는 듯하다.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는 자이다. 육오(六五): 언덕과 동산을 꾸미니, 묶은 비단이 보잘것없어 인색하나[린(吝)] 마침내 길하다. 상구(上九): 희게 꾸미니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비(賁)가 형통한 것은 유(柔)가 와서 강(剛)을 꾸미므로 형통한 것이다. 강을 나누어 위로 올려 유를 꾸미므로 가는 바가 있음이 조금 이롭다. 강과 유가 섞이는 것은 하늘의 무늬[천문(天文)]이고, 문명하여 그치는 것은 사람의 무늬[인문(人文)]이다. 천문을 보아 때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을 보아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 불이 있는 것이 비(賁)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여러 정사를 밝히되 감히 옥사를 [함부로] 결단하지 않는다. 수레를 버리고 걸어간다는 것은 의리상 타지 않는 것이다. 그 수염을 꾸민다는 것은 위와 더불어 일어나는 것이다. 영원히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끝내 아무도 그를 업신여기지 못하는 것이다. 육사는 자리가 마땅하나 의심하는 것이다.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는 자라는 것은 끝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육오의 길함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희게 꾸미니 무구하다는 것은 위에서 뜻을 얻은 것이다.
박괘(剝卦)는 이롭지 않다. 가는 바가 있다. 초육(初六): 평상을 깎되 다리부터 하니, 바름을 없애 흉(凶)하다. 육이(六二): 평상을 깎되 평상 몸틀[변(辨)]까지 하니, 바름을 없애 흉하다. 육삼(六三): 깎아내는 가운데에 있으나 무구(无咎)하다. 육사(六四): 평상을 깎되 살갗까지 하니 흉하다. 육오(六五): 물고기를 꿰듯 궁인(宮人)을 거느려 총애를 받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구(上九): 큰 과일은 먹히지 않으니, 군자는 수레를 얻고 소인은 집을 깎아낸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박(剝)은 깎아내는 것이니, 유(柔)가 강(剛)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소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순하게 하여 그치게 하는 것은 상(象)을 보아서이다. 군자는 사라지고 자라며 차고 비는 이치를 숭상하니, 하늘의 운행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이 땅 위에 붙어 있는 것이 박(剝)이니, 윗사람은 이를 본받아 아래를 두터이 하여 집을 편안하게 한다. 평상을 깎되 다리부터 한다는 것은 아래를 없애는 것이다. 평상을 깎되 몸틀까지 한다는 것은 함께하는 자가 없는 것이다. 깎아내는 가운데 무구하다는 것은 위아래를 잃었기 때문이다. 평상을 깎되 살갗까지 한다는 것은 재앙에 절박하게 가까운 것이다. 궁인을 거느려 총애를 받는다는 것은 끝내 허물이 없는 것이다. 군자가 수레를 얻는다는 것은 백성이 떠받드는 것이다. 소인이 집을 깎아낸다는 것은 끝내 쓸 수 없는 것이다.
{{ Header2 |previous =剝 |next=无妄 }} 복괘(復卦) 진하곤상(震下坤上) 복(復)은 형(亨)하다. 나가고 들어옴에 병이 없고, 벗이 와도 무구(无咎)하다. 그 도를 반복하여 칠 일 만에 돌아오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 초구(初九):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니, 뉘우침에 이르지 않아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육이(六二): 아름답게 돌아오니 길(吉)하다. 육삼(六三): 자주 돌아오니, 위태로우나 무구하다. 육사(六四): 중도(中道)를 행하여 홀로 돌아온다. 육오(六五): 도탑게 돌아오니 회(悔)가 없다.
상육(上六): 돌아옴에 헤매니 흉(凶)하고 재앙이 있다. 군대를 움직이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그 나라의 임금에게까지 미쳐 흉하니, 십 년에 이르도록 정벌하지 못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복(復)이 형통한 것은 강(剛)이 돌아와 움직이되 순함으로써 행하니, 이 때문에 나가고 들어옴에 병이 없고 벗이 와도 무구하다. 그 도를 반복하여 칠 일 만에 돌아온다는 것은 하늘의 운행이다.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는 것은 강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복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가 땅 가운데 있는 것이 복(復)이니,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상인과 나그네가 다니지 않게 하고, 임금[후(后)]은 사방을 순시하지 않았다.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온다는 것은 몸을 닦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돌아와 길하다는 것은 인(仁)한 이에게 낮추기 때문이다. 자주 돌아오는 위태로움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 중도를 행하여 홀로 돌아온다는 것은 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도탑게 돌아와 회가 없다는 것은 중(中)으로써 스스로를 이루기 때문이다. 돌아옴에 헤매는 흉함은 임금의 도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 Header2 |section=无妄 |previous =復 |next=大畜 }} 무망괘(无妄卦) 진하건상(震下乾上) 무망(无妄)은 원(元)·형(亨)·이(利)·정(貞)하다.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지 않다. 초구(初九): 망령됨이 없으니 가면 길(吉)하다. 육이(六二): 밭 갈지 않고 거두며, 일구지 않고 묵은 밭을 [얻으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 육삼(六三): 무망의 재앙이니, 혹 소를 매어 두었는데 길 가는 사람이 얻으면 고을 사람의 재앙이 된다.
구사(九四): 정(貞)할 수 있으니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무망의 병이니, 약을 쓰지 않아도 기쁨이 있다. 상구(上九): 무망이나 가면 재앙이 있으니, 이로운 바가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무망(无妄)은 강(剛)이 밖으로부터 와서 안에서 주인이 된다. 움직이고 굳세며, 강이 중(中)에 있어 응하니, 크게 형통하되 바름으로써 하는 것이 하늘의 명이다. 그 바르지 않으면 재앙이 있으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지 않다. 무망에서 가면 어디로 가겠는가? 하늘의 명이 돕지 않는데 가겠는가?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우레가 가니 만물이 망령됨이 없음을 부여받는다. 선왕(先王)은 이를 본받아 성대히 때에 맞추어 만물을 길렀다. 망령됨이 없이 간다는 것은 뜻을 얻는 것이다. 밭 갈지 않고 거둔다는 것은 아직 부유하지 않은 것이다. 길 가는 사람이 소를 얻는 것은 고을 사람의 재앙이다. 정할 수 있으니 무구하다는 것은 굳게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망의 약은 시험해서는 안 된다. 무망에서 간다는 것은 궁극에 이른 재앙이다.
{{ Header2 |previous =无妄 |next=頤 }} 대축괘(大畜卦) 건하간상(乾下艮上) 대축(大畜)은 정(貞)함이 이로우니,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吉)하고,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초구(初九): 위태로움이 있으니 그침이 이롭다. 구이(九二): 수레의 바퀴살[복(輹)]이 빠진다. 구삼(九三): 좋은 말이 달리니 어렵게 여기고 정함이 이로워 길하다. 날마다 수레 몰기와 호위를 익히면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 육사(六四): 어린 소의 뿔에 가로막대를 대니 크게 길하다[원길(元吉)]. 육오(六五): 거세한 돼지의 어금니이니 길하다.
상구(上九): 어찌 하늘의 거리인가, 형(亨)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대축(大畜)은 강건하고 독실하며 빛이 나서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하고, 강(剛)이 위에 있어 어진 이를 숭상한다. 굳센 것을 그치게 할 수 있으니 크게 바르다. 집에서 먹지 않으면 길하다는 것은 어진 이를 기르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하늘에 응하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산 가운데 있는 것이 대축(大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옛 성현의 말씀과 지난 행실을 많이 알아 그 덕을 쌓는다. 위태로움이 있으니 그침이 이롭다는 것은 재앙을 범하지 않는 것이다. 수레의 바퀴살이 빠진다는 것은 중(中)에 있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는 것은 위와 뜻을 합하기 때문이다. 육사가 크게 길하다는 것은 기쁨이 있는 것이다. 육오의 길함은 경사가 있는 것이다. 어찌 하늘의 거리인가라는 것은 도가 크게 행해지는 것이다.
이괘(頤卦)는 정(貞)하면 길(吉)하다. 기르는 것을 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 초구(初九): 너의 신령한 거북을 버리고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리니 흉(凶)하다. 육이(六二): 거꾸로 기름을 구하여 떳떳한 도리를 어기고, 언덕[위]에서 기름을 구하니, 나아가면 흉하다. 육삼(六三): 기르는 도를 어기니 정하여도 흉하여, 십 년 동안 쓰지 말라, 이로운 바가 없다. 육사(六四): 거꾸로 기름을 구하나 길하다. 범이 노려보듯 하며 그 욕심이 끊임없으면 무구(无咎)하다. 육오(六五): 떳떳한 도리를 어기나 정(貞)에 머물면 길하니, 큰 내를 건너서는 안 된다. 상구(上九): [천하가] 말미암아 길러지니 위태로우나 길하여,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이(頤)가 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바름을 기르면 길하다는 것이다. 기르는 것을 본다는 것은 그 기르는 바를 보는 것이고, 스스로 입에 채울 것을 구한다는 것은 그 스스로 기르는 것을 보는 것이다. 천지는 만물을 기르고 성인은 어진 이를 길러 만백성에게 미치니, 이(頤)의 때가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 우레가 있는 것이 이(頤)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말을 삼가고 음식을 절제한다. 나를 보며 턱을 늘어뜨린다는 것은 또한 귀히 여길 만하지 못한 것이다. 육이가 나아가면 흉하다는 것은 행함에 같은 부류를 잃기 때문이다. 십 년 동안 쓰지 말라는 것은 도에 크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거꾸로 기름을 구하나 길하다는 것은 위에서 베풂이 빛나기 때문이다. 정에 머물면 길하다는 것은 순하게 위를 따르기 때문이다. [천하가] 말미암아 길러지니 위태로우나 길하다는 것은 크게 경사가 있는 것이다.
대과괘(大過卦)는 들보가 휘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고 형(亨)하다. 초육(初六): 흰 띠풀을 깔아 [제물을 받치니]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마른 버드나무에 새싹이 돋고, 늙은 사내가 젊은 아내를 얻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구삼(九三): 들보가 휘니 흉(凶)하다. 구사(九四): 들보가 높이 솟으니 길(吉)하다. 다른 [마음이] 있으면 인색하다[린(吝)]. 구오(九五):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고, 늙은 부인이 젊은 사내를 얻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 상육(上六): 지나치게 건너다 이마까지 빠지니 흉하나, 허물할 수는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대과(大過)는 큰 것이 지나친 것이다. 들보가 휜다는 것은 밑동과 끝이 약하기 때문이다. 강(剛)이 지나치나 중(中)에 있고, 겸손하며 기뻐하여 행하니,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로워 이에 형통하다. 대과의 때가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이 나무를 잠기게 하는 것이 대과(大過)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을 피해 살아도 번민이 없다. 흰 띠풀을 깐다는 것은 유(柔)가 아래에 있는 것이다. 늙은 사내와 젊은 아내는 지나치게 서로 함께하는 것이다. 들보가 휘는 흉함은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들보가 높이 솟는 길함은 아래로 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피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늙은 부인과 젊은 사내는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지나치게 건너다 [빠지는] 흉함은 허물할 수 없다.
습감(習坎)은 믿음[孚]이 있어 오직 마음이 형(亨)하다. 가면 숭상함이 있다. 초육(初六): 거듭된 구덩이에서 구덩이 속 깊은 구덩이[坎窞]로 들어가니, 흉(凶)하다. 구이(九二): 구덩이에 험함이 있으니, 구하면 작게 얻는다. 육삼(六三): 오고 감이 모두 구덩이이고, 험한 데다 [험함에] 기대어 있어 구덩이 속 깊은 구덩이로 들어가니, 쓰지 말라. 육사(六四): 한 동이 술과 대그릇 [음식]에 버금으로 질장군[缶]을 쓰고, 간략한 것을 창[牖]으로부터 들이니, 끝내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구덩이가 차지 않았으나 이미 평평함에 이르니, 무구(无咎)하다. 상육(上六): 노끈[徽纆]으로 묶어 가시덤불 속에 두니, 3년 동안 얻지 못하여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습감은 거듭된 험함이다. 물이 흘러도 차지 않고, 험한 데를 가도 그 믿음을 잃지 않는다. '오직 마음이 형통하다'는 것은 강(剛)으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가면 숭상함이 있다'는 것은 가면 공이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험함은 오를 수 없고, 땅의 험함은 산천과 구릉이니, 왕공(王公)은 험함을 설치하여 그 나라를 지킨다. 감(坎)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물이 거듭 이르는 것이 습감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행을 늘 한결같이 하고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 '습감에서 구덩이로 들어간다'는 것은 도를 잃어 흉하다는 것이다. '구하면 작게 얻는다'는 것은 아직 [험함의]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고 감이 모두 구덩이'라는 것은 끝내 공이 없다는 것이다. '한 동이 술과 대그릇 둘'은 강(剛)과 유(柔)가 사귀는 것이다. '구덩이가 차지 않았다'는 것은 가운데 [덕이] 아직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육이 도를 잃으니, 흉함이 3년이다.
리괘(離卦): 정(貞)함이 이(利)하다. 형(亨)하다. 암소를 기르면 길(吉)하다. 초구(初九): 발걸음이 어지러우니, 공경하면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누런 [빛의] 붙음이니, 크게 길(吉)하다[元吉]. 구삼(九三): 해가 기울 때의 붙음이니, 질장군을 두드리며 노래하지 않으면 늙은이의 탄식이 있어 흉(凶)하다. 구사(九四): 갑작스레 오는 듯하니, 불타는 듯, 죽는 듯, 버려지는 듯하다. 육오(六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슬퍼 탄식하니, 길(吉)하다. 상구(上九): 왕이 나가 정벌하는 데 쓰니, 아름다움이 있어 우두머리를 베고 사로잡은 것이 그 무리가 아니니,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리(離)는 붙음[麗]이다. 해와 달은 하늘에 붙어 있고, 온갖 곡식과 초목은 땅에 붙어 있으며, 거듭된 밝음이 바름에 붙어 이에 천하를 교화하여 이룬다. 유(柔)가 중정(中正)에 붙으므로 형통하니, 이 때문에 암소를 기르면 길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두 번 일어나는 것이 리이니, 대인은 이로써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춘다. '발걸음이 어지러울 때 공경한다'는 것은 이로써 허물을 피하는 것이다. '누런 붙음이 크게 길하다'는 것은 중도(中道)를 얻었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 때의 붙음'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갑작스레 오는 듯하다'는 것은 용납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육오의 길함은 왕공에게 붙어 있기 때문이다. '왕이 나가 정벌하는 데 쓴다'는 것은 이로써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다.
함괘(咸卦): 형(亨)하다. 정(貞)함이 이(利)하다. 여자를 취하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그 엄지발가락에 감응한다. 육이(六二): 그 장딴지에 감응하니 흉(凶)하나, 머물러 있으면 길(吉)하다. 구삼(九三): 그 넓적다리에 감응하여 따르는 것을 붙잡으니, 가면 린(吝)하다. 구사(九四): 정(貞)하면 길(吉)하여 회(悔)가 없어진다. 자주자주 오가면 벗이 네 생각을 따른다. 구오(九五): 그 등살[脢]에 감응하니, 회(悔)가 없다. 상육(上六): 그 광대뼈와 뺨과 혀에 감응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함(咸)은 감응함[感]이다. 유(柔)가 위에 있고 강(剛)이 아래에 있어 두 기운이 감응하여 서로 함께하며, 그치고 기뻐하며, 남자가 여자에게 낮추니, 이 때문에 형통하고 정함이 이로우며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 천지가 감응하여 만물이 화생(化生)하고, 성인이 사람의 마음을 감응시켜 천하가 화평하니, 그 감응하는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못이 있는 것이 함이니, 군자는 이로써 마음을 비워 남을 받아들인다. '그 엄지발가락에 감응한다'는 것은 뜻이 밖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흉하나 머물러 있으면 길하다'는 것은 순응하면 해롭지 않다는 것이다. '그 넓적다리에 감응한다'는 것은 또한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뜻이 남을 따르는 데 있으니, 붙잡는 바가 낮다. '정하면 길하여 회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직 감응하여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주자주 오간다'는 것은 아직 빛나고 크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등살에 감응한다'는 것은 뜻이 말단에 있다는 것이다. '그 광대뼈와 뺨과 혀에 감응한다'는 것은 입으로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항(恆) 손하진상(巽下震上) 항괘(恆卦): 형(亨)하고 무구(无咎)하다. 정(貞)함이 이(利)하고,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초육(初六): 항구함을 깊이 파고드니, 정(貞)하여도 흉(凶)하고 이로운 바가 없다. 구이(九二): 회(悔)가 없어진다. 구삼(九三): 그 덕을 항구하게 하지 않으니 혹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며, 정(貞)하여도 린(吝)하다. 구사(九四): 사냥에 짐승이 없다. 육오(六五): 그 덕을 항구하게 하여 정(貞)하니, 부인은 길(吉)하고 남편은 흉(凶)하다. 상육(上六): 흔들리는 항구함이니,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항(恆)은 오래감[久]이다. 강(剛)이 위에 있고 유(柔)가 아래에 있으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함께하고, 공손하여 움직이며, 강과 유가 모두 응하니, 항이다. '항은 형통하고 무구하며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그 도에 오래 머물기 때문이니, 천지의 도는 항구하여 그치지 않는다. '갈 바가 있으면 이롭다'는 것은 끝나면 다시 시작함이 있기 때문이다. 해와 달은 하늘을 얻어 오래 비출 수 있고, 사계절은 변화하여 오래 이룰 수 있으며, 성인은 그 도에 오래 머물러 천하가 교화되어 이루어지니, 그 항구한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와 바람이 항이니, 군자는 이로써 서서 방도를 바꾸지 않는다. '항구함을 깊이 파고드는 흉함'은 처음부터 깊은 것을 구하기 때문이다. '구이의 회가 없어진다'는 것은 가운데에 오래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덕을 항구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용납될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 자리가 아닌 곳에 오래 있으니, 어찌 짐승을 얻겠는가. '부인이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한 사람을 좇아 생을 마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의(義)를 결단해야 하니, 부인을 따르면 흉하다. '흔들리는 항구함이 위에 있다'는 것은 크게 공이 없다는 것이다.
둔괘(遯卦): 형(亨)하다. 작은 일에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육(初六): 물러남의 꼬리이니 위태롭다[厲]. 갈 바가 있어도 쓰지 말라. 육이(六二): 누런 소의 가죽으로 묶으니, 아무도 풀 수 없다. 구삼(九三): 얽매인 물러남이니 병이 있어 위태로우나, 신하와 첩을 기르면 길(吉)하다. 구사(九四): 좋아하면서 물러나니, 군자는 길(吉)하고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 구오(九五): 아름다운 물러남이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상구(上九): 넉넉한 물러남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둔은 형통하다'는 것은 물러나서 형통하다는 것이다. 강(剛)이 자리에 마땅하고 응하니, 때와 함께 행한다. '작은 일에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음이] 점차 자라나기 때문이다. 둔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산이 있는 것이 둔이니, 군자는 이로써 소인을 멀리하되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엄하게 한다. '물러남의 꼬리가 위태롭다'는 것은 가지 않으면 무슨 재앙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누런 소[의 가죽]로 묶는다'는 것은 뜻을 굳게 하는 것이다. '얽매인 물러남이 위태롭다'는 것은 병이 있어 지친다는 것이다. '신하와 첩을 기르면 길하다'는 것은 큰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자는 좋아하면서 물러나지만, 소인은 그렇지 못하다. '아름다운 물러남이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이로써 뜻을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넉넉한 물러남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대장괘(大壯卦):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발가락에 씩씩하니, 나아가면 흉(凶)함에 믿음이 있다. 구이(九二): 정(貞)하여 길(吉)하다. 구삼(九三): 소인은 씩씩함을 쓰고 군자는 [씩씩함을] 쓰지 않으니[罔], 정(貞)하여도 위태롭다.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이 걸린다. 구사(九四): 정(貞)하면 길(吉)하여 회(悔)가 없어지니, 울타리가 터져 걸리지 않고 큰 수레의 바퀴통[腹]에 씩씩하다. 육오(六五): 쉬운 데서[易] 양을 잃으니, 회(悔)가 없다. 상육(上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으니 이로운 바가 없으나, 어렵게 여기면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대장은 큰 것이 씩씩하다는 것이다. 강(剛)하여 움직이므로 씩씩하다. '대장은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큰 것이 바르다는 것이다. 바르고 크니 천지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장이니, 군자는 이로써 예(禮)가 아니면 밟지 않는다. '발가락에 씩씩하다'는 것은 그 믿음이 궁하다는 것이다. '구이가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소인은 씩씩함을 쓰고, 군자는 쓰지 않는다. '울타리가 터져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나아감을 숭상하는 것이다. '쉬운 데서 양을 잃는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러날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다'는 것은 자세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여기면 길하다'는 것은 허물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괘(晉卦): 강후(康侯)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하루 낮에 세 번 접견한다. 초육(初六): 나아가는 듯하다가 꺾이는 듯하니, 정(貞)하면 길(吉)하다. 믿어주지 않더라도 너그러이 하면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나아가는 듯하다가 근심하는 듯하니, 정(貞)하면 길(吉)하다. 이 큰 복을 그 왕모(王母)에게서 받는다. 육삼(六三): 무리가 믿으니, 회(悔)가 없어진다. 구사(九四): 나아감이 날다람쥐[鼫鼠] 같으니, 정(貞)하여도 위태롭다. 육오(六五): 회(悔)가 없어지니, 화살을 얻음을 근심하지 말라. 가면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상구(上九): 그 뿔에 나아가니, 오직 읍(邑)을 치는 데 쓰면 위태로우나 길(吉)하여 무구(无咎)하고, 정(貞)하여도 린(吝)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진(晉)은 나아감[進]이다. 밝음이 땅 위로 나오고, 순하게 큰 밝음에 붙으며, 유(柔)가 나아가 위로 간다. 이 때문에 강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하루 낮에 세 번 접견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땅 위로 나오는 것이 진이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밝은 덕을 밝힌다. '나아가는 듯하다가 꺾이는 듯하다'는 것은 홀로 바름을 행하는 것이다. '너그러이 하면 무구하다'는 것은 아직 명(命)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큰 복을 받는다'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무리가 믿는' 뜻은 위로 가는 것이다. '날다람쥐처럼 정하여도 위태롭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잃고 얻음을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가면 경사가 있다는 것이다. '오직 읍을 치는 데 쓴다'는 것은 도가 아직 빛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명이괘(明夷卦): 어려움 속에서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밝음이 상하여 날아가니, 그 날개를 늘어뜨린다. 군자가 떠나감에 3일 동안 먹지 못하니, 갈 바가 있으면 주인이 말을 한다. 육이(六二): 밝음이 상하여 왼쪽 넓적다리를 다치니, 구원하는 말이 씩씩하면 길(吉)하다. 구삼(九三): 밝음이 상하여 남쪽으로 사냥하니 그 큰 우두머리를 얻으나, 급히 바로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육사(六四): 왼쪽 배로 들어가 밝음이 상한 [자의] 마음을 얻으니, 문과 뜰을 나선다. 육오(六五): 기자(箕子)의 밝음이 상함이니, 정(貞)함이 이(利)하다. 상육(上六): 밝지 못하고 어두우니,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고 뒤에는 땅으로 들어간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명이이다. 안으로는 문명(文明)하고 밖으로는 유순하여 큰 어려움을 무릅썼으니, 문왕(文王)이 이렇게 하였다. '어려움 속에서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그 밝음을 감추는 것이니, 안으로 어려우면서도 그 뜻을 바르게 할 수 있었으니, 기자가 이렇게 하였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밝음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명이이니, 군자는 이로써 무리에 임할 때 어둠을 써서 밝게 한다. '군자가 떠나간다'는 것은 의리상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육이의 길함은 순하면서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사냥하는' 뜻은 크게 얻는 데 있다. '왼쪽 배로 들어간다'는 것은 마음과 뜻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자의 정함'은 밝음이 꺼질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사방의 나라를 비춘다는 것이다. '뒤에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법칙을 잃는다는 것이다.
가인괘(家人卦): 여자가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집안을 막아 단속하니, 회(悔)가 없어진다. 육이(六二): 이루는 바가 없고 집안에서 음식을 맡으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구삼(九三): 집안사람이 엄하게 꾸짖으니, 뉘우치고 위태로우나 길(吉)하다.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하면 끝내 린(吝)하다. 육사(六四): 집안을 부유하게 하니, 크게 길(吉)하다. 구오(九五): 왕이 집안에 이르니, 근심하지 말라. 길(吉)하다. 상구(上九): 믿음이 있고 위엄이 있으니, 끝내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가인은 여자가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남자가 밖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니, 남녀가 바른 것은 천지의 큰 의리이다. 가인에게 엄한 군주가 있으니, 부모를 이른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아우는 아우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다우면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되니, 집안을 바르게 하면 천하가 안정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불에서 나오는 것이 가인이니, 군자는 이로써 말에는 내용이 있고 행실에는 항상함이 있게 한다. '집안을 막아 단속한다'는 것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육이의 길함은 순하고 공손하기 때문이다. '집안사람이 엄하게 꾸짖는다'는 것은 아직 잃지 않았다는 것이고, '부인과 자식이 희희낙락한다'는 것은 집안의 절도를 잃었다는 것이다. '집안을 부유하게 하여 크게 길하다'는 것은 순하게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왕이 집안에 이른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위엄이 있어 길하다'는 것은 자신을 돌이켜 봄을 이른다.
규괘(睽卦): 작은 일은 길(吉)하다. 초구(初九): 회(悔)가 없어지니, 말을 잃어도 쫓지 말라, 스스로 돌아온다. 악인을 만나도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골목에서 주인을 만나니, 무구(无咎)하다. 육삼(六三): 수레가 끌려가는 것을 보니, 그 소는 [뿔이] 뒤틀리고[𧤊], 그 사람은 이마에 먹물을 들이고 코를 베였으니, 처음은 없으나 끝은 있다. 구사(九四): 어긋나 외로우나 좋은 사내[元夫]를 만나 서로 믿으니, 위태로우나 무구(无咎)하다. 육오(六五): 회(悔)가 없어지니, 그 종친이 살을 깨물 듯 [쉽게 합하니], 가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상구(上九): 어긋나 외로우니, 돼지가 진흙을 뒤집어쓴 것과 귀신이 한 수레 실린 것을 보고, 먼저 활을 당겼다가 뒤에 활을 내려놓으니,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상대이다. 가서 비를 만나면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규(睽)는 불이 움직여 위로 오르고 못이 움직여 아래로 내려가며, 두 여자가 함께 살되 그 뜻이 같이 가지 않는다. 기뻐하며 밝음에 붙고, 유(柔)가 나아가 위로 가며, 가운데를 얻어 강(剛)에 응하니, 이 때문에 작은 일은 길하다. 천지가 어긋나 있으나 그 일은 같고, 남녀가 어긋나 있으나 그 뜻은 통하며, 만물이 어긋나 있으나 그 일은 비슷하니, 규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위는 불이고 아래는 못인 것이 규이니, 군자는 이로써 같으면서도 다르게 한다. '악인을 만난다'는 것은 이로써 허물을 피하는 것이다. '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는 것은 아직 도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레가 끌려가는 것을 본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은 없으나 끝은 있다'는 것은 강(剛)을 만나기 때문이다. '서로 믿어 무구하다'는 것은 뜻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그 종친이 살을 깨문다'는 것은 가면 경사가 있다는 것이다. '비를 만나 길하다'는 것은 뭇 의심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건괘(蹇卦): 서남쪽은 이롭고 동북쪽은 이롭지 않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利)하니, 정(貞)하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가면 절고, 오면 명예롭다. 육이(六二): 왕의 신하가 절고 또 저는 것은 자기 몸 때문이 아니다. 구삼(九三): 가면 절고, 오면 돌아온다. 육사(六四): 가면 절고, 오면 연합한다. 구오(九五): 크게 저는데 벗이 온다. 상육(上六): 가면 절고 오면 크니, 길(吉)하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利)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건(蹇)은 어려움[難]이니, 험함이 앞에 있다. 험함을 보고 그칠 수 있으니, 지혜롭도다! '건은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가서 가운데를 얻기 때문이고, '동북쪽은 이롭지 않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가면 공이 있다는 것이다. 자리가 마땅하여 정하면 길하니, 이로써 나라를 바로잡는다. 건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물이 있는 것이 건이니, 군자는 이로써 자신을 돌이켜 덕을 닦는다. '가면 절고 오면 명예롭다'는 것은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왕의 신하가 절고 또 전다'는 것은 끝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가면 절고 오면 돌아온다'는 것은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가면 절고 오면 연합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고 실하기 때문이다. '크게 저는데 벗이 온다'는 것은 가운데의 절도로써 하기 때문이다. '가면 절고 오면 크다'는 것은 뜻이 안에 있다는 것이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이로써 귀한 이를 따르기 때문이다.
해괘(解卦): 서남쪽이 이(利)하다. 갈 곳이 없으면 돌아옴이 길(吉)하다. 갈 바가 있으면 일찍 하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사냥하여 여우 세 마리를 잡고 누런 화살을 얻으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육삼(六三):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타니 도적이 오게 만들어, 정(貞)하여도 린(吝)하다. 구사(九四): 너의 엄지발가락을 풀면, 벗이 이르러 이에 믿는다. 육오(六五): 군자가 오직 풀어냄이 있으니 길(吉)하고, 소인에게도 믿음이 있다. 상육(上六): 공(公)이 높은 담 위에서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해(解)는 험하여 움직이고, 움직여서 험함을 면하는 것이 해이다. '해는 서남쪽이 이롭다'는 것은 가서 무리를 얻기 때문이다. '돌아옴이 길하다'는 것은 이에 가운데를 얻기 때문이다. '갈 바가 있으면 일찍 하면 길하다'는 것은 가면 공이 있다는 것이다. 천지가 풀리면 우레와 비가 일어나고, 우레와 비가 일어나면 온갖 과일과 초목이 모두 껍질을 터뜨리니, 해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와 비가 일어나는 것이 해이니, 군자는 이로써 과실을 용서하고 죄를 너그럽게 한다. 강(剛)과 유(柔)가 만나는 즈음이니, 의리상 무구하다. '구이가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탄다'는 것은 또한 추한 일이니, 나로부터 병란을 불렀으니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너의 엄지발가락을 푼다'는 것은 아직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자가 풀어냄이 있으면 소인은 물러난다. '공이 새매를 쏜다'는 것은 이로써 어그러진 자를 풀어 없애는 것이다.
손괘(損卦):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吉)하다[元吉]. 무구(无咎)하고, 정(貞)할 수 있으며,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무엇을 쓰겠는가? 대그릇 두 개로도 제사를 올릴 수 있다. 초구(初九): 제사 일로 빨리 가면 무구(无咎)하니, 헤아려서 덜어낸다. 구이(九二): 정(貞)함이 이(利)하고, 나아가면 흉(凶)하니, 덜지 않고 보태준다. 육삼(六三):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육사(六四): 그 병을 덜되 빨리 하게 하면 기쁨이 있으니, 무구(无咎)하다. 육오(六五): 혹 보태주니, 열 붕(朋)의 거북도 어기지 못하니, 크게 길(吉)하다. 상구(上九): 덜지 않고 보태주니, 무구(无咎)하고 정(貞)하여 길(吉)하며,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니, 신하를 얻되 집이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손(損)은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는 것이니, 그 도가 위로 행한다. '덜어도 믿음이 있으면 크게 길하고 무구하며 정할 수 있고 갈 바가 있으면 이롭다.' '무엇을 쓰겠는가? 대그릇 두 개로도 제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은, 대그릇 두 개도 마땅히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강(剛)을 덜어 유(柔)에 보탬에도 때가 있으니, 덜고 보태고 차고 비는 것이 때와 함께 행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아래에 못이 있는 것이 손이니, 군자는 이로써 분노를 징계하고 욕심을 막는다. '일을 마치고 빨리 간다'는 것은 [위와] 뜻을 합하기를 숭상하는 것이다. '구이가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가운데로써 뜻을 삼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간다'는 것은 셋이면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 병을 던다'는 것은 또한 기뻐할 만하다는 것이다. '육오가 크게 길하다'는 것은 위로부터 돕기 때문이다. '덜지 않고 보태준다'는 것은 크게 뜻을 얻는다는 것이다.
익괘(益卦):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큰 내를 건넘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큰일을 하는 데 씀이 이(利)하니, 크게 길(吉)하여야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혹 보태주니, 열 붕(朋)의 거북도 어기지 못하니, 길이 정(貞)하면 길(吉)하다. 왕이 상제(上帝)께 제사를 올리니, 길(吉)하다. 육삼(六三): 흉한 일에 보태주니 무구(无咎)하다. 믿음이 있어 중도(中道)로 행하여 공(公)에게 아뢰되 규(圭)를 쓴다. 육사(六四): 중도로 행하여 공에게 아뢰니 따른다. 의지하여 도읍을 옮기는 데 씀이 이(利)하다. 구오(九五): 믿음이 있어 은혜로운 마음이니, 묻지 않아도 크게 길(吉)하다. 믿음이 있어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긴다. 상구(上九): 아무도 보태주지 않고 혹 공격하니, 마음을 세움이 항구하지 못하여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익(益)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태는 것이니, 백성의 기쁨이 끝이 없고, 위로부터 아래로 낮추니 그 도가 크게 빛난다. '갈 바가 있으면 이롭다'는 것은 중정(中正)하여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나무의 도가 이에 행해지기 때문이다. 익은 움직이되 공손하니, 날로 나아감이 끝이 없다. 하늘은 베풀고 땅은 낳으니, 그 보탬이 방소(方所)가 없다. 무릇 보태는 도는 때와 함께 행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과 우레가 익이니, 군자는 이로써 선을 보면 옮겨 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크게 길하여야 무구하다'는 것은 아랫사람은 [본래] 큰일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 보태준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흉한 일에 보태준다'는 것은 본래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에게 아뢰니 따른다'는 것은 이로써 뜻을 보태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어 은혜로운 마음'이니, 물을 필요가 없다. '나의 덕을 은혜롭게 여긴다'는 것은 크게 뜻을 얻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태주지 않는다'는 것은 치우친 말이다. '혹 공격한다'는 것은 밖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쾌괘(夬卦): 왕의 조정에서 드날리고 믿음으로 호소하나 위태로움이 있다. 자기 읍(邑)에 알리고, 곧바로 무력을 씀은 이롭지 않으며,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초구(初九): 앞 발가락에 씩씩하니,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된다. 구이(九二): 두려워하며 호소하니, 늦은 밤에 병란이 있어도 근심하지 말라. 구삼(九三): 광대뼈에 씩씩하니 흉(凶)함이 있다. 군자는 결단하고 결단하여 홀로 가다가 비를 만나니, 젖은 듯하여 노여움을 사더라도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 볼기에 살이 없으니 그 걸음이 머뭇거린다. 양을 끌고 가면 회(悔)가 없어지나,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구오(九五): 쇠비름[莧陸]을 결단하고 결단하니, 중도로 행하면 무구(无咎)하다.
상육(上六): 호소할 데가 없으니, 끝내 흉(凶)함이 있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쾌(夬)는 결단함[決]이니, 강(剛)이 유(柔)를 결단하는 것이다. 굳세면서 기뻐하고, 결단하면서 화합한다. '왕의 조정에서 드날린다'는 것은 유가 다섯 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호소하나 위태로움이 있다'는 것은 그 위태로움이 이에 빛난다는 것이다. '자기 읍에 알리고 곧바로 무력을 씀은 이롭지 않다'는 것은 숭상하는 바가 이에 궁해진다는 것이다. '갈 바가 있으면 이롭다'는 것은 강이 자라나 이에 끝맺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쾌이니, 군자는 이로써 녹(祿)을 베풀어 아래에 미치고, 덕에 머물러 있으면 꺼린다. 이기지 못하면서 가니, 허물이다. '늦은 밤에 병란이 있다'는 것은 중도를 얻었기 때문이다. '군자가 결단하고 결단한다'는 것은 끝내 무구하다는 것이다. '그 걸음이 머뭇거린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귀가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도로 행하면 무구하다'는 것은 가운데가 아직 빛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호소할 데가 없어 흉하다'는 것은 끝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구괘(姤卦): 여자가 씩씩하니, 여자를 취하지 말라. 초육(初六): 쇠 굄목[金柅]에 매어 두면 정(貞)하여 길(吉)하고, 갈 바가 있으면 흉(凶)함을 본다. 여윈 돼지가 진실로 날뛴다. 구이(九二): 꾸러미에 물고기가 있으니 무구(无咎)하나, 손님에게는 이롭지 않다. 구삼(九三): 볼기에 살이 없으니 그 걸음이 머뭇거리나, 위태로워도 큰 허물은 없다. 구사(九四): 꾸러미에 물고기가 없으니, 일어나면 흉(凶)하다. 구오(九五): 구기자나무로 오이를 감싸니, 빛남을 머금고 있어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다. 상구(上九): 그 뿔에서 만나니, 린(吝)하나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구(姤)는 만남[遇]이니, 유(柔)가 강(剛)을 만나는 것이다. '여자를 취하지 말라'는 것은 더불어 오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가 서로 만나니 온갖 사물이 모두 빛난다. 강이 중정(中正)을 만나니 천하에 크게 행해진다. 구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바람이 있는 것이 구이니, 임금[后]은 이로써 명령을 베풀어 사방에 알린다. '쇠 굄목에 매어 둔다'는 것은 유의 도가 끌려가기 때문이다. '꾸러미에 물고기가 있다'는 것은 의리상 손님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걸음이 머뭇거린다'는 것은 걸음이 아직 끌려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없어 흉하다'는 것은 백성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구오가 빛남을 머금는다'는 것은 중정하기 때문이다.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다'는 것은 뜻이 명(命)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뿔에서 만난다'는 것은 위에서 궁하여 린하다는 것이다.
췌괘(萃卦): 왕이 사당에 이르고, 대인을 만나봄이 이(利)하니, 형(亨)하다. 정(貞)함이 이(利)하다. 큰 희생을 쓰면 길(吉)하고,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초육(初六): 믿음이 있으나 끝까지 가지 못하여 어지러워졌다가 모이니, 만약 부르짖으면 한 번 손을 잡고 웃게 되니, 근심하지 말라, 가면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이끌면 길(吉)하여 무구(无咎)하니, 믿음이 있으면 간소한 제사[禴]를 씀이 이(利)하다. 육삼(六三): 모이려는 듯 탄식하는 듯하니 이로운 바가 없고, 가면 무구(无咎)하나 조금 린(吝)하다. 구사(九四): 크게 길(吉)하여야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모임에 자리가 있으니 무구(无咎)하다. 믿지 않는 [자가 있으면], 크고 길이 정(貞)하면 회(悔)가 없어진다.
상육(上六): 탄식하며 눈물과 콧물을 흘리니,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췌(萃)는 모임[聚]이다. 순하면서 기뻐하고, 강(剛)이 가운데 있으면서 응하므로 모인다. '왕이 사당에 이른다'는 것은 효도를 다하여 제사를 올린다는 것이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워 형통하다'는 것은 바름으로써 모이기 때문이다. '큰 희생을 쓰면 길하고 갈 바가 있으면 이롭다'는 것은 천명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그 모이는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정(情)을 볼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이 땅 위에 있는 것이 췌이니, 군자는 이로써 병기를 수리하여 뜻밖의 일을 경계한다. '어지러워졌다가 모인다'는 것은 그 뜻이 어지럽기 때문이다. '이끌면 길하여 무구하다'는 것은 가운데가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면 무구하다'는 것은 위가 공손하기 때문이다. '크게 길하여야 무구하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임에 자리가 있다'는 것은 뜻이 아직 빛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탄식하며 눈물과 콧물을 흘린다'는 것은 위에서 아직 편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승괘(升卦): 크게 형(亨)하니[元亨], 대인을 만나봄에 씀에 근심하지 말라.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믿음으로 오르니, 크게 길(吉)하다. 구이(九二): 믿음이 있으면 간소한 제사[禴]를 씀이 이(利)하니, 무구(无咎)하다. 구삼(九三): 빈 고을에 오른다. 육사(六四): 왕이 기산(岐山)에서 제사를 올리니, 길(吉)하고 무구(无咎)하다. 육오(六五): 정(貞)하여 길(吉)하니, 계단을 오른다. 상육(上六): 어둡게 오르니, 쉬지 않는 정(貞)함에 이(利)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유(柔)가 때에 맞추어 오르고, 공손하며 순하고, 강(剛)이 가운데 있으면서 응하니,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대인을 만나봄에 씀에 근심하지 말라'는 것은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나아가면 길하다'는 것은 뜻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땅속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이 승이니, 군자는 이로써 덕을 순히 따르고 작은 것을 쌓아 높고 크게 한다. '믿음으로 올라 크게 길하다'는 것은 위와 뜻이 합하기 때문이다. '구이의 믿음'은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빈 고을에 오른다'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다는 것이다. '왕이 기산에서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순하게 섬기는 것이다. '정하여 길하니 계단을 오른다'는 것은 크게 뜻을 얻는다는 것이다. '어둡게 올라 위에 있다'는 것은 사그라져 부유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곤괘(困卦): 형(亨)하니, 정(貞)한 대인은 길(吉)하여 무구(无咎)하나,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 초육(初六): 볼기가 나무 그루터기에 곤궁하니,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3년 동안 보지 못한다. 구이(九二): 술과 음식에 곤궁하나, 붉은 인끈[朱紱]이 바야흐로 오니, 제사를 올리는 데 씀이 이(利)하고, 나아가면 흉(凶)하나 무구(无咎)하다. 육삼(六三): 돌에 곤궁하고 가시덤불에 기대며,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凶)하다. 구사(九四): 오는 것이 느릿느릿하니, 쇠 수레에 곤궁하여 린(吝)하나, 끝맺음이 있다. 구오(九五):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이니, 붉은 인끈[赤紱]에 곤궁하나, 이에 천천히 기쁨이 있으니, 제사를 지내는 데 씀이 이(利)하다.
상육(上六): 칡덩굴에 곤궁하고 위태로운 곳에 곤궁하니, '움직이면 후회한다'고 말한다. 후회함이 있으면 나아가서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곤(困)은 강(剛)이 가려진 것이다. 험하면서도 기뻐하여, 곤궁하여도 그 형통할 바를 잃지 않으니, 그것은 오직 군자뿐이리라! '정한 대인이 길하다'는 것은 강으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입을 숭상하면 이에 궁해진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이니, 군자는 이로써 목숨을 바쳐 뜻을 이룬다.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두워 밝지 못하다는 것이다. '술과 음식에 곤궁하다'는 것은 가운데 있어 경사가 있다는 것이다. '가시덤불에 기댄다'는 것은 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는 것이 느릿느릿하다'는 것은 뜻이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함께하는 이가 있다. '코를 베이고 발꿈치를 베인다'는 것은 뜻을 아직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천천히 기쁨이 있다'는 것은 가운데 곧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내는 데 씀이 이롭다'는 것은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칡덩굴에 곤궁하다'는 것은 아직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움직이면 후회하나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길하게 행한다는 것이다.
정괘(井卦):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으니,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오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쓴다. 거의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 두레박줄을 드리우지 못했는데, 그 두레박을 깨뜨리면 흉(凶)하다. 초육(初六): 우물이 진흙이라 먹지 못하니, 옛 우물에 새[禽]도 없다. 구이(九二): 우물 구멍에서 붕어에게 [물을] 쏟으니, 독이 깨져 샌다. 구삼(九三): 우물이 깨끗해졌는데도 먹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다. 길어 쓸 수 있으니, 왕이 밝으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 육사(六四): 우물을 벽돌로 쌓으니,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우물이 맑으니, 찬 샘물을 먹는다. 상육(上六): 우물을 거두되 덮지 말라. 믿음이 있으니 크게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물에 [나무가] 들어가 물을 올리는 것이 정(井)이니, 우물은 [사람을] 기르되 다함이 없다.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강(剛)으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거의 이르렀으나 아직 우물에 두레박줄을 드리우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공이 없다는 것이다. '그 두레박을 깨뜨린다'는 것은 이 때문에 흉하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나무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정이니, 군자는 이로써 백성을 위로하고 서로 돕기를 권한다. '우물이 진흙이라 먹지 못한다'는 것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옛 우물에 새도 없다'는 것은 때가 버렸기 때문이다. '우물 구멍에서 붕어에게 쏟는다'는 것은 함께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우물이 깨끗해졌는데도 먹지 않는다'는 것은 행인도 슬퍼한다는 것이다. '왕이 밝기를 구한다'는 것은 복을 받고자 함이다. '우물을 벽돌로 쌓아 무구하다'는 것은 우물을 수리하기 때문이다. '찬 샘물을 먹는다'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크게 길함이 위에 있다'는 것은 크게 이룬다는 것이다.
혁괘(革卦): 날이 다하여야 이에 믿으니, 크게 형(亨)하다[元亨]. 정(貞)함이 이(利)하다. 회(悔)가 없어진다. 초구(初九): 누런 소의 가죽으로 굳게 묶는다. 육이(六二): 날이 다하여야 이에 고치니, 나아가면 길(吉)하여 무구(无咎)하다. 구삼(九三): 나아가면 흉(凶)하고 정(貞)하여도 위태로우니, 고친다는 말이 세 번 이루어져야 믿음이 있다. 구사(九四): 회(悔)가 없어지니, 믿음이 있어 명(命)을 고치면 길(吉)하다. 구오(九五): 대인이 범처럼 변하니, 점치지 않아도 믿음이 있다. 상육(上六): 군자는 표범처럼 변하고 소인은 얼굴을 고치니, 나아가면 흉(凶)하고 머물러 정(貞)하면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혁(革)은 물과 불이 서로 없애며, 두 여자가 함께 살되 그 뜻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을 혁이라 한다. '날이 다하여야 이에 믿는다'는 것은 고쳐서 믿게 한다는 것이다. 문명(文明)하면서 기뻐하고, 크게 형통하되 바름으로써 하니, 고쳐서 마땅하면 그 회가 이에 없어진다. 천지가 바뀌어 사계절이 이루어지고, 탕(湯)과 무(武)가 명(命)을 바꾸어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게 응하였으니, 혁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가운데 불이 있는 것이 혁이니, 군자는 이로써 역법을 다스려 때를 밝힌다. '누런 소[의 가죽]로 굳게 묶는다'는 것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날이 다하여야 고친다'는 것은 행하면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다. '고친다는 말이 세 번 이루어진다'면 또 어디로 가겠는가. '명을 고쳐 길하다'는 것은 뜻을 믿기 때문이다. '대인이 범처럼 변한다'는 것은 그 무늬가 빛난다는 것이다. '군자가 표범처럼 변한다'는 것은 그 무늬가 무성하다는 것이다. '소인이 얼굴을 고친다'는 것은 순하게 임금을 따른다는 것이다.
alr=䷱ 손하리상(巽下離上) 정괘(鼎卦): 크게 길(吉)하니[元吉], 형(亨)하다. 초육(初六): 솥이 발을 뒤집으니, 나쁜 것을 쏟아냄이 이(利)하고, 첩을 얻되 그 아들 때문이니,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솥에 내용물이 있으나, 나의 짝이 병이 있어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니, 길(吉)하다. 구삼(九三): 솥귀가 바뀌어 그 다님이 막히니, 꿩고기 기름을 먹지 못하나, 바야흐로 비가 내려 회(悔)가 줄어들어 끝내 길(吉)하다. 구사(九四): 솥이 발을 부러뜨려 공(公)의 음식을 엎으니, 그 형벌이 무거워 흉(凶)하다. 육오(六五): 솥의 누런 귀와 쇠 고리이니, 정(貞)함이 이(利)하다. 상구(上九): 솥의 옥 고리이니, 크게 길(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정(鼎)은 [솥의] 형상이다. 나무로써 불에 들여보내니, 음식을 삶는 것이다. 성인은 삶아서 상제(上帝)께 제사를 올리고, 크게 삶아서 성현을 기른다. 공손하여 귀와 눈이 밝고, 유(柔)가 나아가 위로 가며, 가운데를 얻어 강(剛)에 응하니, 이 때문에 크게 형통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나무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정이니, 군자는 이로써 자리를 바르게 하여 명(命)을 굳게 한다. '솥이 발을 뒤집는다'는 것은 아직 어그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쁜 것을 쏟아냄이 이롭다'는 것은 이로써 귀한 것을 따르기 때문이다. '솥에 내용물이 있다'는 것은 갈 바를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짝이 병이 있다'는 것은 끝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솥귀가 바뀐다'는 것은 그 뜻[義]을 잃었다는 것이다. '공의 음식을 엎는다'는 것은 믿음이 어떠하냐는 것이다. '솥의 누런 귀'는 가운데로써 실(實)을 삼는 것이다. '옥 고리가 위에 있다'는 것은 강과 유가 절도에 맞는다는 것이다.
진괘(震卦): 형(亨)하다. 우레가 오면 두려워하나,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겁다.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하여도 숟가락과 울창주[匕鬯]를 잃지 않는다. 초구(初九): 우레가 오면 두려워하나, 뒤에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거우니, 길(吉)하다. 육이(六二): 우레가 옴이 위태로우니, 헤아려 보아 재물[貝]을 잃고 아홉 겹 언덕에 오르나,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 육삼(六三): 우레에 정신이 아득하니, 우레로 인해 행하면 재앙이 없다. 구사(九四): 우레가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 육오(六五): 우레가 오가며 위태로우나, 헤아려 보면 잃음이 없고 일이 있다. 상육(上六): 우레에 [기운이] 흩어지고 눈이 두리번거리니, 나아가면 흉(凶)하다. 우레가 그 몸에 [미치지] 않고 그 이웃에 미치면 무구(无咎)하다. 혼인에 말이 있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진(震)은 형통하다. '우레가 오면 두려워한다'는 것은 두려워하여 복을 부른다는 것이다.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겁다'는 것은 뒤에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우레가 백 리를 놀라게 한다'는 것은 먼 곳을 놀라게 하고 가까운 곳을 두렵게 한다는 것이다. 나가서 종묘와 사직을 지켜 제주(祭主)가 될 수 있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거듭된 우레가 진이니, 군자는 이로써 두려워하며 몸을 닦고 살핀다. '우레가 오면 두려워한다'는 것은 두려워하여 복을 부른다는 것이다.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겁다'는 것은 뒤에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우레가 옴이 위태롭다'는 것은 강(剛)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우레에 정신이 아득하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레가 마침내 진흙에 빠진다'는 것은 아직 빛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레가 오가며 위태롭다'는 것은 위태롭게 행한다는 것이다. 그 일이 가운데 있으니, 크게 잃음이 없다. '우레에 [기운이] 흩어진다'는 것은 가운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흉하나 무구하다'는 것은 이웃을 보고 두려워하여 경계하기 때문이다.
간괘(艮卦): 그 등에 그치니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뜰을 거닐어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니, 무구(无咎)하다. 초육(初六): 그 발가락에 그치니 무구(无咎)하고, 길이 정(貞)함이 이(利)하다. 육이(六二): 그 장딴지에 그치니, 따르는 [자를] 구원하지 못하여 그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구삼(九三): 그 허리에 그치니 그 등살을 찢어,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육사(六四): 그 몸에 그치니, 무구(无咎)하다. 육오(六五): 그 광대뼈에 그치니 말에 차례가 있어, 회(悔)가 없어진다. 상구(上九): 도탑게 그치니,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간(艮)은 그침[止]이다. 그칠 때면 그치고 갈 때면 가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그 때를 잃지 않으니 그 도가 빛나고 밝다. '그 그침에 그친다'는 것은 그 자리에 그친다는 것이다. 위아래가 적대하여 응하니, 서로 함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몸을 얻지 못하고, 그 뜰을 거닐어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니, 무구하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겹친 산이 간이니, 군자는 이로써 생각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 발가락에 그친다'는 것은 아직 바름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르는 자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은 [따르는 자가] 물러나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허리에 그친다'는 것은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는 것이다. '그 몸에 그친다'는 것은 자기 몸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 광대뼈에 그친다'는 것은 중정(中正)하기 때문이다. '도탑게 그쳐 길하다'는 것은 도타움으로써 끝맺기 때문이다.
점괘(漸卦): 여자가 시집가면 길(吉)하니,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육(初六): 기러기가 물가로 점차 나아가니, 어린 자는 위태롭고 말이 있으나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 기러기가 반석으로 점차 나아가니, 먹고 마심이 즐거워 길(吉)하다. 구삼(九三): 기러기가 뭍으로 점차 나아가니, 남편은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부인은 잉태하여도 기르지 못하니 흉(凶)하다. 도적을 막음이 이(利)하다. 육사(六四): 기러기가 나무로 점차 나아가니, 혹 평평한 가지[桷]를 얻으면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기러기가 언덕으로 점차 나아가니, 부인이 3년 동안 잉태하지 못하나 끝내 아무도 이기지 못하니, 길(吉)하다. 상구(上九): 기러기가 뭍으로 점차 나아가니, 그 깃을 의식(儀式)에 쓸 수 있으니, 길(吉)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점(漸)의 나아감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처럼 길하다. 나아가 자리를 얻으니, 가면 공이 있다. 바름으로 나아가니,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 자리는 강(剛)으로 가운데를 얻었다. 그치고 공손하니, 움직임이 궁하지 않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이 점이니, 군자는 이로써 어진 덕에 머물러 풍속을 좋게 한다. '어린 자의 위태로움'은 의리상 무구하다. '먹고 마심이 즐겁다'는 것은 공연히 배불리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이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무리를 떠나 추하다는 것이다. '부인이 잉태하여도 기르지 못한다'는 것은 그 도를 잃었기 때문이다. '도적을 막는 데 씀이 이롭다'는 것은 순하게 서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혹 평평한 가지를 얻는다'는 것은 순하고 공손하기 때문이다. '끝내 아무도 이기지 못하니 길하다'는 것은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 깃을 의식에 쓸 수 있으니 길하다'는 것은 어지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귀매괘(歸妹卦): 나아가면 흉(凶)하니, 이로운 바가 없다. 초구(初九): 누이를 시집보내되 잉첩[娣]으로 보내니,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듯 하여 나아가면 길(吉)하다. 구이(九二): 애꾸눈이 볼 수 있듯 하니, 숨어 사는 사람의 정(貞)함이 이(利)하다. 육삼(六三): 누이를 시집보내되 기다리게 하니[須], 돌아와 잉첩으로 시집간다. 구사(九四): 누이를 시집보냄에 기한을 넘기니, 늦게 시집가는 데는 때가 있다. 육오(六五): 제을(帝乙)이 누이를 시집보내니, 그 정실[君]의 소매가 그 잉첩의 소매만큼 좋지 못하다. 달이 거의 보름이니, 길(吉)하다. 상육(上六): 여자가 광주리를 받드나 내용물이 없고, 남자가 양을 찌르나 피가 없으니, 이로운 바가 없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귀매는 천지의 큰 의리이다. 천지가 사귀지 않으면 만물이 일어나지 못하니, 귀매는 사람의 끝이자 시작이다. 기뻐하며 움직이니, 시집보내는 것은 누이이다. '나아가면 흉하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운 바가 없다'는 것은 유(柔)가 강(剛)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귀매이니, 군자는 이로써 끝을 길게 하고 폐단을 안다. '누이를 시집보내되 잉첩으로 보낸다'는 것은 항상한 도리이기 때문이다.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어 길하다'는 것은 서로 받들기 때문이다. '숨어 사는 사람의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아직 항상한 도리를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이를 시집보내되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아직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한을 넘기는' 뜻은 기다림이 있다가 행하는 것이다. '제을이 누이를 시집보낸다'는 것은 그 잉첩의 소매만큼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자리가 가운데 있으니, 귀함으로써 행한다. '상육이 내용물이 없다'는 것은 빈 광주리를 받드는 것이다.
풍괘(豐卦): 형(亨)하다. 왕이 이르니, 근심하지 말라, 해가 한가운데 있음이 마땅하다. 초구(初九): 그 짝이 되는 주인을 만나니, 비록 열흘이라도 무구(无咎)하고, 가면 숭상함이 있다. 육이(六二): 그 가리개[蔀]를 크게 하니 한낮에 북두성을 보고, 가면 의심과 미움을 얻으나, 믿음이 있어 [뜻을] 일으키면 길(吉)하다. 구삼(九三): 그 휘장[沛]을 크게 하니 한낮에 작은 별[沬]을 보고, 그 오른쪽 팔뚝을 부러뜨리나 무구(无咎)하다. 구사(九四): 그 가리개를 크게 하니 한낮에 북두성을 보나, 그 같은 부류의 주인[夷主]을 만나니 길(吉)하다. 육오(六五): 빛나는 인재를 오게 하니, 경사와 명예가 있어 길(吉)하다. 상육(上六): 그 집을 크게 하고 그 집안을 가리니, 그 문을 엿보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고 3년 동안 보지 못하니,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풍(豐)은 큼[大]이다. 밝으면서 움직이므로 풍성하다. '왕이 이른다'는 것은 큼을 숭상하는 것이다. '근심하지 말라, 해가 한가운데 있음이 마땅하다'는 것은 천하를 비춤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해가 한가운데 있으면 기울고, 달이 차면 이지러지니, 천지의 차고 빔도 때와 함께 줄고 불어나는데,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하물며 귀신에게 있어서랴?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우레와 번개가 함께 이르는 것이 풍이니, 군자는 이로써 옥사를 결단하고 형벌을 집행한다. '비록 열흘이라도 무구하다'는 것은 열흘을 넘기면 재앙이라는 것이다. '믿음이 있어 [뜻을] 일으킨다'는 것은 믿음으로 뜻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 휘장을 크게 한다'는 것은 큰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오른쪽 팔뚝을 부러뜨린다'는 것은 끝내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가리개를 크게 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낮에 북두성을 본다'는 것은 어두워 밝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 같은 부류의 주인을 만나니 길하다'는 것은 행하는 것이다. '육오의 길함'은 경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 집을 크게 한다'는 것은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 문을 엿보면 고요하여 사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숨기 때문이다.
여괘(旅卦): 조금 형(亨)하니, 나그네가 정(貞)하면 길(吉)하다. 초육(初六): 나그네가 자질구레하니, 이는 스스로 재앙을 취하는 것이다. 육이(六二): 나그네가 여관에 나아가 그 노자를 품고 어린 종의 정(貞)함을 얻는다. 구삼(九三): 나그네가 그 여관을 불태우고 그 어린 종을 잃으니, 정(貞)하여도 위태롭다. 구사(九四): 나그네가 머무는 곳에서 그 노자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육오(六五): 꿩을 쏘아 화살 하나를 잃으나, 끝내 명예와 작명(爵命)을 얻는다. 상구(上九): 새가 그 둥지를 불태우니, 나그네가 먼저는 웃고 뒤에는 울부짖는다. 쉬운 데서[易] 소를 잃으니,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여는 조금 형통하다'는 것은 유(柔)가 밖에서 가운데를 얻고 강(剛)에 순응하며, 그치고 밝음에 붙으니, 이 때문에 조금 형통하고 나그네가 정하면 길하다는 것이다. 여의 때와 뜻이 크도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불이 있는 것이 여이니, 군자는 이로써 밝고 신중하게 형벌을 쓰되 옥사를 지체하지 않는다. '나그네가 자질구레하다'는 것은 뜻이 궁하여 재앙을 부른다는 것이다. '어린 종의 정함을 얻는다'는 것은 끝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나그네가 그 여관을 불태운다'는 것은 또한 상하게 된 것이다. 나그네의 처지로 아랫사람을 대하니, 그 의리상 잃게 된다. '나그네가 머무는 곳'이라는 것은 아직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노자와 도끼를 얻는다'는 것은 마음이 아직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다. '끝내 명예와 작명을 얻는다'는 것은 위에 미치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처지로 위에 있으니, 그 의리상 불타게 된다. '쉬운 데서 소를 잃는다'는 것은 끝내 아무도 그것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손괘(巽卦): 조금 형(亨)하다. 갈 바가 있으면 이(利)하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利)하다. 초육(初六): 나아가고 물러나니, 무인(武人)의 정(貞)함이 이(利)하다. 구이(九二): 공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으니, 사관과 무당을 많이 쓰면 길(吉)하여 무구(无咎)하다. 구삼(九三): 자주 공손하니, 린(吝)하다. 육사(六四): 회(悔)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세 가지 짐승을 잡는다. 구오(九五): 정(貞)하면 길(吉)하여 회(悔)가 없어지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처음은 없으나 끝은 있으니, 경일(庚日)보다 사흘 앞서고 경일보다 사흘 뒤에 하면 길(吉)하다. 상구(上九): 공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으니, 그 노자와 도끼를 잃어, 정(貞)하여도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거듭된 손(巽)으로 명(命)을 거듭 펴니, 강(剛)이 중정(中正)에 공손하여 뜻이 행해진다. 유(柔)가 모두 강에 순응하니, 이 때문에 조금 형통하고, 갈 바가 있으면 이로우며,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서로 따르는 것이 손이니, 군자는 이로써 명을 거듭 펴서 일을 행한다. '나아가고 물러난다'는 것은 뜻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무인의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뜻이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많이 써서 길하다'는 것은 가운데를 얻었기 때문이다. '자주 공손하여 린하다'는 것은 뜻이 궁하기 때문이다. '사냥하여 세 가지 짐승을 잡는다'는 것은 공이 있다는 것이다. '구오의 길함'은 자리가 바르고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공손함이 평상 아래에 있다'는 것은 위에서 궁하다는 것이다. '그 노자와 도끼를 잃는다'는 것은 바르게 흉하다는 것이다.
태괘(兌卦): 형(亨)하다.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화합하여 기뻐하니, 길(吉)하다. 구이(九二): 믿음으로 기뻐하니 길(吉)하여, 회(悔)가 없어진다. 육삼(六三): 와서 기뻐하니, 흉(凶)하다. 구사(九四): 헤아려 기뻐하니 아직 편안하지 못하나, 병을 막으면 기쁨이 있다. 구오(九五): 깎아내는 [자를] 믿으니, 위태로움이 있다. 상육(上六): 이끌어 기뻐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태(兌)는 기뻐함[說]이다. 강(剛)이 가운데 있고 유(柔)가 밖에 있으니, 기뻐하되 정함이 이로우니, 이 때문에 하늘에 순응하고 사람에게 응한다. 기쁨으로 백성에 앞장서면 백성이 그 수고로움을 잊고, 기쁨으로 어려움을 무릅쓰면 백성이 그 죽음을 잊으니, 기쁨의 큼이여, 백성이 힘쓰는구나!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붙은 두 못이 태이니, 군자는 이로써 벗과 강습한다. '화합하여 기뻐함의 길함'은 행함에 아직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기뻐함의 길함'은 뜻을 믿기 때문이다. '와서 기뻐함의 흉함'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사의 기쁨'은 경사가 있다는 것이다. '깎아내는 자를 믿는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상육이 이끌어 기뻐한다'는 것은 아직 빛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환괘(渙卦): 형(亨)하니, 왕이 사당에 이르고, 큰 내를 건넘이 이(利)하며,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육(初六): 구원하는 말이 씩씩하니 길(吉)하여, 회(悔)가 없어진다. 구이(九二): 흩어질 때 그 안석[机]으로 달려가니, 회(悔)가 없어진다. 육삼(六三): 그 몸을 흩으니, 회(悔)가 없다. 육사(六四): 그 무리를 흩으니, 크게 길(吉)하다. 흩어서 언덕처럼 [모음이] 있으니, 보통 사람이 생각할 바가 아니다. 구오(九五): 흩어질 때 땀 흘리듯 그 큰 호령을 내고, 흩어질 때 왕이 머무르니, 무구(无咎)하다. 상구(上九): 그 피[血]를 흩어 멀리 떠나 나가니, 무구(无咎)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환(渙)은 형통하다. 강(剛)이 와서 궁하지 않고, 유(柔)가 밖에서 자리를 얻어 위와 함께한다. '왕이 사당에 이른다'는 것은 왕이 이에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나무를 타니 공이 있다는 것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바람이 물 위로 가는 것이 환이니, 선왕(先王)은 이로써 상제(上帝)께 제사를 올리고 사당을 세운다. '초육의 길함'은 순하기 때문이다. '흩어질 때 그 안석으로 달려간다'는 것은 원하는 바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 몸을 흩는다'는 것은 뜻이 밖에 있다는 것이다. '그 무리를 흩으니 크게 길하다'는 것은 빛나고 크다는 것이다. '왕이 머무르니 무구하다'는 것은 바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 피를 흩는다'는 것은 해로움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절괘(節卦): 형(亨)하다. 괴로운 절제는 정(貞)하게 지켜서는 안 된다. 초구(初九): 집 안뜰을 나가지 않으니, 무구(无咎)하다. 구이(九二): 대문 뜰을 나가지 않으니, 흉(凶)하다. 육삼(六三): 절제하지 않으면 탄식하게 되니, 무구(无咎)하다. 육사(六四): 편안한 절제이니, 형(亨)하다. 구오(九五): 달게 여기는 절제이니 길(吉)하고, 가면 숭상함이 있다. 상육(上六): 괴로운 절제이니, 정(貞)하면 흉(凶)하나 회(悔)가 없어진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절(節)은 형통하니, 강(剛)과 유(柔)가 나뉘고 강이 가운데를 얻었다. '괴로운 절제는 정하게 지켜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다. 기뻐하며 험한 데를 가고, 자리에 마땅하게 절제하며, 중정(中正)으로써 통한다. 천지가 절도가 있어 사계절이 이루어지니, 절제하여 제도를 만들면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위에 물이 있는 것이 절이니, 군자는 이로써 수(數)와 법도를 제정하고 덕행을 의논한다. '집 안뜰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통함과 막힘을 안다는 것이다. '대문 뜰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때를 잃음이 극심하다는 것이다. '절제하지 않아 탄식한다'면 또 누구를 탓하겠는가. '편안한 절제의 형통함'은 위의 도를 받들기 때문이다. '달게 여기는 절제의 길함'은 자리에 있어 가운데이기 때문이다. '괴로운 절제는 정하면 흉하다'는 것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다.
중부괘(中孚卦):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믿음이 미치면] 길(吉)하고, 큰 내를 건넘이 이(利)하며, 정(貞)함이 이(利)하다. 초구(初九): 헤아려 안정하면 길(吉)하니, 다른 [뜻이] 있으면 편안하지 못하다. 구이(九二): 우는 학이 그늘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하니, 나에게 좋은 술잔이 있어 내가 너와 함께 나눈다. 육삼(六三): 적수를 만나니, 혹 북을 치고 혹 그치며, 혹 울고 혹 노래한다. 육사(六四): 달이 거의 보름이니, 말의 짝을 잃으나 무구(无咎)하다. 구오(九五): 믿음이 있어 이어 매니, 무구(无咎)하다. 상구(上九): 닭 우는 소리가 하늘에 오르니, 정(貞)하여도 흉(凶)하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중부(中孚)는 유(柔)가 안에 있고 강(剛)이 가운데를 얻었다. 기뻐하고 공손하니, 믿음이 이에 나라를 교화한다. '돼지와 물고기가 길하다'는 것은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친다는 것이다.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는 것은 나무를 타되 배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중부로써 정함이 이로우니, 이에 하늘에 응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이니, 군자는 이로써 옥사를 의논하고 사형을 늦춘다. '초구가 헤아려 안정하면 길하다'는 것은 뜻이 아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새끼가 화답한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혹 북을 치고 혹 그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말의 짝을 잃는다'는 것은 무리를 끊고 위로 가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어 이어 맨다'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닭 우는 소리가 하늘에 오른다'면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소과(小過)는 형(亨)하다. 정(貞)함이 이(利)롭다. 작은 일은 할 수 있으나 큰일은 할 수 없다. 나는 새가 소리를 남기니, 위로 올라감은 마땅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감이 마땅하여 크게 길(吉)하다. 초육(初六)은 나는 새이니 이 때문에 흉(凶)하다. 육이(六二)는 그 할아버지를 지나 그 할머니를 만나고, 그 임금에 미치지 못하고 그 신하를 만나니 무구(无咎)하다. 구삼(九三)은 지나치지 말고 그것을 막아야 하니, 따르면 혹 그를 해칠 것이므로 흉(凶)하다. 구사(九四)는 무구(无咎)하니,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만난다. 가면 위태로우니 반드시 경계해야 하며, 오래 정(貞)함을 고수하지 말라. 육오(六五)는 짙은 구름이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으니 우리 서쪽 교외로부터 온다. 공(公)이 주살을 쏘아 굴에 있는 것을 잡는다.
상육(上六)은 만나지 못하고 지나쳐 가니, 나는 새가 그물에 걸린 것이라 흉(凶)하다. 이를 일러 재앙[災眚]이라 한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소과는 작은 것이 지나쳐서 형(亨)한 것이다. 지나치되 정(貞)함이 이로운 것은 때와 함께 행하기 때문이다. 유(柔)가 중(中)을 얻었으니 이 때문에 작은 일이 길하다. 강(剛)이 자리를 잃고 중(中)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큰일은 할 수 없다. 나는 새의 상(象)이 있으니, 나는 새가 소리를 남김에 위로 올라감은 마땅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감이 마땅하여 크게 길한 것은 위로는 거스르고 아래로는 순하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산 위에 우레가 있는 것이 소과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행실은 공손함에 지나치게 하고, 상(喪)은 슬픔에 지나치게 하며, 씀은 검소함에 지나치게 한다. 나는 새이니 이 때문에 흉하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임금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신하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르면 혹 그를 해친다는 것은 흉함이 어떠하겠느냐는 것이다. 지나치지 않고 그것을 만난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면 위태로우니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끝내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짙은 구름이 끼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위에 있기 때문이다. 만나지 못하고 지나쳐 간다는 것은 이미 높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기제(既濟)는 형(亨)함이 작다. 정(貞)함이 이롭다. 처음에는 길하나 끝에는 어지럽다. 초구(初九)는 그 수레바퀴를 끌고 그 꼬리를 적시니 무구(无咎)하다. 육이(六二)는 부인이 그 수레 가리개를 잃었으니 쫓지 말라. 7일이면 얻는다. 구삼(九三)은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이기니, 소인은 쓰지 말라. 육사(六四)는 [배에 물이 새면 막을] 헌 옷가지를 두고서 종일토록 경계한다. 구오(九五)는 동쪽 이웃이 소를 잡음이 서쪽 이웃의 약제(禴祭)가 실제로 그 복을 받는 것만 못하다. 상육(上六)은 그 머리를 적시니 위태롭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기제가 형하다는 것은 작은 것이 형한 것이다. 정함이 이로운 것은 강(剛)과 유(柔)가 바르고 자리가 마땅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길한 것은 유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끝에 그치면 어지러워지니 그 도(道)가 다하기 때문이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물이 불 위에 있는 것이 기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환난을 생각하여 미리 막는다. 그 수레바퀴를 끈다는 것은 의리상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7일이면 얻는다는 것은 중도(中道)로써 하기 때문이다. 3년 만에 이긴다는 것은 지쳤다는 것이다. 종일토록 경계한다는 것은 의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동쪽 이웃이 소를 잡음이 서쪽 이웃의 때에 맞음만 못하다는 것이며, 실제로 그 복을 받는다는 것은 길함이 크게 온다는 것이다. 그 머리를 적셔 위태롭다는 것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제(未濟)는 형(亨)하다. 어린 여우가 거의 건너다가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운 바가 없다. 초육(初六)은 그 꼬리를 적시니 린(吝)하다. 구이(九二)는 그 수레바퀴를 끄니 정(貞)하여 길(吉)하다. 육삼(六三)은 아직 건너지 못하였으니 나아가면 흉(凶)하나,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 구사(九四)는 정(貞)하여 길하니 회(悔)가 없어진다. 떨쳐 일어나 귀방(鬼方)을 정벌하여 3년 만에 대국(大國)으로부터 상을 받는다. 육오(六五)는 정(貞)하여 길하니 회(悔)가 없다. 군자의 빛이니, 믿음[孚]이 있어 길하다. 상구(上九)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니 무구(无咎)하나, 그 머리를 적시면 믿음을 두더라도 옳음을 잃는다.
단전(彖傳)에 이르기를, 미제가 형한 것은 유(柔)가 중(中)을 얻었기 때문이다. 어린 여우가 거의 건넜다는 것은 아직 [험난함의]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운 바가 없다는 것은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강(剛)과 유(柔)가 응(應)한다. 상전(象傳)에 이르기를, 불이 물 위에 있는 것이 미제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삼가 사물을 분별하여 [각기] 제자리에 있게 한다. 그 꼬리를 적신다는 것은 또한 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구이가 정하여 길하다는 것은 중(中)으로써 바름을 행하기 때문이다. 아직 건너지 못하였으니 나아가면 흉하다는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하여 길하고 회가 없어진다는 것은 뜻이 행해지기 때문이다. 군자의 빛이라는 것은 그 빛남이 길하다는 것이다.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신다는 것은 또한 절제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제1장]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건(乾)과 곤(坤)이 정해진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벌여 있으니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자리 잡는다. 움직임과 고요함에 일정함이 있으니 강(剛)과 유(柔)가 판가름된다. 방(方)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고 사물은 무리로 나뉘니 길흉(吉凶)이 생긴다. 하늘에서는 상(象)을 이루고 땅에서는 형(形)을 이루니 변화가 드러난다. 이 때문에 강과 유가 서로 갈고 팔괘(八卦)가 서로 흔들어, 우레와 천둥으로 고동시키고 바람과 비로 적시며, 해와 달이 운행하여 한 번 춥고 한 번 덥다. 건의 도(道)는 남성을 이루고 곤의 도는 여성을 이룬다. 건은 큰 시작을 주관하고 곤은 만물을 이룬다. 건은 쉬움[易]으로써 주관하고 곤은 간략함[簡]으로써 능하다. 쉬우면 알기 쉽고 간략하면 따르기 쉽다. 알기 쉬우면 친함이 있고 따르기 쉬우면 공(功)이 있다. 친함이 있으면 오래갈 수 있고 공이 있으면 커질 수 있다. 오래갈 수 있음은 현인(賢人)의 덕(德)이요, 커질 수 있음은 현인의 업(業)이다. 쉽고 간략하여 천하의 이치를 얻는다. 천하의 이치를 얻으면 그 가운데에 자리를 이룬다.
[제2장] 성인(聖人)이 괘(卦)를 베풀고 상(象)을 보며, 말[辭]을 달아 길흉을 밝히고, 강과 유가 서로 밀어 변화를 낳는다. 이 때문에 길흉이란 잃음과 얻음의 상이다. 회린(悔吝)이란 근심과 걱정의 상이다. 변화란 나아감과 물러남의 상이다. 강유(剛柔)란 낮과 밤의 상이다. 육효(六爻)의 움직임은 삼극(三極)의 도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머물러 편안히 여기는 것은 『역(易)』의 차례이고, 즐겨 완미하는 것은 효(爻)의 말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머물러 있을 때는 그 상을 보고 그 말을 완미하며, 움직일 때는 그 변화를 보고 그 점(占)을 완미한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제3장] 단(彖)은 상(象)을 말한 것이다. 효(爻)는 변화를 말한 것이다. 길흉은 그 잃음과 얻음을 말한 것이다. 회린은 그 작은 흠을 말한 것이다. 무구(无咎)는 허물을 잘 고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귀천을 벌이는 것은 자리[位]에 있고, 작고 큼을 가지런히 하는 것은 괘에 있으며, 길흉을 분별하는 것은 말[辭]에 있고, 회린을 근심하는 것은 기미[介]에 있으며, 무구로 떨쳐 일어남은 뉘우침에 있다. 이 때문에 괘에는 작고 큼이 있고 말에는 험함과 평이함이 있으니, 말이란 각기 그 나아갈 바를 가리킨다. [제4장]
『역』은 천지와 똑같으므로 천지의 도를 두루 얽어 낼 수 있다. 우러러 천문(天文)을 보고 굽어 지리(地理)를 살피니, 이 때문에 어둠과 밝음의 까닭을 안다. 시작을 근원하여 끝으로 돌이키므로 죽음과 삶의 설(說)을 안다. 정기(精氣)는 사물이 되고 떠도는 혼(魂)은 변화가 되니, 이 때문에 귀신(鬼神)의 실상을 안다. 천지와 서로 닮았으므로 어긋나지 않고, 앎이 만물에 두루 미쳐 도가 천하를 구제하므로 지나치지 않으며, 두루 행하되 흘러가지 않고 하늘을 즐기고 명(命)을 아므로 근심하지 않으며, 처한 곳을 편안히 여기고 인(仁)에 돈독하므로 사랑할 수 있다. 천지의 조화를 틀 지어 지나치지 않고, 만물을 곡진히 이루어 빠뜨리지 않으며, 낮과 밤의 도에 통달하여 아니, 그러므로 신(神)은 일정한 방소가 없고 『역』은 일정한 체(體)가 없다.
[제5장]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을 도(道)라 한다. 그것을 잇는 것은 선(善)이요, 그것을 이루는 것은 성(性)이다. 어진 자는 그것을 보고 인(仁)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보고 지(知)라 하며, 백성은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하니,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드물다. 인에서 드러나고 쓰임에 감추어지며, 만물을 고동시키되 성인과 근심을 같이하지 않으니, 성대한 덕과 큰 업이 지극하도다! 풍부하게 가진 것을 큰 업이라 하고, 날로 새로워지는 것을 성대한 덕이라 하며, 낳고 또 낳는 것을 역(易)이라 하고, 상을 이루는 것을 건(乾)이라 하며, 법을 본받는 것을 곤(坤)이라 하고, 수(數)를 다하여 미래를 아는 것을 점(占)이라 하며, 변화에 통하는 것을 사(事)라 하고, 음양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제6장] 무릇 『역』은 넓도다! 크도다! 먼 것을 말하면 막힘이 없고, 가까운 것을 말하면 고요하고 바르며, 천지 사이를 말하면 갖추어져 있도다! 무릇 건은 고요할 때는 전일(專一)하고 움직일 때는 곧으니, 이 때문에 크게 낳는다. 무릇 곤은 고요할 때는 닫히고 움직일 때는 열리니, 이 때문에 넓게 낳는다. 넓고 큼은 천지에 짝하고, 변하여 통함은 사시(四時)에 짝하며, 음양의 뜻은 해와 달에 짝하고, 쉽고 간략함의 선(善)은 지극한 덕에 짝한다. [제7장]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역』은 지극하도다! 무릇 『역』은 성인이 덕을 높이고 업을 넓히는 바이다. 앎은 높이고 예(禮)는 낮추니, 높임은 하늘을 본받고 낮춤은 땅을 본받는다. 천지가 자리를 베풀매 『역』이 그 가운데에서 행해진다. 이루어진 성(性)을 보존하고 또 보존하는 것이 도의(道義)의 문이다."
[제8장] 성인은 천하의 심오한 것을 보고서 그 형용에 견주고 그 사물의 마땅함을 형상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를 상(象)이라 한다. 성인은 천하의 움직임을 보고서 그 모이고 통하는 것을 살펴 그 전례(典禮)를 행하고, 말을 달아 그 길흉을 판단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를 효(爻)라 한다. 천하의 지극히 심오한 것을 말하되 싫어할 수 없고, 천하의 지극한 움직임을 말하되 어지럽힐 수 없다. 견준 뒤에 말하고 헤아린 뒤에 움직이니, 견주고 헤아려 그 변화를 이룬다. "우는 학이 그늘에 있으니 그 새끼가 화답한다. 내게 좋은 술잔이 있으니 내가 너와 함께 나누리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그 집에 머물며 말을 냄이 선하면 천 리 밖에서도 응하니 하물며 가까운 자이겠는가! 그 집에 머물며 말을 냄이 선하지 않으면 천 리 밖에서도 어기니 하물며 가까운 자이겠는가! 말은 몸에서 나와 백성에게 더해지고, 행실은 가까운 데서 일어나 먼 데서 드러난다. 말과 행실은 군자의 지도리와 쇠뇌 틀[樞機]이니, 지도리와 쇠뇌 틀의 발동은 영예와 치욕의 주인이다. 말과 행실은 군자가 천지를 움직이는 바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동인(同人)은 먼저 울부짖다가 뒤에 웃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는 혹 나아가고 혹 머물며, 혹 침묵하고 혹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는다.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초육(初六)은 흰 띠풀을 깔아 쓰니 무구(无咎)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땅에 두기만 해도 될 것인데, 띠풀을 깔아 쓰니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삼감이 지극한 것이다. 무릇 띠풀이라는 물건은 하찮으나 쓰임은 중하게 할 수 있으니, 이 방법을 삼가서 나아가면 잃는 바가 없을 것이다." "수고로우면서도 겸손하니 군자가 끝마침이 있어 길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수고롭되 자랑하지 않고 공이 있되 덕으로 여기지 않으니 두터움이 지극한 것이다. 그 공을 가지고서 남에게 낮추는 자를 말한 것이다. 덕은 성대함을 말하고 예는 공손함을 말하니, 겸손이란 공손함을 다하여 그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높이 오른 용이니 회(悔)가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귀하되 자리가 없고 높되 백성이 없으며, 현인이 아래 자리에 있으나 보필함이 없으니, 이 때문에 움직이면 회가 있다." "문 밖 뜰에 나가지 않으니 무구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어지러움이 생기는 것은 언어가 그 계단이 된다. 임금이 치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치밀하지 못하면 몸을 잃으며, 기밀한 일이 치밀하지 못하면 해로움이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군자는 삼가고 치밀하여 [말을] 내지 않는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역』을 지은 자는 도둑을 알았을 것이다! 『역』에 이르기를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타니 도적이 이르게 한다.'라고 하였다. 짐을 지는 것은 소인의 일이다. 수레를 타는 것은 군자의 기물이다. 소인이면서 군자의 기물을 타니 도둑이 그것을 빼앗을 생각을 한다. 위가 태만하고 아래가 포악하니 도둑이 그를 칠 생각을 한다. 감추기를 태만히 함은 도둑질을 가르치는 것이고, 용모를 요염하게 꾸밈은 음란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역』에 이르기를 '짐을 지고 또 수레를 타니 도적이 이르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도둑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제9장] 하늘은 1이요 땅은 2이며, 하늘은 3이요 땅은 4이며, 하늘은 5요 땅은 6이며, 하늘은 7이요 땅은 8이며, 하늘은 9요 땅은 10이다. 하늘의 수가 다섯이고 땅의 수가 다섯이니, 다섯 자리가 서로 얻어 각각 합함이 있다. 하늘의 수는 25이고 땅의 수는 30이니, 무릇 천지의 수는 55이다. 이것이 변화를 이루고 귀신을 행하게 하는 바이다. 대연(大衍)의 수는 50인데 그 쓰는 것은 49이다. 나누어 둘로 하여 양의(兩儀)를 형상하고, 하나를 걸어 삼재(三才)를 형상하며, 넷씩 세어 사시(四時)를 형상하고,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윤달을 형상한다. 5년에 윤달이 두 번이므로 두 번 끼운 뒤에 건다.
건(乾)의 책수(策數)는 216이고 곤(坤)의 책수는 144이니, 모두 360으로 1년[期]의 날수에 해당한다. 두 편(篇)의 책수는 11,520이니 만물의 수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네 번 경영하여 역(易)을 이루고, 열여덟 번 변하여 괘를 이루며, 팔괘로 작게 이루어진다. 이를 끌어 펴고 같은 종류에 닿아 늘려 나가면 천하의 할 수 있는 일이 다한다. 도를 드러내고 덕행을 신묘하게 하니, 이 때문에 [사람과] 더불어 수작할 수 있고 신(神)을 도울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변화의 도를 아는 자는 신이 하는 바를 알 것이다!"
[제10장] 『역』에는 성인의 도가 네 가지 있으니, 말하는 것으로써 하는 자는 그 말[辭]을 숭상하고, 움직이는 것으로써 하는 자는 그 변화를 숭상하며, 기물을 만드는 것으로써 하는 자는 그 상(象)을 숭상하고, 복서(卜筮)로써 하는 자는 그 점(占)을 숭상한다. 이 때문에 군자가 장차 무엇을 하려 할 때나 장차 행하려 할 때 물어서 말로써 하면, 그 명(命)을 받음이 메아리와 같아서 멀고 가깝고 그윽하고 깊음이 없이 마침내 미래의 일을 안다. 천하의 지극히 정밀한 것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셋씩 다섯씩 섞어 변하고 그 수를 엇갈리고 모아서, 그 변화에 통하여 마침내 천하의 문(文)을 이루고, 그 수를 다하여 마침내 천하의 상을 정한다. 천하의 지극한 변화가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역』은 생각함이 없고 함이 없어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감응하면 마침내 천하의 연고에 통한다. 천하의 지극히 신묘한 것이 아니면 그 누가 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무릇 『역』은 성인이 깊은 것을 다하고 기미[幾]를 연구하는 바이다! 오직 깊으므로 천하의 뜻에 통할 수 있고, 오직 기미이므로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있으며, 오직 신묘하므로 서두르지 않아도 빠르고 가지 않아도 이른다. 공자께서 "『역』에는 성인의 도가 네 가지 있다."라고 하신 것은 이를 이른 것이다. [제1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릇 『역』은 무엇을 하는 것인가? 무릇 『역』은 사물을 열고 일을 이루어 천하의 도를 덮으니, 이와 같을 따름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이로써 천하의 뜻에 통하고, 천하의 업을 정하며, 천하의 의심을 판단한다. 이 때문에 시초[蓍]의 덕은 둥글어 신묘하고, 괘의 덕은 방정하여 지혜로우며, 육효의 뜻은 변하여 [길흉을] 알려 준다. 성인은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나 은밀한 데 감추며, 길흉에 백성과 근심을 같이한다. 신묘함으로 미래를 알고 지혜로 지난 것을 간직하니, 그 누가 이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옛날의 총명하고 예지(叡知)하며 신무(神武)하되 죽이지 않는 자일 것이다! 이 때문에 하늘의 도에 밝고 백성의 연고를 살펴, 이에 신물(神物)을 일으켜 백성의 쓰임에 앞서게 하였다. 성인은 이로써 재계(齊戒)하여 그 덕을 신명(神明)하게 하였도다! 이 때문에 문을 닫는 것을 곤(坤)이라 하고 문을 여는 것을 건(乾)이라 하며, 한 번 닫고 한 번 여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가고 옴이 다하지 않는 것을 통(通)이라 하며, 드러난 것을 상(象)이라 하고, 형체를 갖춘 것을 기(器)라 하며, 만들어 쓰는 것을 법(法)이라 하고, 이롭게 써서 드나들며 백성이 모두 그것을 쓰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이 때문에 『역』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으며, 팔괘는 길흉을 정하고, 길흉은 큰 업을 낳는다. 이 때문에 본받을 상(象)으로는 천지보다 큰 것이 없고, 변하여 통함으로는 사시보다 큰 것이 없으며, 상을 걸어 밝게 드러냄으로는 해와 달보다 큰 것이 없고, 숭고함으로는 부귀보다 큰 것이 없으며, 사물을 갖추어 쓰임을 이루고 기물을 만들어 천하의 이로움으로 삼음으로는 성인보다 큰 것이 없고, 심오한 것을 탐구하고 숨은 것을 찾으며 깊은 것을 낚고 먼 것에 이르러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의 부지런히 힘쓸 일[亹亹]을 이루게 함으로는 시초와 거북보다 큰 것이 없다. 이 때문에 하늘이 신물을 낳으니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삼았다. 천지가 변화하니 성인이 이를 본받았다. 하늘이 상을 드리워 길흉을 보이니 성인이 이를 형상하였다. 황하에서 그림[河圖]이 나오고 낙수에서 글[洛書]이 나오니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삼았다. 『역』에 사상이 있는 것은 보이기 위한 것이다. 말을 단 것은 알리기 위한 것이다. 길흉으로 정한 것은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제12장] 『역』에 이르기를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祐)는 돕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돕는 바는 순(順)한 자이다. 사람이 돕는 바는 믿음[信]이 있는 자이다. 믿음을 실천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또 현인을 숭상하니,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성인의 뜻은 볼 수 없는 것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성인은 상을 세워 뜻을 다하고, 괘를 베풀어 참과 거짓을 다하며, 말을 달아 그 말을 다하고, 변하여 통하게 하여 이로움을 다하며, 고동시키고 춤추게 하여 신묘함을 다하였다."
건곤은 『역』의 온축(縕蓄)일 것이다! 건곤이 벌여 있으니 『역』이 그 가운데 선다. 건곤이 무너지면 『역』을 볼 수 없고, 『역』을 볼 수 없으면 건곤도 혹 거의 그칠 것이다. 이 때문에 형체 위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체 아래의 것을 기(器)라 하며, 화(化)하여 마름질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미루어 행하는 것을 통(通)이라 하며, 들어서 천하의 백성에게 베푸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한다. 이 때문에 무릇 상(象)은 성인이 천하의 심오한 것을 보고서 그 형용에 견주고 그 사물의 마땅함을 형상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를 상이라 한다. 성인이 천하의 움직임을 보고서 그 모이고 통하는 것을 살펴 그 전례를 행하고 말을 달아 그 길흉을 판단하였으니, 이 때문에 이를 효라 한다. 천하의 심오한 것을 다함은 괘에 있고, 천하의 움직임을 고동시킴은 말[辭]에 있으며, 화하여 마름질함은 변에 있고, 미루어 행함은 통에 있으며, 신묘하게 하여 밝힘은 그 사람에게 있고, 묵묵히 이루며 말하지 않아도 믿음은 덕행에 있다.
[제1장] 팔괘가 벌여 이루어지니 상(象)이 그 가운데 있다. 그로 인하여 거듭하니 효(爻)가 그 가운데 있다. 강과 유가 서로 미니 변(變)이 그 가운데 있다. 말을 달아 명(命)하니 동(動)이 그 가운데 있다. 길흉회린(吉凶悔吝)은 움직임에서 생기는 것이다. 강유는 근본을 세우는 것이고, 변통(變通)은 때를 좇는 것이며, 길흉은 바름[貞]으로 이기는 것이다. 천지의 도는 바름으로 보여 주는 것이고, 해와 달의 도는 바름으로 밝히는 것이며, 천하의 움직임은 하나에 바르게 되는 것이다. 무릇 건은 확연히 사람에게 쉬움을 보이고, 무릇 곤은 퇴연(隤然)히 사람에게 간략함을 보인다. 효란 이것을 본받은 것이고, 상이란 이것을 형상한 것이다. 효와 상이 안에서 움직이면 길흉이 밖에 드러나고, 공업(功業)은 변화에서 드러나며, 성인의 뜻은 말에서 드러난다. 천지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하고, 성인의 큰 보배를 위(位)라 한다. 무엇으로 자리를 지키는가, 인(仁)이라 한다. 무엇으로 사람을 모으는가, 재물이라 한다. 재물을 다스리고 말을 바르게 하며 백성이 그릇된 짓을 하지 못하게 금하는 것을 의(義)라 한다.
[제2장] 옛날 포희씨(包犧氏)가 천하에 왕 노릇 할 때, 우러러서는 하늘에서 상을 보고 굽어서는 땅에서 법을 보며,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보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사물에서 취하였다. 이에 비로소 팔괘를 지어 신명(神明)의 덕에 통하고 만물의 실정을 분류하였다. 노끈을 맺어 그물을 만들어 사냥하고 고기 잡게 하였으니, 대개 이괘(離卦)에서 취하였다. 포희씨가 죽고 신농씨(神農氏)가 일어나, 나무를 깎아 보습을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 자루를 만들어 쟁기와 김매기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가르쳤으니, 대개 익괘(益卦)에서 취하였다. 한낮에 시장을 열어 천하의 백성을 이르게 하고 천하의 재화를 모아 교역하고 물러나 각기 그 바라는 바를 얻게 하였으니, 대개 서합괘(噬嗑卦)에서 취하였다.
신농씨가 죽고 황제(黃帝)·요(堯)·순(舜)씨가 일어나, 그 변화에 통하여 백성이 게을러지지 않게 하고, 신묘하게 교화하여 백성이 마땅히 여기게 하였다.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황제·요·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매 천하가 다스려졌으니, 대개 건괘와 곤괘에서 취하였다.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들어, 배와 노의 이로움으로 통하지 못하는 곳을 건너고 먼 곳에 이르러 천하를 이롭게 하였으니, 대개 환괘(渙卦)에서 취하였다.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운 것을 끌고 먼 곳에 이르러 천하를 이롭게 하였으니, 대개 수괘(隨卦)에서 취하였다. 문을 겹으로 하고 딱따기를 쳐서 난폭한 손님에 대비하였으니, 대개 예괘(豫卦)에서 취하였다.
나무를 잘라 절굿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절구를 만들어, 절구와 절굿공이의 이로움으로 만민이 구제되었으니, 대개 소과괘(小過卦)에서 취하였다. 나무에 시위를 매어 활을 만들고 나무를 깎아 화살을 만들어, 활과 화살의 이로움으로 천하를 위압하였으니, 대개 규괘(睽卦)에서 취하였다. 상고에는 굴에서 살고 들에서 거처하였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궁실로 바꾸어 위에는 마룻대를 두고 아래에는 처마를 두어 바람과 비에 대비하였으니, 대개 대장괘(大壯卦)에서 취하였다. 옛날의 장례는 섶으로 두텁게 입혀 들 가운데 장사 지내고, 봉분을 쌓지 않고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상기(喪期)에 정한 수가 없었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관곽(棺槨)으로 바꾸었으니, 대개 대과괘(大過卦)에서 취하였다.
상고에는 노끈을 맺어 다스렸는데, 후세의 성인이 이를 서계(書契)로 바꾸어 백관이 이로써 다스리고 만민이 이로써 살폈으니, 대개 쾌괘(夬卦)에서 취하였다. [제3장] 이 때문에 『역』이란 상(象)이다. 상이란 형상함[像]이다. 단(彖)이란 재료[材]이다. 효란 천하의 움직임을 본받은 것이다. 이 때문에 길흉이 생기고 회린이 드러난다. 양괘(陽卦)에는 음이 많고 음괘(陰卦)에는 양이 많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양괘는 홀수이고 음괘는 짝수이기 때문이다. 그 덕행은 어떠한가? 양은 임금이 하나이고 백성이 둘이니 군자의 도이다. 음은 임금이 둘이고 백성이 하나이니 소인의 도이다.
[제4장] 『역』에 이르기를 "자주자주 오가니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른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천하는 돌아가는 곳은 같으나 길이 다르고, 이르는 곳은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해가 가면 달이 오고 달이 가면 해가 오니, 해와 달이 서로 밀어 밝음이 생긴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면 추위가 오니, 추위와 더위가 서로 밀어 해[歲]가 이루어진다. 가는 것은 굽힘이요 오는 것은 폄[信]이다. 굽힘과 폄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펴기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용과 뱀이 칩거하는 것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의리를 정밀히 하여 신묘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쓰임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쓰임을 이롭게 하고 몸을 편안히 하는 것은 덕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를 넘어서 나아가는 것은 혹 알 수 없다. 신묘함을 다하고 변화를 아는 것은 덕의 성대함이다."
『역』에 이르기를 "돌에 곤궁하고 가시덤불에 의지하며, 그 집에 들어가도 그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곤궁할 바가 아닌데 곤궁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되고, 의지할 바가 아닌데 의지하니 몸이 반드시 위태롭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우니 죽을 때가 장차 이를 것인데,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역』에 이르기를 "공(公)이 높은 담 위에서 새매를 쏘아 잡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새매는 날짐승이고 활과 화살은 기물이다. 그것을 쏘는 것은 사람이다. 군자가 기물을 몸에 간직하였다가 때를 기다려 움직이니 무슨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움직임에 막힘이 없으니,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다. 기물을 갖추고서 움직이는 자를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소인은 어질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롭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로움을 보지 않으면 힘쓰지 않고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는다. 작게 징계하여 크게 경계하게 하니, 이것이 소인의 복이다. 『역』에 이르기를 '차꼬를 신겨 발꿈치를 없애니 무구하다.'라고 한 것은 이를 이른 것이다. 선은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루기에 부족하고, 악은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하기에 부족하다. 소인은 작은 선을 이로움이 없다고 여겨 하지 않고, 작은 악을 해로움이 없다고 여겨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이 쌓여 가릴 수 없고 죄가 커져 풀 수 없다. 『역』에 이르기를 '칼[枷]을 메어 귀를 없애니 흉하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로워지는 자는 그 자리를 편안히 여기는 자이다. 망하는 자는 그 존속함을 보전하려는[만 여기는] 자이다. 어지러워지는 자는 그 다스려짐을 [당연히] 가졌다고 여기는 자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속해도 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으니,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고 국가를 보전할 수 있다. 『역』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하여 무성한 뽕나무에 매어 둔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이 얇은데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은데 꾀하는 것이 크며, 힘이 작은데 짐이 무거우면 [화에] 미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역』에 이르기를 '솥이 다리가 부러져 공(公)의 음식을 엎으니 그 모양이 젖어 흉하다.'라고 하였으니, 그 소임을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기미를 아는 것은 신묘할 것이다! 군자는 위와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와 사귀되 함부로 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일 것이다! 기미란 움직임의 은미한 것이요 길함이 먼저 드러나는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역』에 이르기를 '돌처럼 굳으니 하루를 마치지 않아도 정(貞)하여 길하다.'라고 하였다. 돌처럼 굳으니 어찌 하루를 다하겠는가, 판단하여 알 수 있다. 군자는 은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부드러움을 알고 굳셈을 아니, 만 사람이 우러러보는 바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안씨(顏氏)의 아들[안회(顏回)]은 거의 [도에] 가까울 것이다! 선하지 않음이 있으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다시 행한 적이 없었다. 『역』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돌아오니 후회에 이르지 않아 원길(元吉)하다.'라고 하였다. 천지의 기운이 서로 얽혀 만물이 화하여 순후해지고, 남녀가 정기를 합하여 만물이 화하여 생겨난다. 『역』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잃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라고 하였으니, 하나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그 몸을 편안히 한 뒤에 움직이고, 그 마음을 평이하게 한 뒤에 말하며, 그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한다.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하다. 위태롭게 움직이면 백성이 함께하지 않는다. 두려워하며 말하면 백성이 응하지 않는다. 사귐이 없이 구하면 백성이 주지 않는다. 함께하는 자가 없으면 해치는 자가 이른다. 『역』에 이르기를 '보태 주는 이가 없고 혹 치는 이가 있으니, 마음을 세움에 항상됨이 없으면 흉하다.'라고 하였다." [제5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건곤은 『역』의 문일 것이다! 건은 양(陽)의 물건이고 곤은 음(陰)의 물건이다. 음양이 덕을 합하여 강유에 체(體)가 있으니, 이로써 천지의 일을 체현하고 신명의 덕에 통한다." 그 이름을 일컬음이 잡다하나 넘어서지 않으니, 그 종류를 상고해 보면 쇠퇴한 세상의 뜻일 것이다! 무릇 『역』은 지나간 것을 밝히고 올 것을 살피며, 은미한 것을 드러내고 그윽한 것을 밝히며, 열어서 이름에 맞게 하고 사물을 분별하며, 말을 바르게 하고 말[辭]을 판단하니 갖추어졌다. 그 이름을 일컬음은 작으나 그 종류를 취함은 크며, 그 뜻은 멀고 그 말은 문채가 있으며, 그 말은 굽으나 맞고 그 일은 펼쳐져 있으나 숨어 있으니, 의심[貳]으로 인하여 백성의 행함을 구제하고 잃음과 얻음의 보응을 밝힌다.
[제6장] 『역』이 일어난 것은 중고(中古) 시대일 것이다! 『역』을 지은 자는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이괘(履卦)는 덕의 기초이다. 겸괘(謙卦)는 덕의 자루이다. 복괘(復卦)는 덕의 근본이다. 항괘(恒卦)는 덕의 견고함이다. 손괘(損卦)는 덕의 닦음이다. 익괘(益卦)는 덕의 넉넉함이다. 곤괘(困卦)는 덕의 분별이다. 정괘(井卦)는 덕의 터전이다. 손괘(巽卦)는 덕의 제어이다. 이(履)는 화합하면서 지극하다. 겸(謙)은 높으면서 빛난다. 복(復)은 작으면서 사물을 분별한다. 항(恒)은 섞여 있으면서 싫어하지 않는다. 손(損)은 먼저는 어렵고 뒤에는 쉽다. 익(益)은 넉넉함을 기르되 꾸미지 않는다. 곤(困)은 궁하면서 통한다. 정(井)은 제자리에 있으면서 옮겨 준다. 손(巽)은 [사리에] 맞게 저울질하면서 드러내지 않는다.
이(履)로써 화합하여 행한다. 겸(謙)으로써 예를 절제한다. 복(復)으로써 스스로를 안다. 항(恒)으로써 덕을 한결같이 한다. 손(損)으로써 해로움을 멀리한다. 익(益)으로써 이로움을 일으킨다. 곤(困)으로써 원망을 적게 한다. 정(井)으로써 의(義)를 분별한다. 손(巽)으로써 권도(權道)를 행한다. [제7장] 『역』이라는 책은 멀리할 수 없고, 그 도는 자주 옮긴다. 변동하여 머물지 않고 육허(六虛)를 두루 흘러,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고 강유가 서로 바뀌니, 고정된 법칙으로 삼을 수 없고 오직 변화가 나아가는 대로 따른다. 그 나가고 들어옴이 법도로써 하여 밖과 안에서 두려움을 알게 한다. 또 우환과 그 연고를 밝혀, 스승과 보호자가 없어도 부모를 대하는 듯하게 한다. 처음에 그 말을 따라 그 방향을 헤아리면 이미 일정한 법도가 있으나,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도가 헛되이 행해지지 않는다.
『역』이라는 책은 시작을 근원하고 끝을 요약하여 바탕으로 삼는다. 육효가 서로 섞이는 것은 오직 그 때와 사물이다. 그 초효(初爻)는 알기 어렵고 그 상효(上爻)는 알기 쉬우니, 뿌리와 끝이기 때문이다. 초효의 말로 견주고 끝에서 이를 완성한다. 사물을 섞고 덕을 가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으로 말하면, 그 중효(中爻)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아, 또한 존망과 길흉을 요약하면 가만히 앉아서도 알 수 있다. 지혜로운 자가 그 단사(彖辭)를 보면 생각이 반을 넘을 것이다. [제8장] 이효(二爻)와 사효(四爻)는 공(功)은 같으나 자리가 다르니 그 선함이 같지 않다. 이효는 명예가 많고 사효는 두려움이 많으니, [오효(五爻)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柔)의 도는 [존위에] 가까운 것이 이롭지 않으나, 그 요체가 허물이 없는 것은 그 유로써 중(中)에 있기 때문이다. 삼효(三爻)와 오효는 공은 같으나 자리가 다르니 그 만나는 바가 같지 않다. 삼효는 흉함이 많고 오효는 공이 많으니, 귀천의 등급 때문이다. 그 유는 위태롭고 그 강은 이겨 내는 것인가?
『역』이라는 책은 넓고 커서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늘의 도가 있고, 사람의 도가 있으며, 땅의 도가 있으니, 삼재(三才)를 겸하여 둘씩 하였으므로 여섯이다. 여섯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삼재의 도이다. 도에 변동이 있으므로 효(爻)라 하고, 효에 등급이 있으므로 물(物)이라 하며, 물이 서로 섞이므로 문(文)이라 하고, 문이 마땅하지 않으므로 길흉이 생긴다. 『역』이 일어난 것은 은(殷)나라의 말세, 주(周)나라의 덕이 성할 때에 해당할 것이다!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에 해당할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말이 위태로우니, 위태롭게 여기는 자는 평안하게 하고 쉽게 여기는 자는 기울게 한다. 그 도가 매우 커서 온갖 사물을 폐하지 않으니, 두려워하여 처음과 끝을 삼가면 그 요체는 허물이 없는 것이다. 이를 일러 『역』의 도라 한다.
[제9장] 무릇 건은 천하의 지극히 굳센 것이니, 덕행이 항상 쉬워서 험함을 안다. 무릇 곤은 천하의 지극히 순한 것이니, 덕행이 항상 간략하여 막힘을 안다. 마음에 기뻐할 수 있고 생각을 연마할 수 있어,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의 부지런히 힘쓸 일을 이룬다. 이 때문에 변화하고 말하고 행함에, 길한 일에는 상서가 있고, 일을 형상하여 기물을 알며, 일을 점쳐 미래를 안다. 천지가 자리를 베풀고 성인이 능함을 이루니, 사람이 꾀하고 귀신이 꾀하여 백성도 그 능함에 참여한다. 팔괘는 상(象)으로 알리고 효사와 단사는 실정으로 말하니, 강유가 섞여 있어 길흉을 볼 수 있다. 변동은 이로움으로 말하고 길흉은 실정에 따라 옮겨 간다. 이 때문에 사랑과 미움이 서로 공격하여 길흉이 생기고, 멀고 가까움이 서로 취하여 회린이 생기며, 참과 거짓이 서로 감응하여 이로움과 해로움이 생긴다. 무릇 『역』의 실정은 가까우면서 서로 얻지 못하면 흉하거나 혹 해치며, 뉘우치고 또 부끄럽게 된다. 장차 배반하려는 자는 그 말이 부끄러워하고, 마음속에 의심하는 자는 그 말이 갈라지며, 길한 사람의 말은 적고, 조급한 사람의 말은 많으며, 선을 모함하는 사람은 그 말이 떠돌고, 그 지킬 바를 잃은 자는 그 말이 굽는다.
[제1장] 옛날 성인이 『역』을 지을 때, 신명(神明)을 그윽이 도와 시초[蓍]를 낳게 하였다. 하늘을 셋으로 하고 땅을 둘로 하여 수(數)를 세우고, 음양에서 변화를 보아 괘를 세우며, 강유를 발휘하여 효를 낳고, 도덕에 화순(和順)하여 의(義)로 다스리며, 이치를 궁구하고 성(性)을 다하여 명(命)에 이르렀다. [제2장] 옛날 성인이 『역』을 지을 때, 장차 성명(性命)의 이치를 따르고자 하였다. 이 때문에 하늘의 도를 세워 음(陰)과 양(陽)이라 하고, 땅의 도를 세워 유(柔)와 강(剛)이라 하며, 사람의 도를 세워 인(仁)과 의(義)라 하였다. 삼재를 겸하여 둘씩 하였으므로 『역』은 여섯 획으로 괘를 이룬다. 음으로 나누고 양으로 나누며 유와 강을 번갈아 쓰므로 『역』은 여섯 자리로 문장을 이룬다.
[제3장]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하고,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물과 불이 서로 싫어하지 않는다. 팔괘가 서로 섞이니, 지나간 것을 세는 것은 순(順)이요 올 것을 아는 것은 역(逆)이다. 이 때문에 『역』은 거슬러 세는 것이다. [제4장] 우레로써 움직이고, 바람으로써 흩으며, 비로써 적시고, 해로써 말리며, 간(艮)으로써 그치게 하고, 태(兌)로써 기쁘게 하며, 건(乾)으로써 임금 노릇 하고, 곤(坤)으로써 간직한다. [제5장] 상제(上帝)가 진(震)에서 나오고, 손(巽)에서 가지런히 하며, 이(離)에서 서로 보고, 곤(坤)에서 일을 맡기며, 태(兌)에서 기뻐하고, 건(乾)에서 싸우며, 감(坎)에서 수고하고, 간(艮)에서 이룬다.
만물은 진(震)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다. 손(巽)에서 가지런히 하니, 손은 동남이다.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만물이 깨끗하고 가지런해짐을 말한다. 이(離)란 밝음이니, 만물이 모두 서로 보는 것으로 남방의 괘이다. 성인이 남쪽을 향하여 천하[의 일]를 듣고 밝음을 향하여 다스리는 것은 대개 여기서 취하였다. 곤(坤)이란 땅이니, 만물이 모두 [여기에서] 기름을 받으므로 곤에서 일을 맡긴다고 한다. 태(兌)는 한가을이다.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태에서 기뻐한다고 한다. 건(乾)에서 싸우니, 건은 서북의 괘이다. 음양이 서로 부딪침을 말한다.
감(坎)이란 물이니, 정북방의 괘이며 수고로운 괘이고 만물이 돌아가는 바이므로 감에서 수고한다고 한다. 간(艮)은 동북의 괘이니, 만물이 끝을 이루고 시작을 이루는 바이므로 간에서 이룬다고 한다. [제6장] 신(神)이란 만물을 묘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만물을 움직이는 것은 우레보다 빠른 것이 없다. 만물을 휘게 하는 것은 바람보다 빠른 것이 없다. 만물을 말리는 것은 불보다 더 말리는 것이 없다. 만물을 기쁘게 하는 것은 못보다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
만물을 적시는 것은 물보다 더 적시는 것이 없다. 만물을 끝맺고 만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간(艮)보다 성대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물과 불이 서로 미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어긋나지 않으며,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한 뒤에야 변화하여 만물을 다 이룰 수 있다. [제7장] 건은 굳셈이다. 곤은 순함이다. 진은 움직임이다. 손은 들어감이다. 감은 빠짐이다. 이는 걸림[麗]이다. 간은 그침이다. 태는 기쁨이다. [제8장] 건은 말이 되고, 곤은 소가 되며, 진은 용이 되고, 손은 닭이 되며, 감은 돼지가 되고, 이는 꿩이 되며, 간은 개가 되고, 태는 양이 된다.
[제9장] 건은 머리가 되고, 곤은 배가 되며, 진은 발이 되고, 손은 넓적다리가 되며, 감은 귀가 되고, 이는 눈이 되며, 간은 손이 되고, 태는 입이 된다. [제10장] 건은 하늘이므로 아버지라 일컫고, 곤은 땅이므로 어머니라 일컫는다. 진은 첫 번째 구하여 아들을 얻었으므로 장남이라 하고, 손은 첫 번째 구하여 딸을 얻었으므로 장녀라 한다. 감은 두 번째 구하여 아들을 얻었으므로 중남이라 하고, 이는 두 번째 구하여 딸을 얻었으므로 중녀라 한다. 간은 세 번째 구하여 아들을 얻었으므로 소남이라 하고, 태는 세 번째 구하여 딸을 얻었으므로 소녀라 한다.
[제11장] 건은 하늘이 되고, 둥근 것이 되며, 임금이 되고, 아버지가 되며, 옥이 되고, 쇠가 되며, 추위가 되고, 얼음이 되며, 크게 붉은 것이 되고, 좋은 말이 되며, 늙은 말이 되고, 여윈 말이 되며, 얼룩말이 되고, 나무 열매가 된다. 곤은 땅이 되고, 어머니가 되며, 베가 되고, 가마솥이 되며, 인색함이 되고, 고름이 되며, 새끼 딸린 어미 소가 되고, 큰 수레가 되며, 무늬가 되고, 무리가 되며, 자루가 된다. 그것이 땅에 있어서는 검은 것이 된다. 진은 우레가 되고, 용이 되며, 검누른 것이 되고, 펼침[敷]이 되며, 큰길이 되고, 장자가 되며, 결단하고 조급함이 되고, 푸른 대나무가 되며, 물억새와 갈대가 된다.
그것이 말에 있어서는 잘 우는 것이 되고, 뒷발이 흰 것이 되며, 이마가 흰 것이 된다. 그것이 곡식에 있어서는 [싹이 껍질을 쓰고] 거꾸로 나는 것이 된다. 그 궁극에는 굳셈이 되고, 무성하고 선명한 것이 된다. 손은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며, 장녀가 되고, 먹줄의 곧음이 되며, 장인[工]이 되고, 흰 것이 되며, 긴 것이 되고, 높은 것이 되며, 나아가고 물러남이 되고, 과단하지 못함이 되며, 냄새가 된다. 그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머리털이 적은 것이 되고, 이마가 넓은 것이 되며, 흰자위가 많은 것이 되고, 이익에 가까워 시장에서 세 배를 남기는 것이 된다. 그 궁극에는 조급한 괘가 된다. 감은 물이 되고, 도랑이 되며, 숨어 엎드림이 되고, 바로잡고 휘게 함이 되며, 활과 바퀴가 된다.
그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근심을 더함이 되고, 마음의 병이 되며, 귀의 아픔이 되고, 피의 괘가 되며, 붉은 것이 된다. 그것이 말에 있어서는 등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성질이 급한 것이 되며, 머리를 숙인 것이 되고, 발굽이 얇은 것이 되며, 끄는 것이 된다. 그것이 수레에 있어서는 탈이 많은 것이 되고, 통함이 되며, 달이 되고, 도둑이 된다. 그것이 나무에 있어서는 단단하고 속심이 많은 것이 된다. 이는 불이 되고, 해가 되며, 번개가 되고, 중녀가 되며, 갑옷과 투구가 되고, 창과 병기가 된다. 그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큰 배가 되고, 마른[乾] 괘가 되며, 자라가 되고, 게가 되며, 소라가 되고, 방합이 되며, 거북이 된다. 그것이 나무에 있어서는 위가 비어 마른 것이 된다. 간은 산이 되고, 좁은 길이 되며, 작은 돌이 되고, 문과 궐문이 되며, 나무 열매와 풀 열매가 되고, 문지기와 내시가 되며, 손가락이 되고, 개가 되며, 쥐가 되고, 부리가 검은 짐승의 무리가 된다. 그것이 나무에 있어서는 단단하고 마디가 많은 것이 된다. 태는 못이 되고, 소녀가 되며, 무당이 되고, 입과 혀가 되며, 헐고 꺾임이 되고, 붙은 것을 떼어 냄이 되며, 그것이 땅에 있어서는 굳고 짠 땅이 되고, 첩이 되며, 양이 된다.
[상편]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생긴다. 천지 사이에 가득 찬 것은 오직 만물이므로 둔괘(屯卦)로 받았다. 둔이란 가득 참이고, 둔이란 사물이 처음 생겨남이다. 사물이 생겨나면 반드시 어리므로 몽괘(蒙卦)로 받았다. 몽이란 어림이니 사물이 어린 것이다. 사물이 어리면 기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수괘(需卦)로 받았다. 수란 먹고 마시는 도이다. 먹고 마시면 반드시 다툼이 있으므로 송괘(訟卦)로 받았다. 다투면 반드시 무리가 일어나므로 사괘(師卦)로 받았다. 사란 무리이다.
무리는 반드시 친하게 붙는 바가 있으므로 비괘(比卦)로 받았다. 비란 친하게 붙음이다. 친하게 붙으면 반드시 쌓이는 바가 있으므로 소축괘(小畜卦)로 받았다. 사물이 쌓인 뒤에 예가 있으므로 이괘(履卦)로 받았다. 예를 실천하여 태평한 뒤에 편안하므로 태괘(泰卦)로 받았다. 태란 통함이다. 사물은 끝내 통할 수만은 없으므로 비괘(否卦)로 받았다. 사물은 끝내 막힐 수만은 없으므로 동인괘(同人卦)로 받았다. 남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사물이 반드시 돌아오므로 대유괘(大有卦)로 받았다. 큰 것을 가진 자는 가득 차서는 안 되므로 겸괘(謙卦)로 받았다.
큰 것을 가지고도 겸손할 수 있으면 반드시 즐거우므로 예괘(豫卦)로 받았다. 즐거우면 반드시 따름이 있으므로 수괘(隨卦)로 받았다. 기쁨으로 남을 따르는 자는 반드시 일이 있으므로 고괘(蠱卦)로 받았다. 고란 일이다. 일이 있은 뒤에 커질 수 있으므로 임괘(臨卦)로 받았다. 임이란 큼이다. 사물이 커진 뒤에 볼 만하므로 관괘(觀卦)로 받았다. 볼 만한 뒤에 합하는 바가 있으므로 서합괘(噬嗑卦)로 받았다. 합(嗑)이란 합함이다. 사물은 구차하게 합하기만 할 수 없으므로 비괘(賁卦)로 받았다. 비(賁)란 꾸밈이다.
꾸밈을 다한 뒤에 형통하면 다하게 되므로 박괘(剝卦)로 받았다. 박이란 깎음이다. 사물은 끝내 다할 수만은 없으니, 깎임이 위에서 다하면 아래로 돌아오므로 복괘(復卦)로 받았다. 돌아오면 망령되지 않으므로 무망괘(无妄卦)로 받았다. 무망이 있은 뒤에 쌓을 수 있으므로 대축괘(大畜卦)로 받았다. 사물이 쌓인 뒤에 기를 수 있으므로 이괘(頤卦)로 받았다. 이란 기름이다. 기르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으므로 대과괘(大過卦)로 받았다. 사물은 끝내 지나칠 수만은 없으므로 감괘(坎卦)로 받았다. 감이란 빠짐이다.
빠지면 반드시 붙는 바가 있으므로 이괘(離卦)로 받았다. 이란 붙음이다. [하편]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뒤에 남녀가 있으며, 남녀가 있은 뒤에 부부가 있고, 부부가 있은 뒤에 부자가 있으며, 부자가 있은 뒤에 군신이 있고, 군신이 있은 뒤에 상하가 있으며, 상하가 있은 뒤에 예의가 놓일 바가 있다. 부부의 도는 오래가지 않을 수 없으므로 항괘(恆卦)로 받았다. 항이란 오래감이다. 사물은 오래도록 제자리에 머물 수 없으므로 돈괘(遯卦)로 받았다. 돈이란 물러남이다.
사물은 끝내 물러날 수만은 없으므로 대장괘(大壯卦)로 받았다. 사물은 끝내 장성할 수만은 없으므로 진괘(晉卦)로 받았다. 진이란 나아감이다. 나아가면 반드시 다치는 바가 있으므로 명이괘(明夷卦)로 받았다. 이(夷)란 다침이다. 밖에서 다친 자는 반드시 그 집으로 돌아오므로 가인괘(家人卦)로 받았다. 집안의 도가 궁하면 반드시 어긋나므로 규괘(睽卦)로 받았다. 규란 어긋남이다.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으므로 건괘(蹇卦)로 받았다. 건이란 어려움이다. 사물은 끝내 어려울 수만은 없으므로 해괘(解卦)로 받았다. 해란 느슨해짐이다.
느슨해지면 반드시 잃는 바가 있으므로 손괘(損卦)로 받았다. 덜어 냄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더하게 되므로 익괘(益卦)로 받았다. 더함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터지므로 쾌괘(夬卦)로 받았다. 쾌란 터짐[決]이다. 터지면 반드시 만나는 바가 있으므로 구괘(姤卦)로 받았다. 구란 만남이다. 사물이 서로 만난 뒤에 모이므로 췌괘(萃卦)로 받았다. 췌란 모임이다. 모여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승(升)이라 하므로 승괘(升卦)로 받았다. 오름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곤궁해지므로 곤괘(困卦)로 받았다. 위에서 곤궁한 자는 반드시 아래로 돌아오므로 정괘(井卦)로 받았다.
우물의 도는 고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혁괘(革卦)로 받았다. 사물을 바꾸는 것으로는 솥만 한 것이 없으므로 정괘(鼎卦)로 받았다. 기물을 주관하는 것으로는 장자만 한 이가 없으므로 진괘(震卦)로 받았다. 진이란 움직임이다. 사물은 끝내 움직일 수만은 없어 그치게 하므로 간괘(艮卦)로 받았다. 간이란 그침이다. 사물은 끝내 그칠 수만은 없으므로 점괘(漸卦)로 받았다. 점이란 나아감이다. 나아가면 반드시 돌아갈 바가 있으므로 귀매괘(歸妹卦)로 받았다. 그 돌아갈 바를 얻은 자는 반드시 커지므로 풍괘(豐卦)로 받았다. 풍이란 큼이다.
큼을 다한 자는 반드시 그 거처를 잃으므로 여괘(旅卦)로 받았다. 나그네가 되어 용납될 곳이 없으므로 손괘(巽卦)로 받았다. 손이란 들어감이다. 들어간 뒤에 기뻐하므로 태괘(兌卦)로 받았다. 태란 기쁨이다. 기뻐한 뒤에 흩어지므로 환괘(渙卦)로 받았다. 환이란 떠나 흩어짐이다. 사물은 끝내 흩어질 수만은 없으므로 절괘(節卦)로 받았다. 절제하여 믿게 되므로 중부괘(中孚卦)로 받았다. 그 믿음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것을 행하므로 소과괘(小過卦)로 받았다. 사물에 지나침이 있는 자는 반드시 건너므로 기제괘(既濟卦)로 받았다. 사물은 다할 수 없으므로 미제괘(未濟卦)로 받아 끝마쳤다.
[일편(一篇)] 건괘(乾卦)는 굳세고 곤괘(坤卦)는 부드러우며, 비괘(比卦)는 즐겁고 사괘(師卦)는 근심스럽다. 임괘(臨卦)와 관괘(觀卦)의 뜻은 혹은 주고 혹은 구하는 것이다. 둔괘(屯卦)는 드러나되 그 거처를 잃지 않고, 몽괘(蒙卦)는 뒤섞였으나 드러난다. 진괘(震卦)는 일어남이고, 간괘(艮卦)는 그침이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는 성함과 쇠함의 시작이다. 대축괘(大畜卦)는 때이고, 무망괘(无妄卦)는 재앙이다. 췌괘(萃卦)는 모임이고, 승괘(升卦)는 돌아오지 않음이다. 겸괘(謙卦)는 [스스로를] 가볍게 여김이고, 예괘(豫卦)는 게으름이다. 서합괘(噬嗑卦)는 먹음이고, 비괘(賁卦)는 색이 없음이다. 태괘(兌卦)는 드러남이고, 손괘(巽卦)는 엎드림이다. 수괘(隨卦)는 연고가 없음이고, 고괘(蠱卦)는 바로잡음이다.
박괘(剝卦)는 문드러짐이고, 복괘(復卦)는 돌아옴이다. 진괘(晉卦)는 낮이고, 명이괘(明夷卦)는 상함이다. 정괘(井卦)는 통함이고, 곤괘(困卦)는 서로 만남이다. 함괘(咸卦)는 빠름이고, 항괘(恒卦)는 오래감이다. 환괘(渙卦)는 흩어짐이고, 절괘(節卦)는 그침이다. 해괘(解卦)는 느슨함이고, 건괘(蹇卦)는 어려움이다. 규괘(睽卦)는 밖이고, 가인괘(家人卦)는 안이다. 비괘(否卦)와 태괘(泰卦)는 그 부류가 서로 반대이다. 대장괘(大壯卦)는 그치고, 둔괘(遯卦)는 물러난다. 대유괘(大有卦)는 무리가 많음이고, 동인괘(同人卦)는 친함이다. 혁괘(革卦)는 옛것을 버림이고, 정괘(鼎卦)는 새것을 취함이다. 소과괘(小過卦)는 지나침이고, 중부괘(中孚卦)는 믿음이다. 풍괘(豐卦)는 연고가 많음이고, 친한 이가 적은 것은 여괘(旅卦)이다.
이괘(離卦)는 올라가고, 감괘(坎卦)는 내려간다. 소축괘(小畜卦)는 적음이고, 이괘(履卦)는 머물지 않음이다. 수괘(需卦)는 나아가지 않음이고, 송괘(訟卦)는 친하지 않음이다. 대과괘(大過卦)는 엎어짐이고, 구괘(姤卦)는 만남이니, 부드러움이 굳셈을 만나는 것이다. 점괘(漸卦)는 여자가 시집감에 남자가 [예를 갖추어] 가기를 기다림이고, 이괘(頤卦)는 바름을 기름이며, 기제괘(既濟卦)는 정해짐이다. 귀매괘(歸妹卦)는 여자의 마침이고, 미제괘(未濟卦)는 남자의 궁함이다. 쾌괘(夬卦)는 결단함이니, 굳셈이 부드러움을 결단하는 것이다.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사라진다. [교고판(校詁版)] 건괘(乾卦)는 굳세고 곤괘(坤卦)는 부드럽다. 비괘(比卦)는 즐겁고 사괘(師卦)는 근심스럽다. 임괘(臨卦)와 관괘(觀卦)의 뜻은 혹은 주고 혹은 구하는 것이다. 둔괘(屯卦)는 드러나되 그 거처를 잃지 않는다. 몽괘(蒙卦)는 어리나 드러난다. 진괘(震卦)는 일어남이다. 간괘(艮卦)는 그침이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는 성함과 쇠함의 시작이다. 대축괘(大畜卦)는 때이다. 무망괘(無妄卦)는 재앙이다. 췌괘(萃卦)는 모임이고 승괘(升卦)는 돌아오지 않음이다. 겸괘(謙卦)는 가볍게 여김이고 예괘(豫卦)는 게으름이다. 서합괘(噬嗑卦)는 먹음이다. 비괘(賁卦)는 색이 없음이다. 태괘(兌卦)는 드러남이고 손괘(巽卦)는 엎드림이다. 수괘(隨卦)는 일이 없음이다. 고괘(蠱卦)는 바로잡음이다. 박괘(剝卦)는 문드러짐이다. 복괘(復卦)는 돌아옴이다. 진괘(晉卦)는 낮이다. 명이괘(明夷卦)는 상함이다. 정괘(井卦)는 통하고 곤괘(困卦)는 서로 만남이다. 함괘(咸卦)는 빠름이다. 항괘(恆卦)는 오래감이다. 환괘(渙卦)는 흩어짐이다. 절괘(節卦)는 그침이다. 해괘(解卦)는 느슨함이다. 건괘(蹇卦)는 어려움이다. 규괘(睽卦)는 밖이다. 가인괘(家人卦)는 안이다. 비괘(否卦)와 태괘(泰卦)는 그 부류가 서로 반대이다. 대장괘(大壯卦)는 그치고, 둔괘(遯卦)는 물러난다. 대유괘(大有卦)는 무리가 많음이다. 동인괘(同人卦)는 친함이다. 혁괘(革卦)는 옛것을 버림이다. 정괘(鼎卦)는 새것을 취함이다. 소과괘(小過卦)는 지나침이다. 중부괘(中孚卦)는 믿음이다. 풍괘(豐卦)는 연고가 많음이다. 여괘(旅卦)는 친한 이가 적음이다. 이괘(離卦)는 올라가고 감괘(坎卦)는 내려간다. 소축괘(小畜卦)는 적음이다. 이괘(履卦)는 머물지 않음이다. 수괘(需卦)는 나아가지 않음이다. 송괘(訟卦)는 친하지 않음이다. 대과괘(大過卦)는 엎어짐이다. 구괘(姤卦)는 만남이다. 부드러움이 굳셈을 만나는 것이다. 점괘(漸卦)는 여자가 시집감에 남자가 [예를 갖추어] 가기를 기다림이다. 이괘(頤卦)는 바름을 기름이다. 기제괘(既濟卦)는 정해짐이다. 귀매괘(歸妹卦)는 여자의 마침이다. 미제괘(未濟卦)는 남자의 궁함이다. 쾌괘(夬卦)는 결단함이다. 굳셈이 부드러움을 결단하는 것이다.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근심스럽다.